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조선소서 협력업체 소속 40대 노동자 추락사..올해만 2번째 중대재해
노조 측,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 및 시스템 문제 지적..“CEO 구속수사가 답”
회사 측 재발방지 약속에도 ‘냉랭’..ESG경영 미흡 지적, IPO에도 악재 되나

[공공뉴스=이민경 기자] “입으로만 떠든 안전대책에 또 떨어져 죽었다”

현대중공업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또다시 발생해 규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노동자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 산업현장으로, 울산조선소에서는 지난 2월에 이어 어버이날인 5월8일 또 한명의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난 것.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이번 사고 현장에 안전 그물망 등 안전설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점,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노동 구조 등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과 시스템 문제가 노동자를 끊임없이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조선업계에 ESG경영이 본격화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내년 시행을 앞둔 상황 속 계속되는 사망사고는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의 책임론은 더욱 부각시키는 모습. 

한 사장은 앞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산재 발생 이유를 작업자 탓으로 돌리는 망언으로 뭇매를 맞은 가운데, 노조 측은 노동자 안전문제에 개선 의지가 없는 회사의 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대표이사 구속이 답”이라며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사진=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캡쳐>

◆안전 장치 없었다..어버이날 ‘참극’에 분노한 노동자들

10일 현대중공업 및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이하 노조)에 따르면, 어버이날인 8일, 오전 8시40분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9도크에서 건조 중이던 대형 원유 운반선 탱크 안에서 협력업체 40대 노동자 A씨가 추락했다. 

용접보조공인 A씨는 건조3부 소속 단기 물량팀 노동자로, 3144호선 3번 탱크 상부 20m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퍽’ 소리가 나서 가보니 A씨가 쓰러져 있었다는 다른 작업자의 말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망 원인 등을 조사 중이다. 

이 사고와 관련해 노조 측은 이날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필요한 조치만 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주장하며 “노동자의 죽음 책임을 회피한 현대중공업과 노동부, 검찰은 참사 책임을 지고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협력업체 노동자 A씨는 제대로 된 표준작업 지시서 없이 구두로 작업 지시를 받았다. 하청에 재하청, 단기계약 방식이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것. 

또한 사고가 난 작업장 현장에는 추락을 방지할만한 그물망 등 안전장치도 없었다. 

현대중공업 노조 자유게시판에는 이 같은 사측의 안전관리 미비 문제를 지적하며 경영진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글들을 잇따라 올라오고 있는 상황. 올해만 2번째 사망사고라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한 노동자는 “높은 곳 작업 시 그물망은 필수”라며 “사측은 여지껏 작업자의 실수로만 몰아가며 교묘하게 책임을 면하고 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노동자는 “현장관리자는 안전관리자랑 짝짜꿍해서 불안전작업을 해도 그냥 하라고 하고 안 한다고 하면 불이익주고 하청업체 불러다가 작업시킨다”며 “위험하다고 말하면 조심해서 하라는 말 뿐”이라고 분노했다. 

노조는 “불법 다단계 하청 고용구조 문제 등 세습경영에 혈안이 돼 안전을 뒤로한 생산제일 경영이 저지른 비극”이라며 “현대중공업 자본은 사고가 날 때마다 불법 다단계 하청 고용구조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지난해 고용부 울산지청장에 불법 다단계 하청고용구조 문제와 상습 임금체불 문제 해결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여전히 남의 집 불구경 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물 건너 간 꼴”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노조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중대재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때까지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집행부·대의원은 현장 안전 활동을 강화하고 재해예방을 위한 강력한 조처를 다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중대재해의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CEO 구속수사를 포함한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규탄문(왼쪽), 현대중공업 임직원 명의 추도문.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현대중공업>

◆재발방지 약속에도 냉랭..잇단 사망에 부각되는 ‘한영석 책임론’

A씨의 사망과 관련해 현대중공업은 이날 임직원 명의의 추도문을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은 추도문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하며 “큰 충격과 실의에 잠겨 있을 유가족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족들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대중공업은 “모든 임직원이 재해 예방활동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뜻하지 않은 중대재해가 또다시 발생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사고의 빠른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회사는 이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방침을 더 확고히 하고, 작업상의 위험요소를 점검하고 미흡한 부분을 개선하는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현대중공업에 쏟아지는 여론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크고작은 사고는 물론, 노동자들 사이에서 ‘생산 제일주의’라는 비난이 들끓고 있는 까닭.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은 ESG경영을 본격화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균영있게 고려한 경영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러나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사회적책임에 대한 관리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들리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망사고가 코스피 입성을 위한 공식 일정에 돌입한 현대중공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 분위기. 

현대중공업은 올해 1월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관련 절차를 서두르고 있지만 끊이지 않는 노동자 사망사고는 회사의 앞길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부정 이슈이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 발생에 각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현재, 현대중공업 내부에서는 “노동자 안전은 뒷전”이라며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산재 발생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역풍을 맞은 한 사장의 안전 책임론은 점점 더 거세지는 형국이다. 

한편,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공뉴스>에 “현재 사망사고 원인 등에 대해 경찰, 고용노동부 등 유관기관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한 사장 책임론 등과 관련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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