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살린 시민들: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의인→각박함 속 선한 영향력 전파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제가 사는 서울 관악구는 지난 8월 엄청난 폭우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저는 코로나19에 확진돼 집밖에 나가지 못했는데, 뉴스와 지인들이 보내준 사진을 보니 도림천이 범람하고 도로와 집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상당했더라고요. 그나마 저희 집 주변은 피해가 심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주변에서 보내준 영상과 사진, SNS를 통해 올라온 관악구 피해 영상들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 와중에서도 흙탕물이 무릎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반지하 안에 갇힌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주변 이웃들의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느낌밖에 안들었죠. 한밤중 이미 반지하 천장까지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숨을 쉬라고 안정시키던 사람들의 목소리. 유일한 구조 통로였던 유리창을 물 속에서 온 힘을 다해 깨 아이를 밖으로 꺼낸 뒤 살았다고 고생했다고 안아주던 모습에서 가슴이 찡했어요. 과연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 어떻게든 아이를 구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이웃들이 한마디로 영웅들이죠. (여·35·서울 관악구)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삭막함’과 ‘무관심’.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어다. 이웃주민이 숨졌지만, 아무도 알지 못해 몇 개월 만에 발견됐다는 종종 들리는 뉴스는 점점 더 삭막해져 가는 사회적 무관심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희생 정신으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데 앞장서는 용감한 의인(義人)들의 소식은 각박한 세상에 훈훈함을 전달한다.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 물불 가리지 않는 용감한 이웃

한 건설업체 직원들이 굴착기를 동원해 화마에 갇힌 모자(母子)를 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다. 

25일 대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24일) 오후 2시께 대전 유성구 복용동 중고차매매단지 근처 차량 정비업체 상가 건물에서 불이나 2층에 고립된 40대 여성 A씨와 그의 2살배기 아들이 굴착기를 동원한 이웃들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이날 화재는 건물 1층 차량 정비업체에서 시작됐으며, 2층 주택에 있던 A씨 모자는 순식간에 번진 불에 빠져나가지 못했다. 당시 A씨 모자는 계단을 타고 올라온 연기로 집안에 고립됐다. 

화재 발생 약 15분 뒤 이 소식을 접한 인근 공사현장의 건설업체 직원들이 굴착기 기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소방차가 오기 전 현장에 먼저 도착한 굴착기로 A씨 모자는 구출됐다. 

굴착기 버킷(굴착기 끝에 붙어 흙을 퍼올리는 통)을 건물 2층 창문 바로 밑까지 펼쳐 A씨 모자를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다. 

A씨 모자는 소방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건강에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불은 출동한 소방 구조대에 의해 오후 2시33분께 꺼졌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보다 앞선 23일에도 물에 빠진 시민을 구한 뒤 홀연히 사라진 한 의인의 소식도 있었다. 주차 연습 중 하천에 빠진 40대 여성이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지난 22일 오후 1시45분께 대전 중구 뿌리공원 주차장에서 주차 연습 중이던 B씨는 운전 미숙으로 후진기어를 넣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아 바로 뒤에 있는 산책로와 안전펜스를 뚫고 2.5m 수심의 하천으로 추락했다.  

대전소방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남성 C씨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B씨를구한 뒤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떠났다. 

소방본부 측은 “시민분께 상장이나 표창을 드리려고 인적 사항을 물어봤지만 ‘원하지 않는다’는 짧은 대답만 남기고 떠났다”며 “이웃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시민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8월8일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강남역 인근에서 한 중년 남성이 배수관을 막고 있는 쓰레기를 맨손으로 치우고 사라졌다. 이 남성은 ‘강남역 슈퍼맨’이라고 불리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 8월8일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강남역 인근에서 한 중년 남성이 배수관을 막고 있는 쓰레기를 맨손으로 치우고 사라졌다. 이 남성은 ‘강남역 슈퍼맨’이라고 불리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 위기 때 등장하는 사회의 영웅들

위험하거나 불편한 일에 거리낌 없이 솔선수범 나서는 시민들의 미담은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특히 올 여름 기록적 폭우로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 곳곳에서 ‘시민 영웅’들 속출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그 대표적 인물이 ‘강남역 슈퍼맨’과 ‘의정부 아저씨’다. 

