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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셜 보도:사건과 무관한 제3자 피해→국민 알권리 vs 인권보호 딜레마

[공공story] 공공의 적 A씨

2022. 09. 18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얼마 전에 뉴스에서 40대 남성 배우 A씨가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는 기사를 접했어요. 뉴스를 봤던 당시에는 ‘요즘 마약이 참 문제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몇 시간 뒤 제가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했다가 기함을 했죠. 제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기사 속 A씨라는 게시글을 발견했거든요. 40대, 그리고 거주지가 강남이라는 공통점만을 가지고서 제 ‘최애 배우’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하더라고요. 곧바로 소속사에서 허위 사실 유포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해서 한시름 놨어요. 소속사 입장 표명 전까지는 저 역시 마음을 졸이며 온갖 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 트위터 게시글을 클릭해가며 걱정에 휩싸였거든요. 네티즌들의 억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까지 부풀려졌을지. 소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게 인간 본성이긴 하지만요. 이런 와중에 처음부터 기사에서 A씨라고 익명 보도를 하는 대신 해당 연예인의 실명을 밝혔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물론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가 명쾌하게 나오기 전에 실명을 거론하면 그 연예인 역시 씻지 못할 상처를 입게 되겠지만, 적어도 제3의 피해자가 나오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36·인천 연수구)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최근 연예계는 ‘이니셜 보도’로 홍역을 치렀다.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 및 약정금 청구소송과 관련된 익명 보도에 아무 상관 없는 연예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며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연이어 발생한 까닭이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보도된 사건과 무관한 제3자까지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이 실명 보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시에 개인의 인격권 등을 위해 반드시 익명 보도를 해야 한다는 반박도 들려오고 있다.  

연예계뿐 아니라 과거 이니셜 보도로 인해 산업계 역시 몸살을 앓은 사례도 재조명되며 실명 보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익명 보도를 옹호하는 논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마약 투약 40대 남자 배우 정체 일파만파

1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40대 남성 배우 A씨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자택에서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택 인근을 배회하던 A씨를 상대로 마약류 간이 시약검사를 한 결과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마약 의혹 보도가 나온 이후 온라인 상에서는 배우 A씨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혀 관련이 없는 일부 40대 남성 배우들에게 그 불똥이 튀었다는 점.

억울한 의혹을 받은 배우 소속사들은 즉시 관련 루머를 전면 부인하는 한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실제 배우 이무생 소속사인 에일리언컴퍼니는 이달 11일 입장문을 통해 “당사는 현재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40대 남성 배우 관련, 이무생 배우라는 의혹이 제기돼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를 통해 허위 사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무생 배우는 본 사건과 무관함을 명백히 밝히며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가 계속될 경우 당사는 법적 절차를 통해 강경한 대응을 할 것임을 알린다”고 덧붙였다. 

배우 박해진의 소속사인 아티스트컴퍼니 역시 같은 날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아티스트컴퍼니 측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를 통해 배우 박해진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40대 남성 배우와 관련됐다는 허위 사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허위 사실로 박해진씨는 본 사건과 무관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사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가 이어질 경우, 해당 내용을 작성하고 유포한 이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법적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해프닝 이후 일각에서는 연예인 관련 보도를 이니셜 처리하는 관행이 애먼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보도된 사건과 무관한 제3자까지 명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명 보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사진=공공뉴스DB>

#이번엔 ‘50대 여배우’ 찾기 설왕설래

‘40대 남성 배우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연예계는 또 다른 익명 보도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엔 ‘50대 여배우’들이 타깃이 됐다. 

이달 13일 일요신문은 현재 활동중인 50대 여배우 B씨가 불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남성 C씨로부터 억대의 약정금 청구 소송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유부녀·유부남이었던 B씨와 C씨는 2020년 골프 클럽에서 만나 2년여 간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B씨는 C씨에게 각자 이혼 후 재혼하자는 취지의 요구를 했고, 이에 C씨는 B씨에게 생활비 등을 금전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B씨는 이혼을 미루더니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C씨는 1억1160만원 가량의 약정금 청구소송을 냈다. 

1990년대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B씨는 현재까지도 지상파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보도 이후 대중들은 50대 여배우 B씨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추측을 제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50대 여배우들의 실명을 나열하며 B씨의 본명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는 기사에서 제공된 단서를 활용해 B씨의 정체를 특정하는 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영화배우로 데뷔하고 골프를 취미로 가졌다는 사실 등을 종합해 B씨로 추정되는 여배우의 실명을 거론한 것.   

이처럼 대중들의 ‘B씨 찾기’가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실명이 언급된 몇몇 연예인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섣부른 추측이 진실로 둔갑하며 이미지를 자양분으로 활동하는 연예인들의 활동에 제약을 가한다는 비판이다. 

이와 같은 ‘이니셜 보도’의 폐해는 비단 연예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업들 역시 익명 보도로 인해 몸살을 앓은 사례가 있었다.

2016년 6월 MBC뉴스에 따르면 시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5개 회사의 공기청정기 필터를 수거해 검사한 결과, 5개 중 2개에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계열의 성분인 옥타이리소씨아콜론(OIT)가 검출됐다.

당시 MBC뉴스는 “OIT는 2014년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했지만 현재로선 이 물질을 들이마셨을 때 인체에 어떤 피해가 나타나는지 조사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실명vs익명 보도, 답 없는 딜레마

해당 보도 이후 온라인 육아 카페와 커뮤니티에서는 이니셜로 보도된 공기청정기 기업의 정체에 대한 추측성 게시글이 대거 게재됐고, 불안해서 공기청정기를 쓸 수 없다는 호소가 쏟아져나왔다.

뿐만 아니라 이니셜의 주인공으로 지목된 공기청정기 판매 회사로는 소비자들의 민원이 쇄도했다. 이에 해당 기업들은 홈페이지에 자사가 논란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해명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또한 파장이 커지자 일부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공기청정기 필터를 무상 교체 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혼란이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논란이 증폭된 이유에 대해 OIT 성분이 검출된 회사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고 이니셜로만 보도됐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인해 국민의 불안감이 커진 분위기 속 거론된 기업의 이니셜로 인해 추측·소문만 무성히 이어지며 사회적 혼란을 키웠다는 것.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이니셜 보도’에 대한 언론의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반드시 실명 보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개인의 인권 등을 위해 익명 보도를 해야 한다는 입장은 현재까지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실명 보도를 옹호하는 측은 사건과 무관한 이들의 피해를 예방함은 물론, 사회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라는 입장이다. 또, 익명 보도를 하면 부패를 예방하고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기능이 저하된다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반면 익명 보도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범죄 사실만 정확히 전달하면 충분하다. 개인의 신상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며 “국민의 알 권리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및 비밀의 자유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익명 보도 옹호 측에서는 범인 혹은 범죄 혐의자, 문제 기업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도 익명 보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범죄 보도에 대한 언론의 책무는 사법기관을 대신한 응징이 아니라는 주장 또한 익명 보도 옹호 측의 주요 논거 중 하나다.   

이같은 익명 보도와 실명 보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속칭 ‘A씨’는 공공(公共)의 적이 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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