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빈소 찾은 각계각층
尹 조문 도중 민주유공자법 제정 두고 이어진 실랑이 
법안, 21대 국회 문턱 넘을까..대선 앞 뜨거워진 관심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거리의 어머니’로 불린 배은심 여사가 별세하며 사회 각계각층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님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1일 오전 10시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열었다. 이후 운구행렬은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으로 이동해 노제를 진행했다.

이날 유족을 비롯한 노제 참석자들은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런 가운데 배 여사가 생전에 제정을 염원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분위기다.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고(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노제가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고(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노제가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민주화 투신한 배은심 여사 빈소 찾은 각계각층

배은심 여사는 지난 9일 오전 5시 반경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심근경색을 앓던 배 여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가 다시 쓰러져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배 여사는 아들인 고(故)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9일 민주화 시위 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지자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민주화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았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민주화 투쟁을 하다 세상을 떠난 열사들의 유가족이 모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 등을 통해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을 이끌어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은 배 여사는 2020년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당시 배 여사는 “다시는 이 나라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배 여사의 이 같은 행적을 기리기 위해 문 대통령뿐 아니라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빈소에서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며 “고인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역시 빈소를 찾아 넋을 기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대신해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권은희 원내대표도 조문을 마쳤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를 비롯해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빈소를 찾았다.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과 영화에서 이한열 열사로 출연했던 배우 강동원 역시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민주 투쟁을 통해 배 여사와 연을 맺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5·18 유공자단체, 5·18기념재단,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종교계 인사들도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오후 광주 조선대병원장례식장에 차려진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오후 광주 조선대병원장례식장에 차려진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尹 조문 도중 민주유공자법 제정 두고 이어진 실랑이 

다만 10일 오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조문을 오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장례위원회 측이 윤 후보를 향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재차 요구했기 때문.

유가협 장남수 회장은 윤 후보에게 “배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시냐”며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 달라고 농성을 하던 중에 돌아가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막아서 이 법이 상정되지 않고 있다”며 “더는 막지 말고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윤 후보는 “(민주유공자법은) 오늘 처음 이야기를 들어서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며 “서울에 가서 당 지도부와 이 문제를 상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안은 1998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고(故) 박종철·이한열·전태일 열사 등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부족하다는 게 법안 발의의 배경. 

현행 법령 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사망·부상·행방불명된 희생자들 혹은 그 가족만이 '민주유공자'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운동권 셀프 특혜’ 등의 비판을 받으며 입법이 매번 좌절됐다. 지난해 3월26일에도 설훈 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3명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다가 30일 철회한 바 있다.

법안 내용 중 국가보훈처 주도로 주택 분양에서 혜택을 주고, 농지나 주택 구입 및 임차 시 대출을 지원할 수 있게 한 부분이 공격을 받았기 때문. 

당시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은 “귀한 목숨을 바치신 분들의 유족은 당연히 우리 공동체가 예우해야 한다”며 “하지만 저를 포함해 민주화운동가들은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로부터 이미 차고 넘치게 보상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주류 중의 주류가 민주화운동가들”이라며 “제가 노력한 바에 비하면, 우리가 한 일에 비추면 송구할 정도로 받았다. 더 이상 뭘 더 바라고 특권법을 만드나”라고 꼬집었다.

입법이 번번이 좌절되자 유가협은 그해 6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했다.

장 회장은 이 자리에서 “민주유공자의 경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유공자들만 인정하고 6월항쟁 열사들을 비롯하여 노동열사, 농민열사, 학생열사 등 우리사회의 여러 곳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분들은 아직도 국가유공자로서의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이 된 민족민주유가족에게는 금전적 혜택이 거의 없다”며 “자녀가 없던 미혼인 열사이거나 또 자녀가 있더라도 다 성장해 대학 입학⋅취업 혜택도 필요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명예회복”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제출된 법안에서 문제점이 있으면 당사자들과 협의하여 해소하면 된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셀프법안’이 문제라면 ‘셀프법안’이 되지 않도록 제정하면 된다”며 “그런데도 민주유공자법이 국회에서 발의만 되고 20여년이 넘도록 성과있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달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은심 여사 빈소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대학생단체 회원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달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은심 여사 빈소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대학생단체 회원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대선 앞둔 정치권, 민주유공자법 21대 국회 문턱 넘을까 

생전 배 여사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대통령 직선제를 하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그렇게 모두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평가해주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어떤 누가 자신의 이익에 앞서 사회 전체의 발전을 생각하며 행동하겠는가”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배 여사의 빈소를 찾은 정치계 인사들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힘을 실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상황에서 배 여사의 마지막 염원을 이뤄달라는 목소리도 커지는 실정.

‘민주화운동 대모’의 마지막 숙원인 민주유공자법이 21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지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배 여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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