지난달 8일 침수된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맨손으로 빗물받이 덮개를 열고 쓰레기를 건져냈고, 이 남성 덕분에 종아리까지 차올랐던 강남역 일대 빗물이 순식간에 빠질 수 있었다는 글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글쓴이는 ‘실시간 강남역 슈퍼맨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3장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한 중년 남성이 쭈그려 앉아 침수된 도로가 빗물받이를 열고 쓰레기를 맨손으로 치우고 정리하는 모습이 담겼다.

글쓴이는 “아저씨 한 분이 폭우로 침수된 강남역 한복판에서 배수관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맨손으로 건져냈다”며 “덕분에 종아리까지 차올랐던 물도 금방 내려갔다. 슈퍼맨이 따로 없다”라고 전했다. 

비슷한 사연은 의정부에서도 전해졌다. 의정부에서도 한 중년 남성이 직접 배수로를 뚫어 폭우로 인한 침수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 

지난달 9일 경기도 의정부 용현동의 한 도로가 폭우로 순식간에 흙탕물에 잠겼다. 한 누리꾼은 “물에 잠긴 도로가 500m가 넘는데 배수로가 막히니 30분 만에 사람들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 갑자기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나 배수로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고, 한 중년여성은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종량제봉투를 가져와 옆에서 이 남성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던 글 작성자는 “배수로가 뚫리니 10분도 안 돼서 그 많던 물이 다 빠졌다”며 “아저씨는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하마터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었는데 아저씨 덕분에 주변 상인들과 주택 차량 주인들이 안심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작성자는 “최근 강남 영웅 아저씨를 보고 감동했는데, 우리 동네에도 멋진 아저씨가 있다. 참 고마운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서울 강남에서 목까지 차오른 흙탕물 속에서 운전자를 구해낸 20대 남성, 동작구에는 쏟아지는 폭우 속 방범창을 뜯어내고 반지하에 사는 80대 노부부를 구한 중국동포 등 사연이 잇따라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해 11월 부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폐지를 줍던 할머니를 돕는 선행으로 훈훈한 감동을 줬다. <사진=부산경찰 페이스북 캡쳐>
지난해 11월 부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폐지를 줍던 할머니를 돕는 선행으로 훈훈한 감동을 줬다. <사진=부산경찰 페이스북 캡쳐>

# 선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인다

의인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타인에게 간단한 도움을 주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며 아무도 자신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해 의(義)라는 신념에 따라 스스로를 희생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거나 도움을 주는 자들을 뜻한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우리 사회에는 이기주의만이 남았다는 말이 자주 들리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어디선가 반드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들로 인해 “아직은 살만하다”라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  

그러나 급박한 순간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대해 혹자는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기도 한다. 굳이 직접 나서서 손해볼 수도 있는 일을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용감한 시민들은 어떤 요행을 바라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천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가 없이 베풀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이런 의인들을 위한 ‘의인상’을 제정해 수여하는 등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한겨울 차가운 물속이나 뜨거운 불길도 마다하지 않고 이웃을 구하는 선행을 보여준 시민들, 10년 넘게 폐품을 모아 지역사회 어려운 학생을 돕거나 50년 넘게 형편이 어려운 부부에게 무료 예식을 지원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사연 등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혹한에 쓰러진 할아버지에게 패딩점퍼를 벗어준 중학생들, 폐지 끄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대신 밀어준 초등학생 등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감동을 준 10대들 역시 의인이라 칭할 수 있다. 

‘나만 잘 살면 된다 ’라는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많은 깨달음을 주는 사람들의 행동들. 이처럼 선함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 때문에 아직까지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한 오지랖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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