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술자료 유용한 행위 관련 최대 액수 9억7000만원 과징금 철퇴
해외 수주 공사서 안전 문제..기술력 인정받았다더니 글로벌 시장 망신살?
국감서 대기업 총수 증인 소환 예고..보폭 넓히는 정 부사장의 무거운 어깨

[공공뉴스=이민경 기자] 30여년 만에 오너체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체제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가(家) 3세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조선업이 수주절벽에 빠져 큰 시름을 앓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이 대내외적으로 쏟아지는 악재들로 휘청이고 있는 까닭.  

현대중공업은 20년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탈취하고 거래를 끊은 ‘갑질’을 했다가 역대 최대 과징금 철퇴를 맞은 한편, 해외에서 수주한 해양플랜트 공사와 관련해 부품에서 균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대중공업의 총수 소환까지 예고하고 나서면서 벌써부터 이목이 집중된 모습. 

현대중공업그룹 승계 후계자인 정 부사장은 최근 경제계 공식적인 행사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기업 승계를 앞둔 상황에서 그룹에 각종 악재가 들끓며 부담은 가중되는 형국이다. 

<사진=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캡쳐>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사진=뉴시스>

◆하도급업체 기술탈취 ‘역대 최대’ 과징금..총수 국감 소환 예고

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디젤엔진 생산에 들어가는 피스톤을 공급해 온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의 요청에 따라 현대중공업 법인과 임직원에 대한 고발조치는 이미 완료했다.

현대중공업은 이 업체로부터 강압적으로 기술자료를 취득한 후 자사 비용 절감을 위해 해당 기술자료를 타 업체에 제공함으로써 피스톤 생산을 이원화하고 단가를 인하한 후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했다가 공정위에 덜미를 잡혔다. 
 
현대중공업은 2000년 디젤엔진을 개발했고, 그 엔진에 사용되는 피스톤을 하도급업체 A사와 협력해 국산화했다. 

디젤엔진 개발 이후 장착되는 피스톤은 해외 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던 상황에서 업계에서 피스톤 제작 기술력을 인정받아 온 A사에게 함께 피스톤을 국상화할 것을 요청, 이후 국내에서 유일하게 A사로부터만 피스톤을 공급받아 왔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자사 비용절감을 위해 제3업체인 B사에게 피스톤 견적을 요청하고 실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미비점이 발견됐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A사의 기술자료를 B사에 제공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은 B사에 제공된 자료는 자신이 제공한 사양을 재배열한 것에 불과하며 단순 양식 참조로 제공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도급 관계에서 원사업자가 사양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 B사에 제공된 기술자료들에는 사양 이외에 A사의 기술(공정순서, 품질 관리를 위한 공정관리 방안 등)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는 빈 양식을 보내면서 자료 작성을 요청한 반면 B사에는 A사가 관련 내용을 모두 기입한 기술자료를 보냈다.

또한 B사가 작성한 자료에서는 A사가 작성한 것과 동일한 오기가 동일한 위치에서 발견됐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게 이원화 진행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이원화 완료 후 A사에게 단가 인하의 압력을 가해 3개월 동안 단가를 약 11% 인하했으며, 1년 내에 A사와 거래를 단절해 거래선을 변경했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은 2015년 3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이원화 진행 기간 동안 제품에 불량이 있음을 언급하거나 요구목적을 언급하지 않고 A사에게 작업표준서와 지그(Jig) 개선자료 등을 요구해 제공받았다.

A사에게 작업표준서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양산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중공업은 하자 발생에 따른 대책 수립 목적으로 위 자료들을 요구한 것으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하자가 발생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요구도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하자 발생 제품에 대한 요구도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그 요구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10월부터 2016년 5월까지 A사에게 4M(제품 생산에 필요한 인력, 장비, 재료·부품, 공정) 관련보고서, 검사성적서, 관리계획서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도 교부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게 포괄적으로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이를 제공하지 않을 시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향후 발주물량을 통제할 것이라고 해 A사가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공정위는 위 요구에 정당한 사유는 인정된다고 판단했으나, 법정 사항에 대해 사전에 협의해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점은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에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없이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라도 반드시 서면 방식을 취하도록 시정명령했다. 

