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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부지 개방:왕족·친일파 거주지 ‘금단의 땅’→시민 행복 원천으로 탈바꿈

[공공story] 110년 만의 귀환

2022. 10. 16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가을을 맞아서 다들 교외로, 산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하는데 저희 부부는 시간이 나지 않아서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찾았어요. 110년 간 일반 시민들은 밟을 수 없는 땅이었다고 해서 궁금증이 생겼는데, 와보니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광장이 생각보다 넓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고, 주변에 심어진 코스모스랑 국화도 예쁘고요. 무엇보다 서울 시내 한 가운데에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진 휴식공간이 생겼다는 게 참 좋아요. 경복궁과도 가깝고, 근처에 미술관도 많아서 메말랐던 문화 감성을 충전하기 좋은 곳이란 생각도 들어요. 올해 여름엔 청와대를 다녀왔는데, 가을엔 송현광장을 자주 찾을 거 같네요. (여·51·서울시 양천구 목동)

16일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열린송현녹지광장 입구 전경. <사진=공공뉴스DB>
16일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열린송현녹지광장 입구 전경. <사진=공공뉴스DB>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지만 지난 110여년 간 일반 시민의 방문이 제한돼 ‘금단의 땅’으로 불린 송현동 부지가 임시 개방됐다.

서울광장 면적 3배에 달하는 송현동 부지는 향후 2년여 간 시민참여형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되며, 오는 2025년부터는 ‘이건희 기증관(가칭)’을 품은 ‘송현문화공원(가칭)’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가을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을 맞아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재탄생한 송현동 부지에 방문객이 몰리는 가운데, 송현의 아픈 역사와 향후 활용 방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개방 후 시민들로 붐빈 열린송현녹지광장

16일 <공공뉴스>가 직접 방문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은 수많은 시민들로 붐볐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아이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며 추억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반려견과 산책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열린송현녹지광장 곳곳에는 코스모스와 국화, 백일홍 등이 만개해 가을 정취를 더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도심 한 가운데 펼쳐진 푸른 광장에 시민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드넓은 광장에서 시민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집중된 장소는 바로 송현동 부지의 역사를 소개한 ‘HISTORY WALL’ 게시판이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일제에 송현동 부지가 넘어갔던 아픈 역사와 함께 2000년대 연이은 개발계획이 무산된 일화가 담겼다.

시민들은 게시판 글귀를 읽으며, 서울시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송현동 부지가 왜 지금까지 공터로 남아있는지 등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한켠에서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이야기도 나오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앞서 서울시는 이달 7일 송현동 부지가 ‘쉼과 문화가 있는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단장을 마치고,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일반 시민에게 임시 개방된다고 밝혔다. 

경복궁과 3호선 안국역 사이에 위치한 송현동 부지의 크기는 서울광장 면적 3배에 달하는 3만7117㎡다. 그동안 부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4m 높이의 장벽은 1.2m의 돌담으로 낮아져 율곡로, 감고당길, 종친부길에서 드넓은 녹지광장을 한 눈에 담을 수 있게 됐다. 

돌담장 내부엔 서울광장 잔디 면적보다 넓은 1만㎡의 중앙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다. 그 주변으로는 코스모스 등이 심어진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됐다. 

또한 송현동 부지가 100년 넘게 가로막고 있던 경복궁에서부터 북촌 사이의 공간은 광장 내부의 보행로를 통해 연결됐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와대와 광화문 광장, 인사동, 북촌 골목길 등 어디로든 나갈 수 있다. 

서울시는 ‘열린송현녹지광장’으로 다시 돌아온 송현동 부지를 2024년 12월까지 2년여 간 임시 개방하고,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시민참여형 문화예술공간으로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내년 5월부터 10월 사이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최를 앞두고 있으며, 올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을 내년 송현동에서 개최하는 방안 등도 논의할 계획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임시 개방인만큼,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하기 보단 넓은 녹지광장에 최소한의 시설물만 배치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는 취지다. 특히 회색빛 빌딩숲의 얼굴을 바꿀 ‘녹지생태도심’의 시작으로서 서울 도심 일대에 대규모 녹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란 평가다.

