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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의 ,쉼표
[이상명의 ,쉼표] 짝 잃은 청둥오리
이상명 기자 (114@00news.co.kr)  2020. 01. 14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태어난 후 처음으로 아빠의 빈 어깨를 봤다.

지난해 심근경색이 발병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내게 전에 없던 집착을 하고 있다. 하루 10통 가까운 전화를 하는가 하면 주말이면 어김없이 딸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같이 있어달라는 것.

20대초 엄마를 만나 반평생을 함께 살아오시다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엄마를 잃고 이제 혼자가 되신 그 쓸쓸함이야 오죽 하겠냐만은 딸의 개인생활은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그저 같이 있어달라는 하소연 뿐.

<사진=이상명 기자>
<사진=이상명 기자>

젊은 시절 아빠는 엄마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연애결혼임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다정했던 아빠의 모습이 없다. 속 마음이야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모습은 과연 엄마를 사랑하셨을까 싶었을 정도니까.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분은 아니셨지만 달달하게 사랑을 표현하거나 엄마의 생일에 장미꽃 한송이 주신 적은 없으셨다. 넷째 아들임에도 시부모 제사를 지내던 엄마였지만 그 흔한 ‘수고한다’ 한마디를 해주지 않았다.

그저 여자의 운명이니 당연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물 한잔 손수 떠오지 않으시고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엄마를 기어코 불러내서 물을 마시던 아빠였으니까.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면 무조건 엄마 편을 들었다. 욱 하는 성미의 아빠 성질도 너무 싫었지만 고생만 하는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편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내에게는 그렇게도 모질던 아빠였지만 자식에게만은 한없이 자상하셨다. 엄마한테 소리지르지 말라고 내가 아빠에게 되려 소리지르면 아빠는 꼼짝없이 높이던 언성을 낮추고는 이내 잔소리도 멈추셨다.

지난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아이처럼 되버렸다. 딸인 내게 무엇이든 다 해달라고 하신다. 하물며 즐겨 드시는 우유조차 슈퍼마켓에서 사 본 적 없는 아빠다. 반평생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느날.

아빠가 동치미를 담그셨다. 엄마가 해주던 맛깔스럽고 시원한 동치미가 드시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에서 파는 동치미는 엄마가 해 주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평생 부엌 한 번 들어가시지 않던 양반이 직접 칼질을 하고 무를 다듬고 동치미를 담궈 놓으셨다. 담근지 일주일 즈음 맛도 일품이다.

그러고보니 아빠는 그저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 좋으셨던 듯 하다.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집밥을 고집하셨던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맛을 좋아하셨던 게 아닐까. 엄마가 만들어놓고 하늘나라에 가신 후 아직도 남아있는 마늘장아찌를 그리도 소중히 알뜰하게 드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느 엄마가 정말 힘들었을거야”

생전 단 한번도 수고한다, 고생한다는 말씀 없으시던 아빠가 벽에 걸어놓은 돌아가신 엄마 사진 밑에서 늦게나마 엄마의 노고를 고마워하신다.

허투루 돈 한 푼 안쓰시고 그저 엄마가 끓여주신 묵은김치 넣은 청국장을 그리도 즐기시던 아빠였는데 이제야 엄마를 향한 아빠의 사랑방식을 깨달아 가고 있다.

자식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달 정도만 매주 산소에 갔지만 배우자인 아빠는 1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한 주를 빠뜨리지 않는다. 엄마가 좋아하던 꽃을 사서 산소에 오를 아빠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아파온다.

지난 여름 구순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내 없는 처갓집.. 구순의 장모 장례식에 흰머리 성성하고 이제는 어깨까지 굽은 맞사위가 장모 사진을 들고 화장터에 오르며 뜨거운 눈물을 쏟는 모습을 봤다.

끝까지 아내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지난날 받은 사랑을 지키려 노력한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텅 빈 눈으로 텅 빈 어깨를 하고 벽에 걸린 엄마의 영정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화창한 주말, 겨울이지만 따듯한 날씨에 아빠가 집근처 공원을 가자고 했다. 요즘들어 부쩍 엄마 생전 많은 곳을 함께 가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말씀하신다.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신 듯..

나이든 노부부가 손을 잡고 지하철에 올랐다. 지금 아빠가 무얼 생각하는지 나는 안다. 평생 고생하던 엄마의 거친 손마디 한 번 잡아주지 못했던 아빠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라고.

겨울이지만 제법 따스한 햇살을 핑계 삼아 도심 속 공원에 적잖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작은 호수에는 청둥오리 가족들이 살얼음을 깨고 헤엄치기 바쁘다. 그런데 다들 짝을 지어 다니는 모습 중에 유독 혼자 있는 청둥오리를 발견했다.

그 모습을 한 없이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에 그리움이 스치는 듯 하다.
‘너도 나처럼 쓸쓸하구나!’

평생 원망했던 아빠였지만 이제는 그 거친 손마디 잡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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