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망:정인이 배 밟은 양모 ‘살인’ 인정→승리한 여론, 피해 예방에 주변 적극적 관심 필요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입양된 후 양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다가 생후 16개월 만에 안타깝게 숨진 ‘정인이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이 사건 피의자인 양모의 살인죄를 인정했다. 16개월 영아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양부모의 끔찍한 만행이 세간에 알려진 후 이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진정서가 재판부로 쏟아지는 등 범국민적 분노는 상당했다. 당초 이들 양부모에게는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등이 적용됐으나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자 검찰은 나중에서야 살인죄를 혐의에 추가했다. 그리고 재판부가 “살인이 맞다”고 판단하기까지, 이 모두는 범국민적 관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지난 4월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 정인이 사진이 놓여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4월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 정인이 사진이 놓여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막지 못한 16개월 정인이의 죽음..양모 ‘살인죄’ 인정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이상주)는 지난 14일 정인이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살인 및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모 장모(35)씨에게 무기징역을, 아동학대 및 유기·방임 등 혐의로 기소된 양부 안모(37)씨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던 양부는 선고 직후 곧바로 법정구속됐다. 

또한 부부에게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관련기관 취업 제한 10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장간막 파열, 췌장 절단 등이 발생하려면 강한 외력이 필요하다. 다른 둔기 등으로 복부를 가격했다면 멍이 관찰돼야 한다”며 “피해자 복부에 멍이 없는 점 등을 미뤄보면 복부와 조직이 같은 신체부위로 복부에 둔력(뭉툭한 것으로 넓은 부위에 가해진 힘)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양모 장씨가 가슴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손을 사용하기 불편한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피해자 복부를 발로 밟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간막 네 곳이 찢어지는 등 다발성 손상이 관찰되고, 다른 장기가 파열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피해자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밟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신에 대한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16개월 여아의 복부를 발로 밟으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인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다“면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부 안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인양의 상태를 알기 쉬운 지위에 있었는데도 아내의 학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인양 사망 전날 어린이집 원장이 병원에 데려가라고 당부했지만 거부하면서 피해자를 살릴 마지막 기회조차 막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정인양 학대 사망사건에 대해 “반인륜성과 반사회성이 매우 분명히 드러나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상실감을 줬다”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철저히 부정하는 범행들이라고 평가된다”고 했다. 

지난해 1월 장씨 부부에게 입양된 정인양은 같은 해 10월13일 서울 소재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당시 병원 의료진은 정인양의 몸에 멍자국 등을 보고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정인양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 사인이라는 소견을 내놨다. 

이후 검찰은 정인양 복부에 강한 둔력을 가해 췌장이 절단되고 장간막이 파열되면서 복강 내 다량의 출혈이 발생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리고 검찰은 장씨 부부를 재판에 넘겼다. 장씨 부부가 정인양을 입양한 뒤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상습적으로 폭행해 상해를 입히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여론 목소리는 달랐다. 16개월 영아를 상대로 한 끔찍하고 잔혹한 학대를 저지른 장씨 부부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고, 올해 1월 첫 재판을 앞두고 수백 건의 탄원서가 재판부에 쏟아지기도 했다.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갈수록 커지자 검찰은 법의학자들의 의견을 구해 첫 재판에서 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공판 과정에서 부검의와 법의학자 등을 증인으로 불러 장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한 검찰은 지난달 열린 결심 공판에서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양모 장씨에게 사형을, 양부 안씨에게는 징역 7년6개월을 내려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사진=뉴시스>

# 지금도 어디에선가..주변에서 발생하는 ‘은밀한 살인’

정인이 사건의 진실은 어쩌면 묻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불편한 진실들은 낱낱이 드러났다. 

이웃, 어린이집, 의사 등 3번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경찰의 태도는 안일했고, 정인양을 보호하지 못한 경찰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자 경찰청장은 국민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또한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들도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두 살배기 입양 아동을 학대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혐의로 30대 양부가 구속됐고, 부부싸움 도중 생후 7개월 딸을 수차례 때려 중태에 빠지게 한 20대 친모가 구속되는 등 아동학대 문제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 

가정뿐만 아니라 일부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도 아이를 향한 어른들의 학대 행위는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실제 알려진 것보다 학대받는 아동이 더 많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충격을 더하고 있다. 

16일 경찰청이 발행하는 과학수사(KCSI) 소식지 창간호(5월호)에 따르면, 김희송 국과수 법심리실장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아동 변사사건 1000여건의 사건을 확인한 결과 최대 391명의 사건에 학대 관련성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같은 기간 정부가 공식 집계한 아동학대 사망 통계는 90명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김 실장은 “아동학대에 대한 너무나 좁은 범위와 유형만을 검토해 놓쳤던 은밀한 살해는 없었는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망한 숨겨진 또 다른 정인이는 없었을지 확인해 볼 필요를 느끼고 부검자료 전수를 바탕으로 꼼꼼한 검토에 들어갔다”며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때 아동학대와 살해, 그리고 아동학대로 인한 살해의 정의를 처음부터 다시 정립하고 100여 가지 관련 변수를 검토했다”며 “국과수에서 파악한 ‘의심’건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2배에서 4배 정도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흔히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이라 하면 계부나 계모에 의해, 오랜 기간 잔인한, 고문과도 같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사망하는 사례들만을 떠올리기 쉽다”며 “그러나 아동학대 사망에는 그런 사건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예컨대 출생신고 조차 되지 않은 신생아 살해,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용어로 미화되는 부모에 의한 살해 후 자살은 모두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에 속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학대 혐의가 입증되지 못했을 뿐, 사실상 50%는 학대나 방임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정인이’가 있을지 모르며,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숫자는 사실 ‘빙산의 일각’만을 보여주고 있던 것일 수도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22일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중심에 있는 친모 석모씨(48)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가운데 이날 오전 경북 김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은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뉴시스>   

# 무관심 속 반복되는 비극, 땜질식 대책도 지겹다!

“피해자 사체가 그동안 경험한 아동학대 피해자 가운데 유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이 심각했다” (정인양 부검을 담당한 부검의 의견 中) 

16개월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근절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개정안이 통과됐고 정부는 1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시민단체들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등 제2, 제3의 정인이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곳곳에서 사회 안전망 확보에 팔을 걷고 나선 상황.  

하지만 완벽한 근절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아무리 법과 처벌을 강화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주변에서 학대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아동학대가 이뤄지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

특히 매번 사건이 터진 후에야 관련 대책이 마련되는 것에 국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한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일수록 국회에서는 경쟁하 듯 법안을 발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는 점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학대로 인해 사망하거나 다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기 징후 파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발빠른 신고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문성을 갖춘 조사 담당자도 더욱 충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학대행위를 ‘훈육’ 등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달이 진행 중인 아동에게 가해진 신체적, 정신적 학대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 남는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상당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며,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부모라고 해서, 혹은 보호자라는 이유로 아이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OECD 국가 중 출산율 최저라는 한국. 때문에 출산 장려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러나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대로된 보호막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평소 보호와 관심 속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이 짧은 생을 마감한 후 비로소 관심을 받게되는 불편한 현실에 어른으로서 또 다시 미안함이 커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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