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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의 ,쉼표

[이상명의 ,쉼표] 이유있는 “안녕!”

2019. 12. 17 by 이상명 기자

[공공뉴스=이상명 기자] 최근 유망한 젊은 연예인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그 유가족의 마음이 어떨까 감히 상상해봤다. 어떤 죽음이든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죽음을 떠올린 적은 없었다. 아직 젊고 살아갈 날이 더 많았기에 죽음에 대한 아련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피부에 와 닿도록 무서운 적은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공뉴스 DB
<사진=이상명 기자/공공뉴스 DB>

2018년 7월27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생각지도 않았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안에도 설마 돌아가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내 곁에서 나와 같이 숨 쉬리라고만 생각했던 어머니는 고된 심폐소생술 끝에 내 눈앞에서 돌아가셨다. 그 참담함을 그저 글로 표현하는 것 조차 힘들 정도니 그 때의 내 심정이란 그저 따라 죽고만 싶었다.

2017년 12월5일 평소 다니시던 투석 병원에 가려던 어머니는 투석로가 막혔다는 걸 느끼시고는 투석로 시술을 위해 한남동에 위치한 한 병원에 내원했다.

그러나 투석로 시술 중 심근경색이 발병, 중환자실 생활 한 달 보름을 거치고 다행히도 일반실로 올라왔지만 중환자실에서 사용한 승압제(혈압을 올리는 약)의 여파로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기약없는 기나긴 엄마의 병간호가 시작됐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기 이를 데가 없어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던 시절 중환자실 앞을 서성이며 하루만이라도 더 어머니와 같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병간호로 지친 마음에 그만 중국인 교포 간병인을 고용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부재보다 병간호의 고단함이 더 견디기 어려웠느냐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힐난해 본다.

그렇게 하늘은 마지막 순간 어머니와 함께할 시간을 주셨지만 나는 그 고마움을 그저 내 한 몸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걷어차 버렸다.

다행히도 호전돼 가던 어머니의 퇴원이 심장 기능 저하로 한 달, 두 달 미뤄지더니 급기야 수술한 다리의 염증이 재발하면서 재수술이 결정됐고 어머니의 건강은 다시금 나빠져 갔다.

그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이제 살아났고 다시 집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어머니는 하루하루 점점 나빠져 가더니 그렇게도 나가고 싶어 했던 중환자실로 다시 들어간 후 일주일 만에 사랑하는 딸에게 유언 한 마디 전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확인하고도 나는 장례식장에서 조차 어머니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례식장 입구 고인 명에 쓰여 진 어머니의 이름과 사진을 보면서도 꿈이라고만 여겼다.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면서도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말 할 정도였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3일 장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나에겐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모두 고통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왜 그리도 빨리 가셨냐’며 하늘로 가버린 어머니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세상 모든 것을 원망했다.

당시 나의 분노는 하늘을 향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리도 큰 고통을 주느냐고...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스님과 나처럼 어머니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딸의 대화를 듣게 됐다. 유언 한 마디 듣지 못했다는 그 딸은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 생각만 하며 울기만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스님에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물은 것.

그저 나도 위로를 받아볼까, 그 이야기를 엿듣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그 스님은 딸을 향해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며 꾸짖으시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는데! 그렇게 해서 당신한테 도움 되는 게 뭐가 있는데! 그러면 엄마가 살아 돌아오시나! 그렇게 하면 하늘 가신 엄마가 마음이 편해지시나! 세상 도움 안 되는 짓을 왜 하는데!”

그 순간 무언가 쿵! 하고 내 머리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헤매고 괴롭게 지낸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도리어 내 삶만 엉망이 되어갈 뿐.

그렇게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큰 도움을 받지 못했던 내 슬픔과 고통은 웃기게도 스님의 말 한 마디로 많이 호전됐다.

“모든 죽음에는 다 그러해야 할 이유가 있으니 더 아프지 않게 잘 가셨다”라고 생각하라던 스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마음에서 어머니를 놓아드려야겠다. 가장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엄마, 안녕’을 외치라던 스님.

“엄마..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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