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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 양형기준 정비 촉구 서명문 제출 “가해자 기부 빈번” 법원 제출 반성문·기부 영수증, ‘진지한 반성’ 근거인지 갑론을박 성범죄 법률상담 커뮤니티에 ‘기부 경험 팁’ 공유 글 올라오기도

[공공돋보기] ‘꼼수 vs 사죄’ 기부의 두 얼굴

2022. 04. 06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최근 한 시민단체는 여성폭력 사건에서 ‘기부’를 양형의 감경 요소로 반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서명문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해당 단체는 여성폭력 가해자가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여성단체에 기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밝혔다.

현재 양형기준에 따르면 강간죄·강제추행죄와 같은 성범죄의 경우 감경요소에 ‘진지한 반성’ 항목이 포함돼 있으며, 일부 판사들이 피고인의 여성단체 기부를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시민들은 “범죄 후 감형 목적의 한시적 후원 및 반성문은 이미 ‘유행’이 됐는데 어떻게 진정한 반성을 가려낼 수 있는가”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는 상황.

법원에 제출하는 반성문과 기부 영수증을 ‘진지한 반성’의 근거로 삼아도 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가운데 도대체 ‘진지한 반성’이 무엇이냐고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여성폭력 가해자, 소송 위해 여성단체 기부 ‘빈번’

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달 31일 여성폭력 사건에서 ‘기부’를 양형의 감경 요소로 반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서명문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서명문에서 “지난해 11월8일 한국여성의전화 후원 계좌에 1000만원이 입금됐다. 감사한 일이지만, 갑자기 입금된 고액의 후원은 다른 목적인 경우가 있어 먼저 후원 이유를 확인한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폭력 가해자가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라며 “수소문한 끝에 후원 목적을 확인하고 전액을 반환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와 같은 목적의 기부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 정비가 필요하다며, 여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촉구했다. 

해당 단체는 “결국 문제는 여성단체에 대한 기부를 여성폭력 가해자의 ‘반성’으로 인정하고 양형기준의 감경요소로 반영하고 있는 법원”이라며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기부가 가해자의 감형에 이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양형기준을 정비하고 판사들의 인식을 제고해 여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개선 방안을 마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한국여성의전화는 양형기준 정비를 촉구하는 시민 참여 서명에 총 6001명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단체에 따르면, 참여한 시민들은 “성범죄자가 끊임없이 사과와 연락을 하고 돈으로 합의하려 해 피해자들은 치를 떠는데, 내가 합의해주지 않아도 돈으로 합의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부 감형이 말이 되는가”라는 의견을 보탰다.

또한 참여한 시민들은 “범죄 후 감형 목적의 한시적 후원 및 반성문은 이미 ‘유행’이 됐는데 어떻게 진정한 반성을 가려낼 수 있는가”라며 “진정 반성하고 있다면 죗값을 달게 받아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여성폭력 사건에서 기부를 양형의 감경요소로 반영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서명문. <사진제공=한국여성의전화>
여성폭력 사건에서 기부를 양형의 감경요소로 반영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서명문. <사진제공=한국여성의전화>

◆성범죄 피고인 커뮤니티서 공유되는 ‘기부 관련 경험자 팁’

현재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강간죄, 강제추행죄와 같은 성범죄의 경우 감경요소에 ‘진지한 반성’ 항목이 포함돼 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획조직국장은 <공공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부 판사들이 성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여성단체 기부를 ‘진지한 반성’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사실 양형기준에서 감경요소로 기부가 적시돼 있는건 아니다. 다만 반성을 하면 감형을 해 주는데, 이와 같은 기부 역시 일종의 ‘반성’으로 판사들이 인식한다”며 “이는 판사의 재량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폭력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의 감경요소가 시대에 맞지 않고,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하다”며 “이와 같은 기준들을 전반적으로 정비함과 더불어 판사의 인식 역시 제고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꾸준히 이런 일이 있어서 캠페인을 계속 했지만 법원이 바뀌지 않으니까 ‘기부 감경’ 노하우가 전수되는 것”이라며 “기부하는 가해자들도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법원에서 감경요소로 인정을 해 주니까 자꾸 기부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성범죄 피고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와 같은 ‘기부’가 감형에 도움이 되는지 문의하는 게시글이 지속적으로 업로드되고 있다. 

회원수가 8만7000여명에 달하는 한 성범죄 법률상담 커뮤니티에는 ‘기부·후원이 얼마동안 돼야 양형에 도움이 되는가’, ‘기부는 양형자료로 어떻게 제출하면 되나’를 묻는 글이 게재되고 있다. 

게시물 중에는 ‘양형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봉사활동과 기부에 관한 경험자 팁’이란 제목의 글도 존재한다. 성범죄 피고인이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기부하는 일이 ‘감경 노하우’로까지 전수되고 있는 것.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와 같은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법원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사진=성범죄 법률상담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성범죄 피고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부’가 감형에 도움이 되는지 문의하는 게시글이 업로드된 모습. <사진=성범죄 법률상담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반성문·기부, 진지한 반성의 근거로 삼아도 되는가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문을 여러 번 제출한 가해자들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은 사건이 이슈가 된 바 있다. 

법원이 가해자의 반성문 제출을 ‘진지한 반성’의 근거로 들어 감형하자 이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여론이 터져나온 까닭이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국민들은 양형기준에 의해 집행된 재판관들의 판결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을 많이 한다”며 “반성문을 대신 작성해주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닌 상황에서 진지한 반성을 감경요소로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법원에 제출하는 반성문과 기부 영수증을 ‘진지한 반성’의 근거로 삼아도 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도대체 ‘진지한 반성’이 무엇이냐고 묻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

성범죄를 저지른 후 갑자기 여성단체에 기부를 하는 행위, 그것도 해당 기관이 원치 않는 일방적 기부를 하는 행위를 ‘진지한 반성’이라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부호가 달린다.

‘진지한 반성’이란 주관적 기준이 감경요소로 인정되는 게 과연 사법 정의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쟁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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