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김치:높아진 글로벌 위상 속 잊혀져 가는 김장문화→이웃과 함께하는 한국의 情 되돌아보기

[공공뉴스=이승아 기자] #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회사를 다니는 20대 후반 직장인 A씨는 홀로 생활을 하면서 우울한 날들이 많아졌다. 젊은층의 개인주의 성향 탓인지 회사 직원들과는 업무 외적으로 소통이 별로 없어 벽이 느껴졌고,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도 하나 없어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퇴근길 그렇게 속으로 신세 한탄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앞에 다다른 A씨. 방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중 아래층에 사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갑자기 A씨를 불러 세웠고, 아주머니는 “아가씨 혼자 사는데 잘 먹고 다녀야지”라고 하며 김장김치가 담긴 접시를 A씨에게 건넸다. A씨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올라오는 사이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도 자신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작은 나눔과 관심이 A씨를 울컥하게 했다. 

<사진=픽사베이>

찬바람이 불면 우리나라는 거대한 김장공장으로 변신한다. 매년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김장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는 한 해 동안 가족들의 밥상을 책임질 김치를 담그고 월동 준비를 시작한다.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우리의 김장 문화는 예로부터 이웃들 간에 일손을 나누는 대표적인 품앗이다. 그러나 가족 규모가 축소되고 1인 가구가 확대되면서 김장 풍경과 정을 나누는 풍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김장문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택배물류센터 직원들은 김치 박스들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온라인으로 포장 김치를 주문해 배송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중 명절 다음으로 큰 행사로 여겨졌던 김장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동네주민들이 같은 날 모여 김장을 하는 문화는 사라져 버렸고, 김장하는 엄마 옆에 붙어서 김치 한쪽 씩 얻어먹던 기억은 지금은 그저 추억으로 남았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김장에 필요한 채소들 가격을 고려하면 완제품 김치나 중국산 김치를 사먹는 것이 훨씬 싸다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깍두기, 백김치, 갓김치 등 종류도 다양해 이를 찾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올해는 여름철 긴 장마와 집중호우 등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김장재료 구입 비용이 높아져 소비자들의 걱정이 컸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달 5일 배추 1포기 가격은 1만1657원까지 치솟으며 ‘금(金)추’로 불리기도 했다. 무 1개 가격도 지난달 초 4000원에 육박했다. 

다행히 10월 중순 이후 배추와 무 가격은 내렸고, 현재는 안정세를 찾은 상황. 그러나 김장의 핵심인 고추를 비롯한 참깨 등 생산량이 전년보다 크게 줄면서 가격이 평년에 비해 폭등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야채를 썰고, 갈고 찹쌀풀을 쑤는 고생스러운 수고까지 덜어주니 포장 김치를 찾는 가정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처럼 점점 포장 김치 시장이 커지면서 홈쇼핑에서는 매년 김장철 김치판매가 큰 수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 올해 세계김치연구소에서는 ‘김치 양념 속 넣기 자동화 장치’ 기술을 개발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김치의 입지를 넓히고 널리 보급화하기 위한 기계를 발명한 것이다. 그동안 김치는 양념 속을 하나하나 사람이 넣었기 때문에 인건비 문제며, 공정 과정에 있어서도 꽤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다. 

김치 양념 속 넣는 기계 개발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포장 김치 가격도 싸게 보급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자리 부족이 심각한 시대에 김치 기계까지 발명되자 우려하는 여론도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키오스크와 마찬가지로 하나둘씩 기계화 되는 세상이라지만 김치 양념 속까지 로봇이 넣어서야 되겠냐는 지적. 

일부 어르신들은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로봇이 만들면 손맛이 나겠냐?’며 혀를 내두를 지도 모를 일이다. 

2019년 11월2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서울김장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김장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K-김치, 전세계를 사로잡다

한국은 ‘김치의 민족’ 답게 김치를 먹기 위해 ‘김치냉장고’까지 만들어 낸 나라다. 외국인들은 ‘김치냉장고’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면서도 놀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한국인은 왜 김치냉장고가 필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김치는 갓 담근 김치, 익은 김치, 신김치, 묵은지 등 익힘과 숙성 정도에 따라 너무나 많은 종류로 나눌 수 있으며 맛도 다르고 각자의 취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김치는 최근 유행하는 게임 대열에도 합세했다. 바로 ‘김치 게임’이라고 불리며 인터넷 검색창에 존재하지 않을 김치 종류를 검색하는 것. 예를 들어 ‘키위 김치’, ‘두리안 김치’, ‘바나나 김치’ 등을 검색해 검색 결과가 나오면 지게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참 다양한 채소와 과일들로 온갖 김치를 만들어냈고, 김치냉장고의 존재와 더불어 전 세계에 K-김치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올해는 우리나라의 K-방역이 찬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방역이 잘 된 이유 중 하나로 김치가 꼽히기도 했다. 

외신 기자들은 연일 ‘김치 때문에 한국인은 코로나에 잘 걸리지 않는거냐?’는 질문을 하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장 부스케 프랑스 몽펠리에대 폐의학과 명예교수 연구팀에서 한국에서는 김치를 먹기 때문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 7월 정은경 질병청장은 브리핑을 통해 “2003년 사스가 유행했을 당시 해외에서 우리나라 사스 확진자가 없던 이유가 김치라고 설명을 했었다”며 “좀 더 증명돼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인들의 김치 관심이 빚어낸 작은 소동이지만 우리의 김치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2020 제2회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가 열린 25일 경산시 조영동 영남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재학생 및 유학생들이 경산지역 독거 어르신들에게 전달할 김치를 담그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잊지 말아야 할 ‘나눔의 미학’

개인주의가 강한 외국인들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어 중 하나는 ‘정’이란 단어다. 우리나라에선 품앗이 등 자연스레 정을 베푸는 관습이 오래 전부터 내려져고, 한국인하면 ‘정’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품 속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많은 것을 배웠다. 대가없는 베품이란 세상에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님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노동에 대해 값을 치러야만 하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 곤경에 처한 나를 선뜻 도와줄 때 막연한 의심이 들 때도 많다.  

어느새 현대인들은 도심 속에 살며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며 개인주의가 팽배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시대가 변했고, 이웃끼리 김장철이나 농사철 일손을 도우며 품앗이 할 기회가 사라졌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정을 베풀 기회도 뺏어갔다. 

그러나 꼭 김장을 하지 않아도, 밭을 일구지 않아도 분명 사회 속에서 남에게 정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면 수없이 많다.  

정이 없는 삭막한 사회는 우리의 삶을 좁혀지게 할 뿐이다. 작은 베품을 시작으로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우리의 삶을 넓혀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듯 우리 여전히 서로의 정이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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