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금지법 1년:여전히 갈길 먼 갑질 근절→조직문화 개선이 행복한 일터 만든다

[공공뉴스=정혜진 기자] # 입사 1년차인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옆 부서 차장으로부터 ‘A씨는 우리 회사의 꽃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미투하지 마라’라는 말을 듣는가 하면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당하기도 했다.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피해자의 대부분이 ‘참고 넘어간다’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A씨도 며칠 동안 고민만 하고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고 이는 결국 조직의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A씨는 용기 내 신고했지만 피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반복해서 떠올려야만 했고, 성희롱 여부 결정이 날 때까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A씨는 힘들게 취업해 열심히 일하고 싶었던 다짐과 다르게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 천안지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B씨는 최근 회사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으니 이달 내로 퇴사해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회사 측은 B씨에게 “이달 중으로 그만두지 않을 경우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하겠다”는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B씨는 “해고 통보는 최소 한 달 전에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부당 해고라고 생각된다. 이는 엄연한 갑질”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가 진행됐다. 강성태(왼쪽부터) 한국노동법학회장, 김태호 노동연구원 박사,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박정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권혁 부산대 교수. <사진=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았지만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당 법에는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고 4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법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노동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따라 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려면 ▲직장 내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설 것 ▲그 행위가 노동자한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 3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폭언 및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줄지 않고 있다.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달라진 게 없다’고 평가했다.

변화를 체감하는 직장인이 많지 않은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접적인 처벌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명시적으로 금지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이에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을 보완하고 법정 의무교육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를 열고 직장 내 괴롭힘의 현 실태를 진단하고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조직과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다양한 발표가 이뤄졌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지식융합학부)는 “제도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유지 또는 일부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2~8일 주요 산업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간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변화 없음’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71.8%로 가장 많았다. 괴롭힘이 감소했다는 응답은 19.8%였다.

괴롭힘 증가 요인(복수응답)으로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문화’(53.6%)가 가장 많았고 ‘신고 체계나 징계 규정 미비’(51.2%)가 뒤를 이었다.

괴롭힘 유형(복수응답)으로는 ‘폭언’이 55.0%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따돌림·험담(45.0%), 강요(28.5%), 부당인사(27.7%), 차별(27.7%), 사적 용무지시(17.8%), 업무 미부여(15.3%), 감시(13.6%), 폭행(3.7%) 등의 괴롭힘이 행해졌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상사’가 70.7%(복수응답)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동료(34.3%), 임원(15.3%), 부하직원(10.3%), 사업주(7.9%), 임원·사업주 등의 친인척(6.2%) 순이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여성 피해자들의 경우 상사, 동료,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 응답이 많았다는 점이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임직원 수가 적은 기업일수록 괴롭힘을 당했거나 목격한 경험이 높았다. 5~29인 사업장은 96건, 30~99인 사업장은 71건으로 집계됐다.

이 교수는 “근로자들이 근로감독관에 대한 신고절차, 법률 및 심리상담 등 정부지원 제도의 효과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호 한국노동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근로자의 심리·건강, 조직의 성과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괴롭힘에 따른 피해근로자의 이직률을 낮추고 조직 내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정기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 요건에 지속·반복성, 괴롭힘 의사 등을 포함해 개념을 보완하고 사전 예방을 위해 법정 의무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며 “발생 시에는 제재 부과,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 도입 등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도 “여전히 직장 내 폭언, 폭행 등 괴롭힘이 근절되지 못하고 있어 정부가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면서 “지방관서의 행정력을 강화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근로감독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상담센터 확충, 예방교육 지원, 유인책 제공 등 사업장의 자율개선을 위한 지원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 기자회견을 열고 갑질금지법 개선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 직장 내 괴롭힘 줄이기에 팔 걷은 정치권

관련 제도 시행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제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정치권도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토론회에서 “(법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는데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하다”며 “법 제정 자체가 하나의 진전이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굉장히 많다”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오로지 사업장 내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에는 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괴롭힘의 범위가 제한돼 있고 처벌 규정이 없는 것도 보완돼야 한다. 또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시간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의무화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현재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과 같은 형태로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도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화법’)을 각각 발의했다. 

지난해 7월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제도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토록 하고 발생 시 이를 신고·조사하도록 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행위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회사별로 상황에 맞게 취업규칙(사규)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조치를 정하고 그에 따르도록 하는 등 회사의 재량권에만 의존하고 있어 실효성과 적극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난 1년간 정부는 제도 개선을 위해 8개 상담센터를 설치하는 등 일부 조치를 취했으나 폭행·폭언·회식 강요·퇴근 이후의 지시 등의 부당한 지시 및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히 만연한 실정.

실제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중소 영세 사업장 종사자들은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남의 나라 일’로 인식되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의 75.7%, 공공기관 종사자의 75.2%가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5~30인 사업장 종사자는 60.9%,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40.0%에 그칠 뿐이다.

이런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는 데는 회사 내 예방 교육이 효과적인 것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는 응답은 예방교육을 이수한 노동자(63.6%)이 이수하지 않은 노동자(48.0%)에 비해 15.6%포인트 높았다. 자율적인 예방 교육보다는 의무화가 더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현행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연 1회로 법정 의무화돼 있는 반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제도는 회사의 적극적 예방교육이 빠져 있다”며 이번 법개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20년 전인 1999년 2월 첫 시행되면서 법정 의무사항으로 정해졌고 위반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담고 있다.

김 의원이 발의한 이번 법안에는 현재의 성희롱 예방교육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또한 전문교육기관에 위탁해 실시할 수 있는 내용도 담았다.

이는 기존의 법률가 단체, 사업주 단체, 시민사회단체가 다양한 형태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이들 전문교육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도 실시토록 해 교육의 전문성과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김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차 되는 지금, 기준의 모호함과 강제성 부족 등으로 제도의 기능에 한계가 여전하다”며 “20년간 운영된 현재의 성희롱 예방교육 체계가 안정화된 만큼 이를 활용하면 현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훨씬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한정애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제재조치를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직장 내 괴롭힘이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개정안에는 사용자를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칙을 적용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위하력을 확보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적용 사업장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하자는 것.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56.9%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아 신고를 해도 단순 행정종결 처분이 내려져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전체 사건 중 실제 기소로 이어진 사건도 0.16%에 불과하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 자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고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만 처벌되는 법적 한계 때문이다.

용 의원은 “사용자와 노동자 외 제3자에 의해 행해지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 벌칙 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예방 교육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만들겠다”며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정부에 시행령 개정을 요구할 예정이다.

<사진=뉴시스>

# 부당함을 참지 않을 권리

물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미약하지만 부당함을 강요했던 관행과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다. 

갑질을 근절하려는 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후배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던 상사도, 여직원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상사도, 서류를 집어던지거나 폭언을 하는 상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부당한 업무지시, 의견 무시, 차별대우, 위계질서 강요, 실적 빼앗김, 성희롱, 성추행 등 폭력적인 조직문화가 만연한 실상이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는 순간부터 조직을 망가뜨리는 골칫덩이로 취급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되려 비난한다.

더욱이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직급이 높을 경우 회사는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해고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건을 주변에 알리거나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따돌림, 해고 등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에게는 ‘당하지 않은 일’, ‘보이지 않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결코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조직문화임을 인지해야 한다.

직장 내 건전한 조직문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 둘 합쳐진다면 피해를 신고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만 하는 피해자가 사라지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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