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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이 공식화:오락가락 셈법 혼란→통일로 불필요한 다툼 해소

[공공story] 도둑맞은 젊음

2022. 12. 12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빠른년생’의 비애는 그 입장이 돼보지 않고선 모를 거에요.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 같은 반 학생들 중에는 “왜 나보다 어린데 같은 학년이야?”, “언니라고 불러”라고 얄미운 말을 던지는 아이들이 꼭 있었어요. 생일 차이도 얼마 안 나서 만으로 따지면 어차피 동갑인데 말이에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빠른년생’이기 때문에 눈치볼 일이 더 많았는데요. 저 때문에 동기들 사이에 ‘족보’가 꼬일 때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나이를 말할 때 마다 “빠른이에요”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지겨웠고요. 그래서 이번에 나이 계산법이 ‘만 나이’로 통일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답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제 나이를 이야기할 때 ‘빠른’을 안 붙이고 당당하게 만 나이를 말할 수 있게 돼서 기뻐요. (여·32·서울시 마포구)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나이 표시 방법을 ‘만(滿) 나이’로 통일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음에 따라 내년 6월부터 만 나이 사용이 공식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 ‘연 나이’, ‘만 나이’ 등의 나이 계산법이 함께 사용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혼란은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 법적 분쟁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만 나이’ 공식화에 따라 그간 ‘빠른년생’으로 불편을 겪었던 국민과 2살 더 젊어지는 국민까지 모두 한목소리로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만 나이 vs 세는 나이 vs 연 나이 

12일 국회에 따르면, ‘만 나이’로 표시 방식을 통일하는 ‘민법’·‘행정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공포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만 나이 계산법은 태어난 해의 나이를 0살로 치고, 출생일로부터 정확하게 1년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더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만 나이’ 계산법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총 세 가지의 나이 계산법이 사용돼 왔다. ▲태어난 해에 1살이 되고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 ‘세는 나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빼서 계산하는 ‘연 나이’ ▲만 나이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 12월14일에 태어난 A씨의 경우, 이날 기준으로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만 나이는 31세다. 

A씨의 나이를 ‘세는 나이’로 계산할 경우, 태어나자마자 1살로 치기 때문에 A씨는 33세가 된다.

만약 ‘연 나이’로 계산한다면 A씨는 이날 기준 32세다. 태어날 때 나이를 0세로 치는 까닭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소위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률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으며 ‘병역법’과 ‘청소년보호법’ 등 일부 법률에서는 ‘연 나이’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일원화되지 않아서 우리 국민은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 체결 시 나이 계산과 관련해 혼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온라인 포털에서는 ‘나이계산기’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실정. 

때로는 분쟁이 일어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까지 발생되곤 했다. 남양유업 노사의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과 관련된 대법원 판단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뉴시스>

# 대법원까지 간 ‘나이 세는법’ 논쟁

2014년 남양유업 노사는 단체협약을 개정하며 ‘근무 정년을 만 56세에서 만 60세로 늘리고, 56세부터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되 직전 년(55세) 1년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피크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해당 협약에서 임금피크제 적용이 시작되는 나이인 ‘56세’를 두고 노사의 해석이 엇갈렸다.

사측은 문언상 ‘만 56세’라고 기재되지 않은 만큼 ‘한국식 나이 56세’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노조 측은 문언상 ‘만 56세’가 맞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이후 양측은 노동위원회에 해석을 요청했고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사측의 손을,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사측은 이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판단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1심 재판부는 임금피크제가 처음 도입됐을 2010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사측이 옳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노조의 해석을 인정했다. 민법에서 ‘만’자를 표시하지 않더라도 ‘만 나이’를 의미한다는 점 등이 근거였다.

또한 2심 재판부는 ‘단체협약의 명문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해석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올해 3월28일 대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을 ‘만 55세’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대법원은 “만 55세를 기준으로 그때부터 1년 단위로 임금피크율이 적용되는 것을 전제로 해 만 60세 정년까지 총 5년간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과 관련해 조합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자 노조위원장이 2016년 2월 ‘만 55세’라고 공고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을 만 55세로 본다고 해서 단체협약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양유업 노사의 이같은 법적 공방은 한국에서 여러 나이 계산법이 혼재돼 사용돼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만 나이 계산기. <네이버 ‘만 나이 계산기’ 화면 갈무리> 
포털에서 제공하는 만 나이 계산기. <네이버 ‘만 나이 계산기’ 화면 갈무리> 

# 국민 86.2% “법안 시행시 만 나이 사용할 것”

한국식 나이 계산법인 ‘세는 나이’의 유래는 명확치 않다. 뱃속의 태아도 사람으로 간주하는 가치관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부터 ‘0’이라는 숫자 개념이 없을 때 생겼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설(說)이 있다. 

그 유래가 어찌 되었건 우리 주변 국가들 중 아직까지 ‘세는 나이’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북한도 1980년대 이후 만 나이만 사용하고 있다. 

이제 국민 대다수는 이런 나이 세는 법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을 적극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제처는 올해 9월5일부터 18일까지 2주 간 국민신문고 국민생각함에서 ‘만 나이 통일’에 관한 국민의견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조사 참석자 6394명 중 81.6%에 해당하는 5216명이 ‘만 나이 통일’을 담은 민법 및 행정기본법 개정안 처리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또한 법안이 통과·시행된 이후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를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6.2%인 5511명이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만 나이 통일’을 찬성하는 주요 이유로 ▲다양한 나이 계산법으로 인한 혼란·불편 해소 ▲기존 한국식 나이 계산법으로 인한 서열문화 타파 기대 ▲국제적 기준과 통일 ▲체감 나이 하향 등을 꼽았다.

특히 1~2월이 생일인 사람 중 학교를 한 해 일찍 입학한 ‘빠른년생’들은 희소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사회생활을 하며 나이를 소개할 때 곤란을 겪었던 경험이 많았던 까닭이다.

물론 만 나이로 통일된 이후에도 다소간의 사회적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고령자들은 음력 생일에 익숙한 경우가 많아 나이 계산이 더 어려워질 수 있고, ‘빠른년생’ 성인들은 동기와의 호칭 문제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진작에 시행됐어야 했던 일”이라는 환영의 목소리가 더 큰 분위기다.

그동안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나이계산법으로 최대 2살까지 ‘젊음’을 도둑맞았던 우리 국민은 더 어려진 기분으로 새해를 맞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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