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 빠진 원자력硏] 방사성물질 누출 30년간 몰랐다..‘총체적 부실’ 확인
[안전불감증 빠진 원자력硏] 방사성물질 누출 30년간 몰랐다..‘총체적 부실’ 확인
지난해 말 방폐물 방출 사고 관련 원안위 조사 결과..설계 무시·운영 미숙 결론
연간 470~480ℓ 외부로 방출..박원석 원장 “연구원 신뢰 깎은 책임 통감” 사과
  • 정혜진 기자
  • 승인 2020.03.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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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뉴스=정혜진 기자] 지난해 말 대전 대덕연구원개발특구 내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KAERI)에서 발생한 극저준위 방사성 물질 방출 사고 경위를 조사한 결과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설계와 다른 시설 설비부터 모니터링 시스템의 부재까지 ‘총체적 부실’이 불러온 사고라는 판단이 나온 까닭. 

특히 30년 동안 액체 방사성 폐기물을 방출해왔음에도 그동안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KAERI의 안전불감증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핵재처리실험저지30㎞연대는 지난 1월23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관련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연구중단 및 원자력연구원 폐쇄를 촉구했다.사진=핵재처리실험저지30㎞연대 제공)
핵재처리실험저지30㎞연대는 지난 1월23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관련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연구중단 및 원자력연구원 폐쇄를 촉구했다. <사진=핵재처리실험저지30㎞연대, 뉴시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지난 1월21일부터 실시한 ‘KAERI 자연증발시설 방사성물질 방출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20일 해당시설의 지정권자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KAERI 측에 통보하고 후속조치를 요청했다고 이날 밝혔다.

KAERI의 자연증발시설은 원자력안전법 제35조제2항에 따라 구(舊) 과기처가 사용후핵연료처리사업으로 승인한 시설로 과기정통부가 동법 제36조제1항 등에 의거 행정처분을 검토해 조치할 계획이다. KAERI는 안전성 강화대책의 세부이행계획을 수립해 원안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원안위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KINS) 조사팀을 현장에 파견해 인허가 단계부터 최근까지 검사기록, 시설운영 기록, 방사선환경 조사기록, CCTV 영상, 재현실험 등을 활용해 심도 깊은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자연증발시설에서 방사성물질이 방출된 근본원인은 시설의 배수시설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승인받은 설계와 다르게 설치·운영된 데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증발시설은 극저준위 액체 방사성폐기물(185Bq/ℓ이하)을 지하저장조(86만ℓ)에 이송받아 이를 끌어올려 3층의 공급탱크에서 2층에 길게 늘어뜨린 증발천에 흘려보내 태양광에 의해 자연증발 시키고 남은 방폐물을 다시 지하저장조로 보내는 폐순환 구조로 설계해 승인을 받았으나 

하지만 1990년 8월 실제 현장에는 인허가 받은 설계에는 없는 지하에 외부배관으로 연결된 바닥배수탱크(600ℓ)가 설치됐고, 1층의 일부 배수구가 바닥배수탱크로 연결된 상태로 30년 동안 운영돼 왔다. 

그간 운전자들은 지하저장조 외에 바닥배수탱크가 별도로 설치된 상황을 몰랐고, 1층의 모든 배수구는 지하저장조와 연결돼 폐순환되고 있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원안위는 설명했다. 

또한 CCTV 영상과 재현실험 등을 통해 방출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9월26일 필터 교체후 밸브를 과도하게 개방한 상태에서 미숙하게 운전해 2층 집수로에서 넘침이 발생했고 약 510ℓ의 액체 방폐물이 외부로 누출됐다. 

아울러 매년 11월경 시설 가동 후 동절기 동파방지를 위해 운영을 중단하고 모든 액체 방폐물을 지하저장조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필터하단 배수구로 일부 방폐물(연간 470~480ℓ)이 바닥배수탱크로 유입돼 외부로 누출된 사실도 확인했다. 

<자료=원자력안전위원회>
<자료=원자력안전위원회>

다만, 지난해 4분기 이전까지 KAERI 외부 방사선 환경조사에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세슘-137 등이 토양 등에 잘 흡착되는 특성 때문.

자연증발시설에서 방출된 후 KAERI 부지내 우수관, 10개의 맨홀 등을 거쳐 정문 앞 덕진천까지 약 1.5km를 흐르는 동안 KAERI 부지 내 토양에 흡착돼 덕진천 등 하천수 및 하천토양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9월26일 운전 미숙으로 방출(510ℓ)후 측정된 2019년 4분기 측정에서 특이값을 보인 배경에 대해서는 “10~11월 사이 강수량(200mm)이 많아 일부 방사성물질이 부지 외부로 흘러나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원안위는 이 사건의 근본원인을 KAERI가 사업자로서 원자력안전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전사적 관리체계와 설계기반 형상관리 미흡, 수동식 운영체계, 안전의식 결여에 따른 것으로 봤다. 

따라서 원안위는 KAERI의 100여 개 원자력 및 방사선이용시설의 인허가 사항 및 시공도면과 현재 시설 상태 간 차이가 없는지 전면조사를 실시하고, 연구원내 환경방사선(능) 조사지점 확대와 방폐물 관련 시설의 운영시스템 등을 최신화하도록 조치했다. 

이와 함께 안전관리 조직의 총괄기능 강화와 외부기관이 주관하는 안전문화 점검을 실시하는 등 KAERI 시설 안전강화 종합대책의 세부이행 계획을 수립해 차기 원안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원안위는 자연증발시설 등 핵연료주기시설에 대한 정기검사 횟수를 두 배로 확대하고, KAERI에 대한 현장 상시점검을 위한 전담조직 설치와 핵연료주기시설에 대한 원안위의 안전규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자연증발시설 방사성 물질 방출사건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관련해 20일 박원석 원자력연구원장이 연구원 정문 앞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자연증발시설 방사성 물질 방출사건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관련해 20일 박원석 원자력연구원장이 연구원 정문 앞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편, 박원석 KAERI 원장은 이날 연구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박 원장은 “원안위의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원안위가 밝힌 방사성물질 방출원인과 방출량을 포함해 그로 인한 외부 환경영향 분석 결과 전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확인된 방사선량이 인체와 환경에 영향이 없는 극미량이긴 하나, 이런 설명이 시민 여러분께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며 “누출이 있어서는 안 될 시설에서 누출이 발생한 사실만으로도 시민 여러분의 믿음을 저버리고 연구원의 신뢰를 깎는 일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그동안 연구원은 방사성물질 취급시설을 중심으로 안전관리에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은 시설에 대한 관리와 점검에는 부족했던 점을 확인했다”며 “사건 발생 직후, 오염된 토양을 제거하고 방사성물질이 추가로 유출되지 않도록 맨홀 내부 관로와 우수 유입구를 차단하고 유출방지 차단막을 설치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환경방사능 분석을 강화하기 위해 주 1회 하천토양을 분석하고 채취지점을 추가하는 한편, 토양 깊이별로 방사능을 분석해 향후 좀 더 정밀한 환경방사능 분석을 실시하도록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원은 대전시, 유성구와 신속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노력을 지속해 왔으나, 일부 드러난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 협력체계를 보다 더 강화했다”며 “연구원과 지자체,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원자력 안전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원자력시설 시민안전소통센터’를 설립해 시민이 원자력시설을 직접 검증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혜진 기자 114@00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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