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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입석금지:8년전 효과 유명무실→실효성 높은 대책 촉구

[공공story] 공포의 출근길

2022. 11. 20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2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직한 사회 초년생입니다. 합격된 사실을 알게 되고 뛸듯이 기뻤지만, 곧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하게 됐어요. 바로 출퇴근 문제인데요. 집이 수원 영통이라 을지로3가에 위치한 회사까지 가려면 1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하루에 3시간을 ‘길에다 버리고’ 있어요. 통근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아 서울에 자취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곧 포기했습니다. 월세로 방을 구하면 목돈을 못 모을 거 같고, 전세를 구하려 하니 요즘 문제가 되는 깡통전세가 무서워서요. 이런저런 이유로 경기도에서 계속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최근 광역버스 입석 탑승이 전면 금지돼서 걱정이 커지고 있어요. 물론 안전을 위해서는 입석을 금지하는 게 맞죠. 광역버스가 고속도로를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매일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입석으로라도 버스를 타지 못하면 하염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저도 어쩔 수 없잖아요. 앞으로 매일 30분 일찍 일어나서 버스정류장에 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한 기분이에요. (남·29·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지역 버스업체의 광역버스 입석 승차 금지 시행일인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버스정류장에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에 승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지역 버스업체의 광역버스 입석 승차 금지 시행일인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버스정류장에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에 승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지역 버스업체가 광역버스의 입석 승차를 전면 금지함에 따라 출퇴근길 시민들의 혼란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일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출퇴근길 불편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 이같은 광역버스 입석 금지 조치가 8년여 전의 상황과 오버랩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이태원 참사 계기 입석 승차 전면중단 

20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KD운송그룹 소속 경기지역 버스업체 14곳은 이달 18일부터 입석 승차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는 광역버스 입석 승차가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수도권 광역버스에선 출퇴근 시간대 수요 집중으로 인해 승객들의 입석 탑승을 묵인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버스 업체들은 안전 조치 강화 차원에서 입석 금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버스 정류장과 버스 내부에는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11월18일부터 입석 승차를 전면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게재됐다. 

이에 해당 그룹 소속 업체의 광역버스는 경기도 전체 광역버스의 44%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첫날인 18일, 예상만큼 큰 혼잡은 없었지만 일부 승객들은 좌석 부족으로 인해 버스를 탑승하지 못하거나 ‘무정차 통과’로 인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일부 버스 앞유리에는 ‘만석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부착됐고, 출근시간이 다가올 수록 버스에 미처 탑승하지 못한 승객들의 안타까운 외침이 이어졌다. 

일부 승객들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출근 시간을 앞당기거나, 종점쪽 정류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탑승하는 방식을 택했다. 퇴근시간에는 광역버스 정류장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경기도 광역버스 입석 승차 중단 첫날인 지난 18일 오후 서울 사당역 광역버스 정류장이 버스 이용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도 광역버스 입석 승차 중단 첫날인 지난 18일 오후 서울 사당역 광역버스 정류장이 버스 이용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토부·서울시·경기도 대책 마련 맞손

경기지역 광역버스 입석 승차가 전면 중단됨에 따라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이하 대광위)는 수도권 출퇴근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경기도와 함께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광위에 따르면, 올해 안에 정규버스 152대와 전세버스 135대 증차를 통해 총 482회 운행 확대 중인 증차 물량이 보다 신속히 투입된다.

또한 정부는 이달 중으로 정규버스 12대, 예비차 3대 등 15대를 추가로 투입하는 한편 연내 정규버스 12대를 증차해 총 22개 노선에 46대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초까지는 18개 노선에 정규버스 37대가 추가 증차된다.

이같은 조치를 광역버스 좌석 공급량으로 환산했을 경우 11월 중으로 출퇴근 시간대 공급량은 약 1500석, 연말까지는 2300석 확대가 예상된다. 

대광위는 입석 중단을 선언한 업체들의 버스노선에서 하루 출퇴근 시간대 입석 승객이 2300명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아울러 대광위는 버스 업계에 공급 확대를 촉구하는 동시에 ‘광역버스 입석 해소 지원 상황반’을 구성해 출퇴근 시간대 광역버스 혼잡 문제 해소를 위해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역시 당분간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예상되는 시민 불편에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광역버스 입석 중단조치 시행 첫날 “경기도는 승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버스 정보 앱’과 ‘정류소 안내문’을 통해 입석 중단과 대체 노선을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18일부터 전세버스, 예비차량 등 20대를 투입하고 9월에 수립한 ‘광역버스 입석대책’에 따라 늘리기로 계획된 68대의 차량도 내년 초까지 투입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정부 및 수도권 지자체와 함께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 대응 협의체’를 상설화해 승객 불편과 혼잡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는 등 입석 문제에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혼란을 줄이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증차가 완료될 때까지 시민들의 출퇴근길 불편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초겨울 날씨가 이어진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하는 광역버스 유리창에 김이 서려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초겨울 날씨가 이어진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하는 광역버스 유리창에 김이 서려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2014년 입석 금지 조치 유명무실에 커진 우려

일각에서 이같은 광역버스 입석 금지 조치에 8년여 전의 상황이 오버랩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정부가 당시보다 진일보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14년 7월16일에 광역버스의 입석 운행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같은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계기였다.

당시 국토부와 수도권 지자체들은 입석 운행 금지를 사전에 공지하고 수도권 광역버스 노선에 버스 200여대를 추가로 투입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편이 예상보다 커져 정부가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현장 일부 버스에서는 승객들의 항의에 못이겨 입석이 허용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광역버스 증차 및 배차시간 단축, 전철 증편 운행, 광역버스 입석 금지 단속 유예기간 연장 등의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추가 대책의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는 질타가 이어지자 정부는 결국 같은해 8월21일 한시적인 입석 운행을 허용했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한달여 만에 제재가 유명무실해진 것.

이후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일부 광역버스에서는 지금까지도 입석 탑승이 계속돼 왔다.

이같은 전례가 있는 만큼 서울-경기 지역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8년 전의 혼란이 반복될까 우려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물론 8년 간 버스 증차·수인분당선 개통 등 수도권 교통 인프라 개선이 이뤄져 당시와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무리라는 반박에도 일리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좌석이 있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공포의 출근길’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안전과 편리 둘다 잡기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실 입석 운행이라는 ‘안전불감증’에 빠진 관행을 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다. 그동안 우리 국민에게 큰 충격에 줬던 사고들을 돌이켜보면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서서라도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는 시민들, 그리고 이런 시민들 때문에 불안에 떨며 운전대를 잡아온 운수종사자들.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위화감 없는 풍경이 더이상 또다른 화를 부르지 않도록, 이제는 흐지부지 마무리가 아닌 완벽한 매듭을 지어야 할 때다.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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