특히 A사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행위에 대해 9억7000만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에 부과된 과징금은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 그동안 부과된 과징금 중 최대 액수다. 

과징금 기준금액이 상향된 새 과징금 고시에 근거,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 과징금이 부과된 첫 번째 사례다. 

기술자료 유용행위는 법 위반 금액 산정이 곤란한 특징이 있으며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간주돼 6억~1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공정위는 “한국판 뉴딜 정책에 발맞춰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성장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첨단 기술분야에 대한 기술유용 행위 감시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도급업체 기술탈취 등 갑질을 일삼은 현대중공업 총수를 올해 국감 증인으로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 의원은 공정위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며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총수를 불러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피해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송 의원은 2018년과 2019년 국감에서도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를 질타하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송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기술탈취, 거래단절은 대기업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라며 “최대 과징금 결정을 내린 공정위의 결정을 환영하며 21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갑질 근절을 위한 제도정비와 법률지원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갑질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계열사 현대미포조선의 하청업체였던 포스기업 임직원들은 올해 1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하청업체에 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을 했다고 주장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현대미포조선의 사무서 위조, 단가 후려치기 등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한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 목소리도 높였다. 

◆해외 수주 프로젝트서 안전 문제 ‘시끌’..현대重 공급 부품서 하자?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그룹을 둘러싼 논란은 해외에서도 이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망신살이 뻗친 분위기다.

현대중공업이 해외에서 수주한 프로젝트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한 것. 

현재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하자가 발생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고르곤 LNG 프로젝트에 모듈을 공급한 기업이다.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부품에서 결함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쉽사리 가시질 않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호주 고르곤 LNG프로젝트 트레인 2기의 정기 유지 보수 과정에서 길이 1m, 깊이 30mm의 균열이 수천개 발견돼 3개의 생산 트레인이 모두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균열이 발생한 부분은 키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게 게 호주제조노동조합(AMWU)의 주장. 

노조 측은 근로자 안전 문제를 이유로 미국 셰브론사에 즉각 공장 폐쇄와 독자적 조사, 3개의 트레인에 대한 시험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10월 셰브론과 총 중량 19만톤에 이르는 초대형 해양 플랜드 공사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공사금액만 총 20억6000만달러(한화 약 2조4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 공사는 호주 고르곤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가스전 인근 배로우 섬에 천연가스의 액화, 정제, 생산을 위한 LNG 플랜트를 설치하는 공사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2013년까지 울산 본사에서 총 19만톤 규모의 대형 모듈 48기를 제작, 납품할 계획을 밝혔다.

프로젝트 수주와 관련해 당시 현대중공업 측은 “이번 수주로 현대중공업은 세계적인 기술력과 공사 수행 능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됐다”고 자평한 바 있다.  

◆경영보폭 넓히는 ‘오너 3세’ 정기선, 실적·이미지 추락은 ‘난감’

한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오너 3세 정 부사장은 향후 최고경영자로 나서기 위해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이 오너경영체제로 전환을 준비 중인 가운데 정 부사장은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감담회에서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인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 영역을 총괄하는 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등 여파로 성과는 녹록치 않다. 실제 올해 5월 말 기준 그룹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조선3사를 통해 18억1600만달러의 선박을 수주했다. 이는 수주 목표액인 156억9400만달러의 11.6%에 불과하다. 

글로벌 선박 발주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현대중공업그룹도 부진을 면치 못한 것.

이런 와중에 국내외에서 끊이질 않는 논란들은 차기 그룹 총수로 꼽히는 정 부사장의 앞날에도 암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모습. 

악화된 경영 상황 속 수주량 등 실적 회복과 이미지 및 신뢰도 제고 등 과제들을 앞으로 정 부사장 어떻게,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 풀어나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