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공공돋보기

[공공돋보기] 선행도 훔치는 세상

2020. 01. 02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우리의 메마른 도덕심에 한줄기 물줄기 같은 훈훈한 선행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 익명의 독지가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되려 성금을 내놓는 소식들은 부정적인 이슈로 지쳐버린 국민들에게 감동과 더불어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라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선행문화를 악용하는 범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20년째 기부를 이어온 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해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든 것.

연말연시 추운 겨울을 보내기 힘든 이웃을 위해 말보다 행동으로 몸소 보여준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절도행각으로 맥이 끊길 뻔 했지만 도난당한 성금이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주 얼굴없는 천사의 성금을 훔쳐 달아난 용의자들이 붙잡힌 지난해 12월3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완산경찰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난 당했던 ‘얼굴 없는 천사’ 성금 4일 만에 제자리

전북 전주에서 도난 당했다가 회수된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 6000여만원이 4일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A(35)씨와 B(34)씨에게 압수한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 6016만3210원을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달했다고 2일 밝혔다.

이날 전달된 돈은 지난해 12월30일 오전 10시께 노송동주민센터 뒤편 희망나무 인근에서 도둑맞았던 기부금이다. 당시 ‘얼굴 없는 천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써달라며 6000만원 상당의 기부금을 몰래 놓고 갔으나 미리 잠복하고 있던 A씨와 B씨가 훔쳐 달아났다.

A씨와 B씨는 컴퓨터 수리점을 열기 위해 기부금을 훔쳤으나 이들은 훔친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한 채 충남 논산과 대전 유성에서 각각 검거됐다. 이들은 고등학교 친구 사이로 알려졌으며 각각 공주와 논산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와 B씨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을 훔치기 위해 며칠째 잠복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인근 주민의 결정적 제보와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성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얼굴 없는 천사가 이 시기에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현재 컴퓨터 수리점을 하고 있는데 한 곳을 더 열기 위해 돈이 필요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천만원이 담긴 종이박스를 몰래 놓고 사라져 붙여진 이름이다.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그의 소리 없는 기부는 해마다 연말을 기점으로 이뤄졌다.

그는 매년 A4용지 박스에 5만원권 뭉치와 동전 등을 채운 돼지저금통, 메모글을 남겼다. 이 성금은 그간 전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노송동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여 왔다.

이로써 2000년 4월부터 현재까지 ‘얼굴 없는 천사’가 20년 동안 노송동 주민센터에 놓고 간 기부금은 총 6억6850만3870원에 달한다.

부산 해운대구 ‘동전천사’가 기부한 동전들. <사진제공=해운대구>

◆올해도 어김없이 선행 이어가는 해운대 ‘동전 천사’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기부활동이 많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익명의 기부자 선행은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주고 있다.

매년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행정복지센터에 익명으로 동전을 기부하고 사라지는 ‘동전 천사’가 어김없이 선행을 이어가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동전 천사의 정체는 올해도 밝혀지지 않았다.

해운대구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반송 2동 행정복지센터로 동전이 가득 담긴 종이상자가 배달됐다. 

상자 안에는 10원짜리부터 500원짜리까지 동전이 종류별로 여러 봉지에 담겨 있었고 직원들이 세어본 결과 모두 72만6920원이었다.

상자 안에 별다른 메시지는 없었지만 직원들은 매년 이맘때쯤 센터에 동전을 기부하는 동전천사가 이번에도 다녀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운대 동전 천사의 동전 기부는 올해로 14년째다. 2005년 한 남성이 “좋은 곳에 써달라”며 동전이 가득 담긴 종이상자를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동전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구겨지고 녹슬고 때 묻은 돈일지라도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적힌 메모와 함께 86만270원이 기부되기도 했다.

선행의 무게가 크고 작음의 차이는 의미 없다. 그러나 기부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성금 절도 사건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눈앞의 이익을 얻자고 누군가 행하는 조그만 선행 또는 작은 열심에 물을 끼얹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