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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차별:뒤늦게 밝혀진 인권침해→잘못된 시각 교정·성찰 필요

[공공story] 우리 곁의 소록도

2022. 10. 02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제가 소록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란 소설을 읽은 뒤부터 였습니다. 그 전까진 한센병은 이름만 들어봤고,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소록도에 격리돼 차별받았다는 정도의 지식만 있었는데요. 책은 흥미로웠고,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줬습니다. 이후 관심이 이어져 2019년에는 소록도 여행까지 가게 됐어요. 소나무가 우거진 소록도는 아름다웠지만, 둘러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특히 주차장에서 해변가로 나가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수탄장(愁嘆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근심 수(愁)자에 탄식할 탄(嘆)자를 써서 ‘탄식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수탄장은 한센병 환자와 그 자녀들이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입니다. 과거 병원에서는 한센병의 감염을 우려해 환자와 자녀들을 따로 살도록 했고, 이들은 한 달에 한 두번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것도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요. 자식을 안아보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바라만 봐야 했다니.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수탄장을 설명하는 판자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한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인식의 오류로 인해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한센병의 완치를 이룬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수탄장은 일종의 시대적 해프닝이었다’라고요. 이처럼 질병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역사가 앞으론 절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근 신문에서 소록도 내 한센병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외부 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는 순회전시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문득 떠올랐어요. 앞으로도 이런 전시가 이어져서 사람들이 소록도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40·경기도 동탄)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 전경. 흰 구라탑(救癩塔)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사진=뉴시스, 고흥군청>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 전경. 흰 구라탑(救癩塔)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사진=뉴시스, 고흥군청>

최근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이 순회전시를 개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소록도와 한센병이 다시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피부질환인 한센병은 현재 완치 가능한 질병이 됐지만, 그러나 일제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이 아직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고, 누가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인간의 존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가치관이 확산돼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11월 말까지 순회전시 개최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은 오는 11월27일까지 ‘소록도 사람들의 삶과 교육,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순회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이하 소록도박물관)이 소장한 대표 유물을 외부에 전시해 한센병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록도박물관은 평균 연령 78세에 기저질환을 보유한 입원 한센인의 안전을 위해 2020년2월부터 현재까지 휴관 중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일 유물은 100년이 넘는 시간, 강제노역과 인권 침해를 견디며 삶을 이어왔던 사람들의 흔적으로 소록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3건 21점이다. ▲고흥 소록도 한센인 생활유품 ▲소록도 4·6사건 진정서 및 성명서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유물 등이다.

고흥 소록도 한센인 생활유품의 경우 시대적 변화와 극한 상황 속에서 발현된 생존을 위한 지혜와 의지를 엿볼 수 있으며, 특수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했다는 가치를 지닌다. 

소록도 4·6사건 진정서 및 성명서는 한국 전쟁 이후 일제강점기의 제도와 관행들이 부활하고, 차별과 통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유와 인권을 외친 한센인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1916년 소록도에 자혜의원이 설립된 후 강제격리 수용 정책으로 섬에 갇혔던 사람들이 남긴 유물이 소록도를 떠나 외부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장 직무대리는 “이번 순회전시는 고단했던 삶, 제한된 생활 중에도 꺾이지 않았던 소록도 사람들의 교육에의 의지와 인권 의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 장소는 소록도박물관과 3자 간 박물관 운영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과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이다.

이달 23일까진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 1차 전시를 진행하며, 이달 31일부터 내달 27일까진 국립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2차 전시가 열린다.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 전경. <사진=뉴시스, 고흥군청>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 전경. <사진=뉴시스, 고흥군청>

#2005년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발간으로 드러난 폐해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어린 사슴과 유사한 모양새의 섬 ‘소록도’가 한센인 거주지로 자리매김한 때는 1916년이었다.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피부질환인 한센병은 현재 다제요법(MDT, Multi-Drug Therapy)으로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 됐으며 환자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한센병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대처 방안은 요양소를 마련해 환자들을 격리하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소록도의 집과 땅을 강제로 매수한 뒤 움막에서 살거나 유랑하던 한센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소록도 자혜의원’의 시초였다. 

이 곳에서 환자들은 굶주림과 전쟁 군수물자 생산과 같은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사망률이 높았다. 

1945년 광복 이후 소록도 병원은 잠시 미군정 관리 아래에 들어간 뒤 한국 정부의 소유가 됐다.

한국인 의료 관리들 하에서 환자들의 처우는 비교적 나아졌지만, 그러나 강제격리와 환자에 대한 강압적 관리 정책, 단종(정관절제수술)·낙태수술 등은 이어졌다. 또 진단·치료 및 연구 과정에서 한센인들의 인권은 자주 무시됐다.  

당시 이곳에 입소했던 환자들의 인권 상황은 매우 열악했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았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 

정근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조사해 발표한 이 보고서는 한센인에 대해 자행된 집단학살 등의 인권유린을 폭로했다. 

또한 보고서는 한센인에 대한 인권차별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집단학살이 1945년 8월부터 1957년까지 수차례 발생했다고 지적하며, 너무 오래된 사건이어서 진상규명이 쉽지 않지만 보다 정확한 진상조사를 실시해 희생자 유족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한센병은 전염성이 약한 병으로 완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한센병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 및 차별적인 정책 등으로 인해 한센인(한센병 환자 및 병력자)에 대한 인권침해 및 차별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은 지난 6월부터 온라인박물관 서비스를 개시했다.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누구나 원격으로 VR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누리집 화면 갈무리>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은 지난 6월부터 온라인박물관 서비스를 개시했다.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누구나 원격으로 VR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누리집 화면 갈무리>

#소록도와 한센인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하는 까닭

한센인들이 겪어온 피해를 뒤늦게나마 밝혀내려는 시도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2013년 7월18일, 보건복지부와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9년부터 4년간 실시한 진상조사를 마무리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센병을 가진 이들에게 자행된 감금·폭행·학살·강제노역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센인은 총 6462명이었다. 피해자 중 피해로 인해 치료가 계속 필요한 이들에겐 의료지원금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는 생활지원금이 지급됐다.

또한 위원회는 법에서 직접 한센인 피해사건으로 규정한 ▲한센인 격리·폭행사건 ▲84인 학살사건 ▲오마도 간척사업사건 등 3건 외에 한센인에 대한 피해 사건 14건을 추가 확정했다. 

1957년 8월 삼천포 영복원에 살던 한센인들이 농토 확보를 위해 사천 서포면의 비토리 섬에 건너가 개간을 하던 중 비토리 및 서포면 주민 100여명의 공격을 받아 집단으로 피해를 입은 ‘사천 비토리 사건’이 대표적이다.

1947년 6월경 안동 실종 어린이를 한센인들이 해쳤다고 의심해 경찰이 한센인 3명을 강변 공동묘지에서 총살하고, 경찰과 주민에 의해 한센인들이 폭행당한 ‘안동어린이 실종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뒤이어 올해 2월, 정부는 당시 조사에서 신고를 하지 못한 392명을 한센인 피해자로 추가 인정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매달 17만원의 위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이처럼 한센인들을 억압해왔던 반인권적 만행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늦었지만 국가의 보상이 이뤄진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병마와 더불어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한센인들의 한(恨)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들려온다. 

무엇보다 시급한 점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고, 어떤 병에 걸리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인식이 정착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시간이 지나더라도 우리가 한센인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역사의 비극은 언제나 망각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작정 두려워하는 습성, 그리고 그에 동반되는 차별은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잘못에 대한 대한 성찰이 부재하다면 소록도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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