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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여성’ 몰카 찍은 남성 무죄 선고..선정성 논란 아닌 ‘몰카’에 초점 둬야

[공공돋보기] ‘레깅스=일상복’ 진짜 문제는 바로 이것

2019. 10. 28 by 이상명 기자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판결에 대한 논란이 레깅스 패션으로 번졌다.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어 피해자가 몰카로 인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판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몰카에 대한 담론이 아닌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볼 수 있는지로 논란이 불거진 것.

재판부는 피해 여성의 레깅스와 촬영 부위에 방점을 찍었지만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몰카’ 자체에 분노했다. 실제 대다수 포르노 사이트에는 국가를 막론하고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촬영한 영상들이 버젓이 유포되고 있는 만큼 법원의 판결이 안일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벌금 7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한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버스를 타고 가다 출입문 앞에 서 있는 B씨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8초 가량 몰래 동영상 촬영했다. A씨는 현장에서 경찰에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판단,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2016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해자 옷차림, 노출 정도, 촬영 의도와 경위, 장소·각도·촬영 거리, 특정 신체 부위 부각 여부 등을 고려했다.

A씨는 B씨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하면서 엉덩이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시야에 비치는 부분을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피해자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가 부적절하고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레깅스를 둘러싼 ‘성적 욕망’, ‘선정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것.

올해 3월에는 4명의 아들을 둔 한 여성이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대학 신문에 ‘여학생들이 레깅스를 입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여성은 “최근 아이들과 함께 대학 캠퍼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여학생들이 레깅스를 입고 있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레깅스 복장을 무시하기는 정말 힘들 것”이라며 “남학생을 키우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다음번에 쇼핑을 갈 때는 레깅스 대신 청바지를 사라”고 충고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여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남성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여성의 복장 선택에 있다는 것처럼 묘사됐다며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특히 일부 여성들은 레깅스 차림의 사진을 SNS에 게시하며 “옷을 자유롭게 입을 권리가 있다”, “레깅스를 입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피력했다.

또한 2017년 3월 덴버 국제공항에서 미니애폴리스행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에 탑승하려던 10대 소녀 3명은 단지 레깅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게이트에서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 중 1명은 자신의 가방에서 치마를 꺼내 덧입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나머지 2명은 결국 탑승하지 못했다.

레깅스 논란은 ‘패션의 고정관념’으로 확대됐다. 뉴욕타임스는 “단순히 입어도 된다, 안 된다는 표면적 문제를 넘어 훨씬 복잡한 현실을 대표하고 있다”며 “레깅스 논란은 기득권의 터무니없는 주장처럼 여겨지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규범을 뒤엎고 다음 세대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레깅스가 운동복 개념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면서 “레깅스를 입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과 몸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노출돼 “불편하고 민망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레깅스를 입든, 트레이닝복을 입든 본인의 허락없이 남의 신체를 몰래 찍는 것 자체가 범죄인 만큼 옷에 대한 논란이 아닌 ‘몰카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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