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격으로 희생된 故박병현씨 유가족 직접 만나 사죄..첫 사례

[공공뉴스=박혜란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총에 맞아 숨진 고(故) 박병현(당시 25세)씨의 유가족을 만나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5·18 진압 작전에 나섰던 가해 당사자가 자신의 사격으로 희생된 피해자의 유족을 직접 만나 공개 사죄한 것은 41년 만에 처음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사진 왼쪽)이 지난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서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박병현 씨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1980년 5월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던 이 부대원은 조준 사격으로 박씨를 숨지게 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사진 왼쪽)이 지난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서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박병현 씨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1980년 5월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던 이 부대원은 조준 사격으로 박씨를 숨지게 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1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전날(16일) 국립 5·18민주묘지 내 접견실에서 5·18 당시 민간인을 사살한 계엄군 A씨와 희생자 유가족간 만남이 이뤄졌다.  

이번 만남을 주선한 진상조사위는 직접 용서를 빌고 싶다는 A씨의 요구에 피해자 유가족이 고민 끝에 응해 만남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유가족은 진상조사위에 “우리 가족은 이미 오래전에 다 용서했다”며 “그 군인이 무슨 죄가 있겠나. 명령을 수행한 죄밖에 더 있겠나. 명령을 내린 놈이 나쁜 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과의 만남에서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라며 “제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라며 용서를 구했다.

유가족에게 큰 절을 올린 후 A씨는 “지난 40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면서 “유가족을 이제라도 만나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고인의 형 박종수(73)씨는 “늦게라도 사과해줘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라며 “용기 있게 나서줘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라고 말하며 A씨를 안아줬다.

1980년 5월23일 고 박병현씨는 농사일을 돕고자 고향인 보성으로 가기 위해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던 중 사살됐다. 고 박병현씨는 ‘국립 5.18민주묘지 2-02’에 잠들어 있다. 

당시 박씨를 목격한 A씨는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으로 순찰 중이었다.

조사에서 A씨는 “순찰 중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저희를 보고 도망가자 정지할 것을 명령했다”라며 “겁에 질려 도주하던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라고 진술했다.

이어 “고인의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라며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계엄군이 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격을 가한 것이라는 신군부 기록을 정면 반박한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건강 관리에 유의해 달라”며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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