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폐렴 증세로 입원해 투병생활..15일 오전 4시 타계
韓 사회운동 전반에 적극 참여..유신 반대 서명운동 주도해 옥고
두 차례 대선 도전, 통일문제연구소 설립해 통일·노동운동 지원

15일 새벽 별세한 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사진=뉴시스>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 말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中)

민중예술·민족문화의 보고(寶庫)이자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와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앞장서온 ‘거리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오전 4시 타계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날 오전 영면했다. 

비보를 접한 여야 정치권은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며 일제히 애도를 표했고, 시민사회 등 곳곳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동부리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적극 참여했다. 

고인은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당시 1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후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백 소장은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4년 뒤인 1992년 대선에 독자 민중후보로 다시 출마했다. 그러나 낙선한 뒤 고인은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 소장으로 활동하며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지원했다. ‘거리의 투사’ 백 소장은 거침없는 행보는 2000년대 들어서도 이어졌다.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용산 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등 다수의 투쟁현장에 직접 참여했고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 등에도 함께했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며, 특히 한국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미담·현담, 아들 일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