16일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을 방문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공공뉴스DB>
16일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을 방문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공공뉴스DB>

#부지 내 이건희 기증관 건립 2027년 완공 목표

송현동 부지와 관련해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 지점은 바로 ‘이건희 기증관(가칭)’ 건립 시점이다. 이 기증관에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이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보존‧전시‧연구하기 위한 ‘이건희 기증관’ 건립지로 송현동 부지가 확정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서울시와 ‘이건희 기증관’의 건립 주체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증관 건립이 대한민국의 문화경쟁력을 높이고 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중대 프로젝트인 만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먼저 2년 간의 송현동 부지 임시 개방 이후, 서울시는 2025년부터 이곳을 ‘이건희 기증관’을 품은 ‘송현문화공원(가칭)’으로 조성하는 작업의 첫 삽을 뜬다. 

송현동 부지를 대한민국 문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대표 문화관광명소로 육성한다는 목표이며, 서울시는 이를 위해 현재 기본계획(안)을 마련한 상태다. 또 송현동 부지가 자연·문화가 어우러진 공원이 될 수 있도록 통합설계지침을 정하고 내년 상반기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통합 공간계획안을 마련한다.

서울시는 2025년 1월 착공해 2027년 ‘이건희 기증관’과 공원을 동시에 완공해 개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마련한 ‘송현문화공원’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공원과 기증관 각 부지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으로 연계해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송현문화공원’과 ‘이건희 기증관’의 공간적 경계를 없애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한다는 방침이다. 

이어 공원 내 어디에서든 시야에 막힘이 없이 서울 도심의 대표 경관 자원인 북악산과 인왕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경관 및 공간계획을 수립한다. 

또한 공원 하부 지하공간에는 관광버스 주차장을 포함하는 통합주차장 총 450면 가량을 조성해 관광버스 등 불법주차 문제를 해소하고 북촌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의 정주권을 보호할 예정이다. 

16일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을 방문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공공뉴스DB>
16일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열린송현녹지광장을 방문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공공뉴스DB>

#아픈 역사 품은 송현동, 시민 행복의 원천 되다

송현동 부지 개방에 발맞춰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지만 시민들이 밟을 수 없어 ‘금단의 땅’이라고도 불린 배경에도 눈길이 모인다.

1398년 조선시대 당시 송현동은 소나무숲인 구릉지로 경복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 왼쪽 언덕의 솔(소나무)이 마르므로, 그 가까이 있는 인가를 철거하라”고 명했다. 

이후 송현은 조선시대 왕족이 거주하는 지역이 됐으며, 1900년대 조선 말에는 우국지사 김석진의 자택이 자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송현은 일제와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손에 넘어갔다. 1910년대에는 대표적 친일파 윤영덕 일가의 집이 들어섰으며, 1920년대에는 민족자본 수탈의 도구로 사용된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이곳에 건립됐다. 

해방 이후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0여년 간 송현동 부지는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활용됐다. 1997년 삼성생명은 미술관 건립을 위해 미국 정부로부터 송현동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삼성의 부지 개발계획이 무산되고 2008년 삼성생명은 대한한공(한진그룹)에 부지를 매각했으나, 이곳에 호텔 등을 건립하려는 대한한공의 계획 역시 취소되고 말았다. 송현동 부지가 풍문여고·덕성여고 등과 맞닿아 있어 교육청 심의 대상이 된 까닭이다.

결국 서울시는 대한항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3자 매매·교환 방식으로 송현동 부지를 구매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국민 품에 돌아온 송현동 부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자원으로 자리매김 할 예정이다. 인근에 경복궁을 비롯해 북촌한옥마을, 인사동,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인프라도 자리하고 있어 그 가치가 더 크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2년 간 녹지 공간으로 임시 개방되는 송현동 부지는 서울 시민의 행복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발전한 도시일수록 도심 속 녹지 공간이 시민의 행복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미영 기초과학연구원 수리및계산과학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CI 연구팀은 지난해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원동희 미국 뉴저지공대 교수 등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인공위성 이미지 빅데이터를 분석해 세계 60개 국가의 도시 녹지 공간을 찾아내고, 녹지와 시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국가의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게 모든 도시에서 녹지의 면적이 넓을수록 시민 행복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8000달러(약 4223만 원)가 넘는 도시에서는 녹지 공간 확보가 경제 성장보다 행복에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국의 경우 서울 지역이 분석에 쓰였으며, 도심 녹지의 면적이 과거보다 증가하며 행복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110여년 만에 돌아온 송현동 부지가 상업적 공간이 아닌 시민의 행복도를 높여줄 공간으로 탈바꿈해 더 큰 환영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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