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정부 “독립·투명성 강화 목적” vs 경영계 “과도한 경영 간섭”

[공공뉴스=이민경 기자] 앞으로 상장사의 사외이사 임기가 6년으로 제한된다. 기업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와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상법 시행령을 개정 의결한 것.  

이에 따라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둔 재계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당장 올해 주총에서 물러나야 할 대기업 사외이사만 총 76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 한편, 기업에 대한 과잉규제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정부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주주·기관투자자의 권리 행사를 강화하고 이사·감사의 적격성을 제고하기 위한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주총 및 이사회를 통한 견제 기능이 강화돼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공정경제 핵심 정책과제로 추진해왔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 내 의사결정기구를 통한 자율감시기능이 보다 원활하게 작동될 필요가 있으나, 상장사 주총의 형식적 운영 및 주주참여 저조 문제, 이사·감사 선임 시 주주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취약하다는 문제 등이 오랫동안 지적돼 왔다. 

또한 2016년 12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 이행을 위한 주주활동이 증가하면서 주주활동의 내용에 따라 이른바 ‘5%룰’(지분 대량보유 보고제도)를 차등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표적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돼 왔다. 

개정안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사외이사 제도와 관련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특정 회사의 계열사에서 퇴직한 지 3년(기존 2년)이 되지 않은 자는 해당 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했다. 한 회사에서 6년, 계열사를 포함해 총 9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근무할 수 없게 됐다. 

사외이사는 이사회의 불법행위를 감시 및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장기 재직하는 경우 이사회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음에도 현행 법령상 사외이사의 결격사유가 다소 미흡해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같이 내용을 개정했다. 

이번 개정안이 실행되면 재계의 사외이사는 3월 주총에서 대거 물러나게 된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59개 대기업집단의 264개 상장사 사외이사 853명을 대상으로 재임 기간을 분석한 결과 총 76명의 사외이사가 올해 주총에서 물러나야 한다. 

삼성과 SK는 각각 6명, LG와 영풍, 셀트리온이 각각 5명씩 사외이사를 바꿔야 한다. 또 LS와 DB는 4명, 현대차·GS·효성·KCC도 3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SK텔레콤, KT, 삼성SDI, 삼성전기, 현대건설,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16곳도 사외이사 2명을 교체해야 한다. 

2022년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를 포함하면 6년 이상(계열사 포함 9년 이상) 재임한 사외이사는 총 205명이나 된다. 결국 전체의 24.0%를 2022년 교체해야 하는 셈이다. 

대기업 집단 2020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사외이사 현황 <자료=CEO스코어><br>
대기업 집단 2020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사외이사 현황 <자료=CEO스코어>

아울러 정부는 상장사 주총시 주주의 내실 있는 의결권 행사가 다소 어렵다는 평가가 제기됨에 따라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개정안을 마련했다. 

주총 소집 통지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도 함께 제공할 수 있도록 해 주주가 주총 전 회사의 성과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게 개정했다. 

전자투표 시 본인인증 수단을 핸드폰, 신용카드 인증 등 다양화 하고, 전자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한 경우 전자투표 기간 중 이를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었으나 변경·취소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전자투표 인터넷 주소 등을 알지 못해 의결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주소, 전자투표 기간을 주주들에게 사전에 별도 통지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임원(이사·감사) 선임을 위한 주총 개최를 공고할 때 후보자 정보도 함께 공고되는데 후보자와 대주주와의 관계, 후보자와 회사 간 거래내역 등 후보자와 회사의 관계에 대한 정보만 공고돼 개인의 적격성 판단을 위한 정보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주총 소집 공고시 ▲후보자의 체납사실 ▲부실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한 적 있는지 여부 ▲법령상 결격 사유 유무도 함께 공고되도록 해 임원후보자에 대한 충실한 검징 기반을 마련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내용은 주주활동의 강도에 따라 ‘주식 등 대량보고·공시의무’를 합리적으로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끊이질 않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경영과 무관한 경우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와 ‘단순투자’로 세분화 해 보고·공시의무를 차등화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운영에 대한 개선책도 담겼다. 그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기금운용 지침에 근거해 기금운용위 산하 전문위원회를 두고 운영해 왔으나, 전문위원회 위원 전체가 비상근위원이라는 점에서 전문적 논의가 상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 

개정 내용으로는 ▲전문위원회 근거를 시행령에 명문화하고 ▲가입자 단체가 추천한 민간전문가를 상근 전문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했다. 

위원회 산하에는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위원회별로는 상근전문위원 3명, 민간전문가 3명,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3명을 각각 두도록 했다.

다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경우 국민연금 주주활동의 투명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민간전문가를 6명까지 두기로 했다.

상근 전문위원 3명은 각각 3개 전문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상근 전문위원은 금융·경제·자산운용·법률·연금제도 분야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민간전문가 중 국민연금 가입자(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 단체별로 1명씩 추천받아 위촉하기로 했다.

개정된 3개법 시행령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상법‧국민연금법 시행령은 공포 후 즉시,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내달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단,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주주총회 소집 통지시 사업·감사보고서 제공 의무는 기업들의 준비기간을 두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월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월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편, 정부의 이번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 재계는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며 반발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연기금이 경영참여 선언 없이 정관변경 요구, 임원 해임청구 등을 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증가시켜 기업 경영 자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면서 “사외이사 임기 제한은 인력운용의 유연성과 이사회의 전문성을 훼소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주총 소집시 사업보고서 첨부와 관련해서는 “사업보고서의 완결성을 해친다”며 “기업 경영의 자율성 침해는 결과적으로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난 17일 이같은 내용이 국무회의 상정을 앞두게 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한 바 있다. 

경총은 “기업경영 내부장치인 사외이사와 주총까지도 직접적으로 정치·사회적인 관여와 통제의 소지를 확대하는, 반시장적 정책의 상징적 조치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며 “경영계의 거듭된 우려를 묵살한 채 정부의 일방적 강행에 대해 안타까움과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총은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 시행될 경우 당장 올해 560개 이상의 기업들이 일시에 사외이사를 교체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매우 엄격한 수준인 우리나라 결의요건 하에서 적임자를 선임하지 못한 기업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경영권의 핵심적 사항인 이사 선·해임과 정관 변경 추진을 경영개입 범주에서 아예 제외해 법적 위임범위를 일탈하고 있다”면서 “보고의무 경우도 일반투자자는 10일 약식보고로 완화하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기금에 대해서는 월별 약식보고로까지 대폭 완화해 해당 기업의 경영권 방어능력을 그만큼 무력화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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