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상한제 무력화..노동자 과로·임금하락 우려
독소조항,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조항 무력화 가능
근로시간 사전 ‘서면합의’..어길시 80~300만원 과태료

[공공뉴스=박혜란 기자] 탄력·선택 근로제 등 유연근무제가 6일부터 확대 시행됐지만, 근로자 대표 민주적 선출 등에 대한 규정은 공백 상태라는 점에서 과반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과로와 임금하락을 야기할 수 있단 경고가 나온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2019년 2월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철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2019년 2월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철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탄력근로 6개월·선택근로 3개월 확대시행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2019년 10월 탄력근로제 개편안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합의문’을 의결했다. 그로부터 1년 넘은 기다림 끝에, 지난해 1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를 통과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기간 내 특정일·특정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날·다른주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단뒤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주52시간) 이내로 맞추는 제도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최대 3개월 내인 단위기간이 최대 6개월로 확대조정됐다. 또한 선택근로제의 경우에도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이 같은 개정안은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른 기업애로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편됐다.

유연근무제 시행에 시민단체들은 일정기간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근로자의 건강권 침해를 우려하자 정부는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및 사용자 임금 보전 방안 노동부 신고 등을 개정법에 담았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1월 인가사유 확대된 특별연장근로를 하는 경우 근로자의 건강보호 조치를 법적 의무로 규정해 한층 두텁게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면서도 세부적인 기준은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대표의 지위, 권한, 선출 방법 등에 관한 규정이 전무해 경사노위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노사정 합의를 내놨지만,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또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 근로자대표제 개선 법안이 회부돼 있지만, 해당 법안은 노사정 헙의문과는 달리 근로자대표 선출과정과 근로자대표의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개입·방해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2019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서관 앞에서 노동개악 분쇄!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2019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서관 앞에서 노동개악 분쇄!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근로자대표 민주적 선출 규정 뒷받침돼야

이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선행돼야 할 과제에 대한 해결 없이 탄력근로제가 시행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폐지하고, 국회는 근로자대표제도 법률안을 개정하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현행법은 누가 근로자대표가 되는가에 대해서만 명시했을 뿐 민주적 선출 절차나 권한 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관련 입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사이 탄력근로제가 시행에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유연근무제의 무분별한 오·남용 사례를 억제하기 위해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노사정 합의 정신을 존중해 관련 법률안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특별연장근로 건강보호조치’에 대해 “겉으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주 52시간제 적용확대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에 앞서 한시적으로만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뒤집고 특별연장근로 조치를 영구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미 특별연장근로 인가건수가 지난해에만 전년도 대비 5배 이상 폭증해 실노동시간 단축을 무위로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확대 시행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통해 유연근무제 확대는 “주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해 노동자의 과로와 임금하락을 야기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특히 사용자가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는 것에 대해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해당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는 독소조항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근로자 대표는 유연근무제뿐만 아니라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해고·노동시간·휴게시간 등 노동관계법 7개 법률의 36개 조항에 대해 사용자와 합의하는 권한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근로자 대표가 선출될 경우, 현장에선 이를 악용해 노조 활동을 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행법상 근로자대표의 선출방법, 지위와 권한, 임기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이에 대한 입법 논의가 촉구돼왔지만 지난 3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심의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근로자대표 선출 절차와 방법·임기 등을 구체화하고, 사용자의 지배개입을 금지하는 등 근로자대표제도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개정 논의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에도 “근로자대표제도가 개선되기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과반수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유연근무제가 무분별하게 도입되는 상황을 마주하기 전에 하루빨리 근로자대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개정법에 따라 3개월 이상의 단위기간을 적용한 탄력근로제를 사용할 경우, 사업장은 대상 근로자, 단위 기간, 주별 근로시간 등을 사전에 서면합의해야 한다.

근로시간 변경이 필요할 경우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로도 가능하다. 일별 근로시간은 시행 2주 전까지 근로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또한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인해 줄어드는 임금을 보전해줄 방안에 대해 노사 간 서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노동부에 신고하면 1차 80만원, 2차 150만원, 3차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