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권리..서울시,‘이동식 경사로’ 무료 지원
장애인 사회참여활동 활성화 위해 관점의 전환, 환경개선 목소리 ↑

[공공뉴스=박혜란 기자] 과거에 비해 장애인의 사회참여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불편 해소를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특히 장애인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권 보장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각종 관련 사업이 이미 시행 중이거나 추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사회활동 활성화와 완벽한 자립을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한 모습. 인식과 환경 변화 없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유아차 이용자들도 동네 약국, 식당, 한의원 같은 생활밀착형 소규모시설에 편리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동네가게에 '이동식 경사로'를 무료로 지원했다고 10일 밝혔다. 사진=뉴시스
서울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유아차 이용자들도 동네 약국, 식당, 한의원 같은 생활밀착형 소규모시설에 편리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동네가게에 '이동식 경사로'를 무료로 지원했다고 10일 밝혔다. <사진=뉴시스>

◆장애인 이동권 보장..‘5cm’의 희망 전하는 서울시

일반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수 있는 약국이나 식당, 슈퍼 같은 상점의 출입문 앞 작은 문턱이 누군가에겐 진입 자체를 어렵게 하는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겨우 5cm 높이의 턱에 가로막혀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서울시가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유아차 이용자들도 동네의 약국, 식당, 한의원 같은 생활밀착형 소규모시설에 편리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동네가게 문턱 낮추기에 나섰다.

서울시는 한화솔루션㈜와 협업해 휠체어·유아차 등이 출입문을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약국 식당 등 19개 시설에 맞춤경사로를 제작해 지난 2월 전달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동식 경사로는 휠체어 이용자가 있을 땐 문턱에 펼쳐서 설치하고, 평상시엔 접어서 보관할 수 있다. 설치‧해체에 30초도 채 걸리지 않고, 접었을 때는 가방 형태로 휴대·보관할 수 있어 설치‧해체가 간편하다. 

이번 지원사업은 한화솔루션의 사회공헌사업과 연계해 추진됐다. 서울시와 한화솔루션, 서울특별시지체장애인협회는 지난해 10월 ‘이동약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경사로 지원 공동협력 협약’을 체결하고, 한화솔루션의 후원금 1000만원으로 이번 사업을 추진했다. 

이동식 경사로가 설치된 19개소는 모두 시민 이용도가 높지만 출입구에 턱이 있어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시설들이다. 출입문에는 이동식 경사로가 비치된 시설임을 알려주는 스티커를 부착했다. 시설을 들어가고 싶다면 전화해 요청하면 된다. 

경사로 지원 사업에 참여한 금천구 소재 한 유통점 사장 A씨는 “가게의 접근성이 용이해져 장애인 분들에게도 좋고 저 또한 기분이 좋다”라며 “장애인 분들의 이동이 편해져서 흐뭇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체장애인 이모씨(50대·남)는 이동식 경사로를 이용해 본 소감으로 “약국, 식당을 이용할 때마다 주출입구 턱으로 인해 난감한 적이 많았는데 이동식 경사로가 설치돼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경사로가 더욱 많이 보급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서울시는 이번 19개소 설치 결과를 토대로 2억9250만원의 시 예산을 투입해 올 한해 총 580여개 생활밀착형 소규모시설에 경사로 설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자치구에서 대상지를 선정하고, 시설 여건 등을 고려해 이동식과 고정식 경사로 중 선택해 지원한다. 

김선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누군가에게는 5cm 문턱이 진입 자체를 어렵게 하는 높은 장애물이 될 수 있다”라며 “서울시는 생활밀착형 소규모시설 경사로 설치 지원 사업을 통해 이동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서울역 방면 열차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서울역 방면 열차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아직도 갈 길 멀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특히 안전한 이동권을 외치는 목소리는 2001년 발생한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를 계기로 확산됐다.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70대 장애인 노부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당시 사고를 당한 노부부는 단지 전철을 타기 위해 장애인용 수직 리프트에 올랐을 뿐이었다.  

이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점거와 농성을 진행하며 장애인의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권 보장을 외쳤다.

그 결과 서울시에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되고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의 운행도 시작됐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도 시행되고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계획들이 수립됐다. 

하지만 장애인은 여전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을 탈 수 없는 역이 있고, 버스를 타기 위해선 저상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이 한 시간이 될 수도,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운 좋게 바로 오더라도 탈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못 타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다면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교통약자는 물론 누구나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10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를 맞아 4호선 당고개역에서 서울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4개 조로 나눠 한 열차에 약 10여 명의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탔다. 이들은 열차가 서는 역마다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며 요구안을 외쳤다. 

요구안에는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 이행 ▲중형 저상버스(마을버스) 도입 계획 수립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지역간 차별 철폐 ▲장애인 단체 이동지원 ‘장애인버스’ 증차계획 이행 등 내용이 담겼다.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에 2025년까지 서울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20년 기준 도입률은 58%에 그친다. 2021년 관련 예산은 220억원 삭감됐다.  

또한 1500대가 넘는 중형저상버스(마을버스) 중에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마을버스는 0대다. 

이외에도 2022년까지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 100%’설치(최소 하나 이상의 연결된 경로)를 약속했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22개 역이 승강장에서 출구까지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지 않아 장애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교통공사는 예산 확보가 되면 설치하겠지만 여전히 예산은 확보되지 않고 있다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설공단은 지난해 12월 예상도착시간 알려주는 장애인콜택시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자료=서울시
서울시설공단은 지난해 12월 예상도착시간 알려주는 장애인콜택시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자료=서울시>

◆장애인의 무능력, 환경이 만든다..개선 촉구 목소리

한편, 김도현 노들장애인야학교사는 1월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5기 활동에서 ‘장애와 장애인운동의 사회적 이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장애인권을 이해하기 위해선 장애인을 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흑인에게 “당신은 검은 피부 때문에 노예가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말의 어패가 바로 느껴질 것이다. 흑인이 노예가 된 원인은 피부색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이기 때문이다. 현재 노예제가 없어진 건 이런 억압의 철폐로 인해서다.

이와 같이 장애인이 무언가 할 수 없음(disability)을 겪는 이유는 그 사람 몸에 있는 손상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건 시설, 즉 주위 환경이다.

예를 들어,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라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없이 탈 수 있다. 또 모든 사람이 수어를 한다면 농인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비장애인중심사회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환경을 변화시키면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인이 수어를 배우는 경우가 바로 그것. 더 나아가 국가 및 지자체 차원에서는 수어 통역을 도움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수단, 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적시돼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용편의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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