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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 발표..주거환경 개선 6개월 이행기간 부여 靑 국민청원 “농촌 현실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 비판도..상생 합의점 찾기 고심

[공공돋보기] ‘속헹의 비극’이 불러온 변화의 시작

2021. 03. 08 by 박혜란 기자

[공공뉴스=박혜란 기자]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시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 속헹(31)씨가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간경화’였다.

당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지만 속헹씨의 숙소는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았다. 동료 노동자가 “이틀 전부터 난방이 제대로 가동이 안됐다”라고 진술하며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문제가 논란이 됐다.

속헹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여건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쾌속 대책을 두고 일각에선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반발도 있어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 인권의 상생 방안을 두고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주여성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2월30일 포천 비닐하우스 숙소 앞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진상 규명과 근본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이주노동자 속헹의 비극後, 근로여건 개선 등 쾌속 대책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 등 관계부처는 지난 2일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속헹씨 사망 후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숙소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농·어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입국 즉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료도 최대 50%까지 경감, 지원을 수 있다. 

또한 사업장 변경 사유도 확대돼 숙소 용도가 아닌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받은 경우,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이 가능해진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고용허가 불허 조치에 대해서는 사업주의 숙소 개선계획 등을 전제로 6개월간의 이행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현재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농축산·어업 사업장의 경우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 등 불법 가설 건축물(농지 위 설치 등)에 대한 고용허가를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 불허 조치가 유예기간 없이 시행됨에 따라 일부 농·어가에서 외국인 근로자 숙소를 개선하기 위한 준비기간이 부족하다는 현장의 불만이 나왔다.  

이에 기존 계약기간 연장에 해당하는 재고용 허가에 대해서만 사업주의 숙소 개선계획과 외국인 노동자의 기존 숙소 이용 및 재고용 동의를 전제로 오는 9월1일까지 6개월간의 이행 기간을 부여하기로 한 것. 

외국인 노동자 숙소 개선이 이행기간 내에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재고용 허가는 취소하고,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

앞서 1월6일 고용부는 농·어업 분야에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 주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 실태조사에 응답한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 99% 이상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 중이었다. 

특히 이들 중 69.6%, 사업주 중 약 64.5%가 가설 건축물(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이용하는 경우 자치단체에 주거시설 용도로 신고해야 함에도 미 신고한 경우가 56.5%이며,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설치한 경우도 농축산업에서 12.7%에 이르는 등 부적절하게 가설 건축물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숙소 시설과 관련해 냉·난방, 목욕·화장실, 채광 및 환기 시설, 남녀 침실 구분은 99%가 구비하고 있어 기본적인 생활 여건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잠금장치가 없거나(농축산업 6.8%, 어업 13%), 소화기·화재경보기가 없는 경우(농축산업 5.2%, 어업 21.5%)도 일부 있어 사생활 보호나 화재 위험에 취약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탁상행정의 표본” 일부 사업주 반발 목소리도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가 발표한 외국인 노동자 주거 인권 관련 대책들이 현실성이 없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1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외국인 노동자 숙소 관련한 개정법 다시 한번 검토해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자신을 ‘경기도에서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농가’라고 소개하며 1월부터 시작된 고용노동부 지침을 “농촌의 현실에 대해 무지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숙소 건물을 건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농촌에서의 정화조 설치 문제는 과연 해결이 됐습니까? 정화조 허가는 점점 더 힘들어져 가는데 정화조 허가가 불허한 곳에 건축물을 올릴 수 있을까요?”라며 “일정 규모 이상의 농가들에 한해 정화조 및 환경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그래야 쾌적한 환경의 화장실 및 주거공간을 준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청원인은 “농지법에 따르면 바닥에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도 없는데 조립식 패널도 불허한다면 캠핑카로 숙소를 만들라는 겁니까”라고 반문하며 “농지법에 의한 건축물의 규제도 검토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외국인 노동자들도 숙소 환경보고 자신들의 일터를 선택하는 시대”라며 “외국인 노동자 허가 신청시 숙소의 화장실 유무 소방법 관련 설치물 등 모든 숙소의 사진을 제출하고 공무원이 실사 확인까지 한다”라고 설명했다. 

청원인은 “그렇게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음 이곳에 와서 사진과 다른 숙소를 보고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제발.. 몇몇 불법체류자들과 몇몇 농가들의 형태만 보시고 문제점을 잘못 파악하지 말아달라”라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농업이 미래라고 하면서 농가들의 수익은 점점 줄어들고 소비자들의 농산물 가격은 매해 올라가는 판국에 농민들 두 번 죽이는 이러한 정책 다시 한번 검토 부탁 드린다”라며 “현실을 보시고 현실에 맞는 규제와 법령을 만들어 달라”라고 덧붙였다. 

<사진=뉴시스>

◆노동자 인권과 농어민 상생방안 찾기 고심

한편,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 인권과 농어민들의 상생이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기도는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거주할 수 있는 숙소 모델 개발을 추진 중이다. 

숙소의 신축·운영 주체, 비용 부담 문제 등을 연구해 조속한 시기에 적용,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도는 지난해 12월31일부터 올해 1월27일까지 약 한 달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대상은 시군 및 읍면동과의 협력으로 발굴한 농어촌 지역 외국인 노동자 숙소 2142개소 중 폐업 등의 이유로 면밀한 점검이 어려운 290개소를 제외한 1852개소다.

조사 결과 비거주지역 숙소는 909개소(49%), 미신고 시설은 1026개소(56%), 그리고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은 697개소(38%)였다.

겨울철 난방대책을 살펴보면 보일러가 설치된 숙소는 1105개소(60%)였고, 일부는 전기패널이나 라디에이터, 온풍기, 전기장판 등으로 난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도는 이달 3일 ‘(가칭) 경기도형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 숙소 모델형 개발’을 주제로 한 단기 정책 연구과제를 경기연구원에 의뢰했다.

도는 이번 연구과제가 완료되면 이를 외국인 노동자 거주시설 마련과 개선을 위한 정책 수립에 활용할 계획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주거 인권 문제를 상기시키면서 또 다른 변화의 시작점이 됐다. 

비슷한 죽음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선 현실적 제도 장치 마련이 절실한 상황. 이를 위해선 정부·지자체는 물론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 모두의 계속적인 소통과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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