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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스토리
[공공story] 노동존중 사회를 위하여
#전태일 50주기:“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분신 항거로 뿌린 씨앗→이제는 권리로 보상 받을 때
이승아 기자 (114@00news.co.kr)  2020. 11. 13

[공공뉴스=이승아 기자] # 30대 남성 A씨는 프리랜서로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일을 하다가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일거리가 줄어들자 한 물류센터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택배 배송 업무 등은 하지 않아 다른 직원들보다는 비교적 편하게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A씨도 배송 업무를 해볼까 했지만, 주위에서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왔던 탓에 마음을 접었다. 실제로 물류센터에서 친해진 형 B씨는 A씨에게 “배송 물량이 많을 때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쉴 틈이 없다”, “밥 먹고 잘 시간도 쪼개야 한다” 등 힘겨움을 토로하곤 했다. 자신의 일이 아닌 탓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최근 잇따르면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문득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유독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를 따라 DVD를 봤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친 것. 그때는 영화 내용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고, 그 친구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본격적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가 되다보니 불합리한 환경 개선과 노동자들의 인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노동자들의 인권 찾기에 앞장섰던 전태일 열사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다는 점에 다시 놀라며 30대인 자신이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지난 2011년 9월7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전태일 열사의 모친 故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1970년 11월13일. 청년 전태일은 휘발유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불을 켜 들었다. 당시 22살이던 그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했다. 

#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 열사

전태일 열사는 10대 시절 서울로 이사와 봉제공장에 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루가 시작되면 기계처럼 일만했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온통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이었다.

그가 일하던 평화시장 봉제공장 노동자의 90%는 여성이었다. 대부분이 폐렴과 결핵, 두통 등의 질환에 시달렸고 평균 근무시간은 14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루 임금은 고작 100원에 불과했다.  

그런 노동자들의 기억 속 전태일은 너무나 따뜻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여동생 같았던 10대의 어린 여공들을 보살폈다. 갓 초등학교를 마치고 봉제공장으로 취직한 아이들이었다. 

정작 자신은 굶는 날이 더 많았음에도, 여공들을 데리고 밥도 사 먹이고 풀빵도 사주며 맏오빠처럼 돌봤다.  

하루는 폐렴에 걸려 해고된 여공을 도우려다 자신도 해고를 당한 일도 있었다.   

그는 이처럼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고, 노동자들이 받는 불합리한 처우 개선에 대해 항상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낮엔 일하고 밤엔 근로기준법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계획을 세웠다. 바보회, 삼동회 등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기업들과 정치권에 맞서 노동 개혁을 하려 애썼다. 다수 언론에 노동실태 등을 알리는 탄원서와 호소문을 보냈지만 번번히 묵살당했다.

본격적으로 시위와 투쟁을 위한 삼동회를 결성한 뒤 최초 1970년 한 신문사에서 열악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발하는 글을 실어줌으로서 주목을 받는 듯 했으나 직접적으로 바뀌는 건 없었다. 이 일이 근로기준법 화형식 계획에 일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 후 그 뜻을 이어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도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어머니 고(故) 이소선 여사는 청계피복노조를 만들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2020년이 되서야 정부는 고 이소선 여사에게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했다. 

또한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했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과 전태삼·태리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서식에서 지난 50년간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온 고 이소선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이며, 희망이다.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전태일 3법 입법 촉구 조형물이 설치돼있다. <사진=뉴시스>

# 여전히 곳곳서 울려 퍼지는 노동자들의 울분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 한지 50년이 지났지만, 노동현장 부당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아직까지도 많다. 21세기에도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최초 노동법으로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헌법 제32조 3항에 의거해 근로조건 기준을 정해 놓은 법률이다.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 보장하고 향상시키며 균형있는 국민경제 발전을 기함이 목적이다. 

이 법률은 1953년 5월10일 법률 제286호로 제정·공포돼 그 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8월 기준 임금노동자 중 약 35%는 비정규직이다. 약 35%의 노동자 대다수는 여성들과 70세 이상의 고령인구다. 

현재 임금근로자 65%만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된 사업체에 종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35%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적용되지 못한 채 불안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이른바 ‘전태일 3법’이라고 불리는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본떠 민주노총이 제안한 이 법안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안 ▲노조 설립과 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노동조합법 2조 개정안 ▲중대 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처벌을 확대하는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노동을 할지라도 누구는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일하고, 누구는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구조에 대한 차별 개선이 전태일 3법의 핵심이다. 

5인 이하 사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와 3D업종 종사자(노동집약산업) 대다수는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간접고용 노동자 수는 350만명으로 집계됐다.

비용절감 등의 이유로 간접고용자 수가 점점 늘어가지만 그들이 법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는 2020년 현재까지 미미한 상태다.

인권위 조사결과 업무상 재해 경험비율도 간접고용자가 원천 정규직자보다 높을뿐 아니라,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본인 부담으로 치료비를 내는 비율도 간접고용자들이 2배 이상 높았다. 

간접고용자 비율이 높은 3D업종 종사자가 업무상 재해를 입는 경우가 높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많은 위험 요소들과 안전불감증이 더해진 근무환경에 근로기준법까지 적용받을 수 없어 사고 후 산업재해 처리를 못 받는 경우가 절반이다.

노동은 구분이 없고 중요함과 아님을 나눌 수 없음에도 국가는 법으로서 노동의 종류를 분류하고 가치를 매기며 국민을 차별하고 있다.

헌법 제11조는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2020년 현재 노동자들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 못하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They are not machines.(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전 의원은 지금껏 노동자들을 위해 살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전 전 의원은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 가족 모두가 일생동안 노동운동을 한 깊은 뜻은 우리는 감히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가 모든 노동자를 위한 변화의 시발점이 된 것은 확실하다. 

노동 시위가 벌어질 때면 어김없이 전태일 열사 이름과 함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함께한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희생이 때로는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

많은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분개하며 스스로 권리 찾기에 목청을 높이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받친 고귀한 희생은 개혁의 불씨가 돼 영원히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타오를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안전과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만들어져 더이상 제2, 제3의 전태일이 나오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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