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수급 비상:혈액보유량 감소에 곳곳서 도움 손길→작은 선행 실천으로 풍요로워지는 사회

[공공뉴스=이승아 기자] # 20대 후반 직장인 A씨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의 헌혈 독려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19로 헌혈자가 감소해 혈액보유량이 주의단계에 진입했다는 내용으로, 복지부는 가까운 헌혈의집이나 헌혈카페를 방문해 헌혈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대학교 졸업 후 헌혈을 하지 않았던 A씨는 살짝 겁이 났음에도 이참에 다시 헌혈을 해보자는 생각에 헌혈의집을 찾았다. 헌혈 후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긴 했지만, A씨는 자신의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적정 혈액보유량 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 감염 우려가 헌혈 참여 감소로 이어지면서 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 

수혈은 목숨과 직결된 것으로, 특정 병을 앓고 있거나 큰 사고를 당했을 때 수혈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혈액보유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는 헌혈 선진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헌혈 인구가 많은 나라. 하지만 최근에는 어쩔 수 없는 코로나 시국 탓에 헌혈의 집을 찾는 발길이 줄어든 상황.

그럼에도 대학생부터 공무원까지 헌혈 릴레이가 이어지는 등 곳곳에서는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이어가고 있다. 

# 비대면 시대가 가져온 혈액 수급 부족 사태

최근 백혈병환우회 게시판에는 지정헌혈자를 급하게 구한다는 글이 게시됐다. 올해 코로나19 여파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시민들의 헌혈 참여가 급격히 줄어들며 혈액보유량이 부족해진 탓이다.

백혈병환우들 중에는 하루에 1~3번 가량 혈소판을 매일 수혈 받아야 하는 환자도 있다. 때문에 웹사이트 등에서 혈소판을 급하게 구한다는 글이 자주 보인다. 

하지만 자기와 같은 혈액형을 찾아 혈소판을 공급받는다는 것은 코로나 시국에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됐고, 백혈병환우회 가족들은 혈소판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분주히 뛰고 있다.

특히 혈소판의 저장기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혈액수급 위기 시대에 이들은 직접 지정헌혈자를 구하고 있는 상황.  

이와 관련해 백혈병환우회는 지난 7월 백혈병환우와 가족이 직접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혈소판 헌혈 참여를 촉구하는 성명문을 내기도 했다.

올해 혈액보유량 부족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사안이다. 

22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혈액보유량은 총 1만7243유닛(Unit)이다. 혈액형별로는 ▲O형 3457유닛 ▲A형 6689유닛 ▲B형 4840유닛 ▲AB형 2257유닛이다. 

전국 1일 소요량은 총 5277유닛이며 ▲O형 1481유닛 ▲A형 1811유닛 ▲B형 1390유닛 ▲AB형 595유닛이다. 

혈액 보유상태는 총 3.3일분으로, 혈액수급 위기단계 중 ’관심’ 단계에 해당한다. 

혈액보유량은 혈액형과 관계없이 하루 소요량 기준 5일치가 적정선이다. 미달 정도에 따라 ‘관심’(5일분 미만)·‘주의’(3일분 미만)·‘경계’(2일분 미만)·‘심각’(1일분 미만) 4단계로 구분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혈액보유량이 적정수준을 유지한 날은 매우 드물다. 

이처럼 혈액 수급이 심각한 상황인 가운데, 이달 중순 헌혈자 다수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대한적십자사 산하 혈액원에 헌혈한 4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한 이들의 혈액으로 만든 적혈구·혈소판 등 99건의 혈액성분제제 가운데 45건이 병원에 출고돼 혈액성분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 사용됐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수혈 받은 환자들을 파악하지도, 이들에게 코로나19 확진자 혈액으로 만들어진 혈액성분제제를 맞았다는 사실을 통보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혈액 관리의 허점이 도마 위에 올랐고 비판이 이어졌다.  

논란이 일자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19 확진자 42명 중 38명은 관련 증상이 없던 확진 전 헌혈한 경우이며, 나머지 4명은 완치 후 헌혈했다고 해명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수혈을 통한 감염자가 없다”고 일축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혈액부족 사태 해결에 발목을 잡는 결정적 사건이 됐다.

지난 9월10일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사진=뉴시스>

# 멈추지 않는 헌혈 봉사 릴레이

헌혈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혈액 수급 비상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곳곳에서는 여전히 헌혈 캠페인을 벌이는 등 따뜻한 선행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충추 경찰서 직원들의 헌혈을 시작으로 광양 경찰서와 대구 경찰서, 예천 경찰서 등이 혈액 수급난 해소를 돕기 위해 헌혈에 참여했다. 온상소방서 직원 60여명도 헌혈 릴레이에 동참했다.

헌혈 봉사활동은 학생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14일부터 이틀간 목원대학교 학생회는 교내 광장에서 헌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헌혈자에게 대학 주변 매장 이용권을 제공해 소상공인 돕기에도 적극 나섰다. 

창신대학교 학생과 교직원들 역시 헌혈에 참여했다. 창신대 학생들은 헌혈부족 사태를 언급하며 앞으로 헌혈 참여 릴레이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꾸준히 헌혈에 동참하고 있는 봉사 단체도 있다. ‘Rh-봉사회’는 Rh-혈액형인 사람들을 위한 긴급수혈을 위한 봉사회다.

Rh-봉사회는 대한적십자사 산하에 전국협의회를 두고 있다. 정기적 모임이나 친목을 도모하는 소규모 모임도 있을뿐더러 그들만의 끈끈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희귀성과 소수성은 RH-혈액형 봉사회가 가진 특색으로 보인다. 그들의 혈액은 희귀하며, 자칫 일어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해 응급처치를 수월히 받기 위해 그들은 봉사회에 가입한다.

현재 통계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음성혈액보유자는 1000명중 3~4명 내외로 다른 나라의 평균치에 비해 구성률이 낮은 편이다.

<사진=뉴시스>

# 봉사를 위한 첫걸음 ‘이기적 이타심’

전국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헌혈 동참 캠페인을 열고 있지만 헌혈 수급은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꾸준히 헌혈 참여를 이어오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있어 더 큰 위기 상황까지는 직면하지는 않고 있다. 

헌혈을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도 헌혈 선진국 타이틀에 한몫 했다. 실제 의무봉사 시간을 채우는 수단으로 헌혈을 하는 학생들도 상당하다. 

진정성 있는 자발적 헌혈이라면 더욱 뜻깊겠지만, 이 역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박수 받아 마땅한 일.  

소수의 사람들은 봉사라는 건 ‘이기적 이타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00%로 오직 남을 위한 게 아닌 봉사를 행하며 얻는 성취감이나 기쁨, 베품의 즐거움 등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 ‘봉사’라고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시트콤 ‘프렌즈’ 중 이기적 이타심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등장인물 중 조이는 “이기심을 배제한 선행은 없다”고 주장했고, 피비는 “오로지 남을 위한 ‘이타적인 선행’도 있다”며 다투는 내용이다.

결국 피비는 100% 이타적인 선행을 찾아내지 못했고, 모든 선행은 이기심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사’라고 하면 도덕적 의무를 항상 철저히 지키며 살아야 하고 무조건 착하게 보여야한다는 부담감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러나 나의 이기심으로 시작된 작은 이타적인 선행부터 실천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중 헌혈이란 작은 선행에 딱 어울리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관심단계에 있는 혈액수급량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관심을 가진다면 이기적인 이타심으로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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