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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바람:후회와 새 각오→나이먹음 아닌 익어감의 여정

[공공story]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2022. 12. 26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중략)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노사연 노래 ‘바램’ 중>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한 해가 또 이렇게 가네요. 매년 12월이면 그동안의 1년을 돌아보게 되는데 항상 감사한 것도, 아쉬운 것도 참 많아요. 새해를 시작할 때에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생각보다 이루지 못한 일들도 많고 부끄러웠던 경험들도 너무 떠올라서 반성을 하게 되죠. 저는 벌써 내년이면 나이가 마흔이 되는데도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철부지 막내딸 같은 느낌도 여전해요. 노사연의 노래 가사처럼 이런게 나이가 들어가는게 아니라 우린 익어가는거겠죠? (여·39·서울 관악구)

2022년 임인년이 저물고 2023년 계묘년이 다가오는 시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가 되면 언제나 불안감과 기대가 뒤섞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마음은 과거보다 더 각별하다. 근래 몇 년은 우리에게 특히나 힘든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26일 경제계에서는 내년 상반기가 우리 경제가 경기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는 경계선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데이터를 통해 그간의 정책이 국내경기 둔화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의 유명 사전 중 하나인 ‘콜린스’는 지난달 1일(현지시간) 장기적 위기를 뜻하는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를 ‘올해의 단어’로 뽑았다. 

콜린스의 이번 단어 선정은 많은 사람에게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주 간결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손과 등, 다리가 아픈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년 우리는 새 달력을 마주보며 새로운 소망을 품는다. 신년 소망과 지난해 반성을 통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셈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2022년 과이불개’, 후회를 모르는 한국인에 대한 경고음

대학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뽑았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11일 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추천받은 결과, 과이불개가 50.9% 득표율을 얻어 1위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에 처음 등장한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으로 처음 등장한다. 

교수신문은 교수 12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단에서 22개의 사자성어를 뽑은 뒤 예비심사단 회의를 거쳐 상위 5개를 선정했다. 이어 이메일 조사를 통해 1~5순위 사자성어를 매겨 올해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과이불개를 선정했다. 

과이불개만 암울한 게 아니다. 

과이불개에 이은 2~5위 사자성어를 보면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 14.7%), “여러 계란을 포개어 쌓은 듯한 위태로움”을 묘사한 누란지위(累卵之危, 13.8%), “과오를 그럴 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문과수비(文過遂非, 13.3%),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만 사물을 본다”는 의미의 군맹무상(群盲撫象, 7.4%) 등 잘못이나 잘못을 외면하는 모습의 표현이 대거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많은 과오를 저지르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한 위기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스스로 감당하지도, 고치지도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잘못인 것도 사실이다. 이번 사자성어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5위까지의 사자성어를 겹쳐 보면 많은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아집의 캐릭터가 떠오른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도, 고칠 필요도 없는 셈이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시대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단순히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높다. 경제난이 영구적 위기로 간다고 영국 사전에서도 올해의 단어를 꼽은 것이 새삼스럽다. 갈수록 일단 잘못을 외면하고 보는 풍조가 늘어가는 건 이런 불안감이 한두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방증으로도 해석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길래 잘못이나 위험천만한 모습, 잘못을 덮는 모습, 잘못을 알고도 안 고치는 행태를 개탄하는 사자성어들만 부각된 것일까?

하지만 잘못을 알고 벗어나고자 노력해 패자부활전을 치른 케이스도 역사적으로는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자성어를 뽑아보고, 그 의미를 새긴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잘못을 고쳐 좋은 쪽으로 옮겨간 사례가 여럿 있다”며 세종의 예를 들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간 이가 부적절한 말썽을 빚자 “사람을 잘못 알고 보낸 것이 심히 후회된다”고 탄식했고, 역병을 예방하지 못했던 일에도 “크게 후회한다”고 반성했다. 

과이불개에 계속 머물지 않고 벗어나고자 반성했기에 세종은 우리 역사 최고의 성군으로 꼽힐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이때쯤이면 과거를 돌아보고 올해 우리는 어땠는지를 생각해 본다. 부질없어 보이면서도 내년을 예측하고 각오를 생각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소망을 적은 종이를 붙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소망을 적은 종이를 붙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 매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후회’,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까닭 

해마다 과거를 반성하고 앞날의 다짐을 세우는 것은 의례적으로 이어지는 단골행사다.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올해 1월 미혼남녀 총 300명(남성 150명·여성 150명)을 대상으로 ‘새해 다짐’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지난해(2021년)를 함께 돌아봤다.

듀오는 조사 결과 지난해를 돌아보는 미혼남녀의 소회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지난해에 대해 느끼는 감정으로 ‘허무함’(33.7%)이 가장 많았다. ‘답답함’(26.3%)이나 ‘만족스러움’(11%)과 ‘후회’(11%), ‘슬픔’(3.7%) 등이 뒤를 이은 감정들도 후회로 연결된다.

연초 세웠던 새해 다짐을 지켰냐는 질문에 71%가 ‘못 지킨 편’이라고 답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이유가 대부분 자신에게 있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다짐을 지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는 ‘의지 부족’(40.4%)을 꼽았다. 그 뒤로는 ‘코로나19’(18.3%), ‘바쁜 일상’(13.1%), ‘따라주지 않은 운’(10.3%) 등이 꼽혔다. 

이런 반성을 해 보는 자체가 미래에 대한 긍정적 암시를 준다는 징후도 있다. 이 조사에서는 세 명 중 두 명(남 66.7%, 여 69.3%)은 지난해에 비해 올해 자신의 삶이 ‘더 좋아질 것’이라 답했다. 지난해 중반기(남 48.8%, 여 59.6% ‘삶 더 좋아질 것’)에 비해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본 비중이 신년 효과로 늘어났다.

지난해 12월31일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직장인 529명을 대상으로 ‘새해 단골 계획’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도 시사점이 크다. 

응답자의 대다수인 89.0%는 ‘해마다 세우는 단골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지난해 세웠던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고 답했다.

‘계획이 잘 지켜졌는지’라는 질문에 67.3%가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 이들 중 30.9%는 계획을 채 한달도 지키지 못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대다수인 93.0%는 지키지 못한 계획에 대해 ‘새해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답했다. 각오와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조사에서 새해 계획을 지킨 그룹(32.7%)은 연초 계획을 잘 지켜온 비결에 대해 ‘계획을 지키려는 의지를 계속해서 되새겼다(53.2%)’고 답했다.

이어 ‘중간 점검을 계속했다(37.0%)’, ‘성실히 계획과 목표에 따라 움직였다(22.5%)’, ‘함께 계획을 실행할 동료, 친구를 만들어 서로 격려했다(21.4%)’ 등을 노력과 의지를 계속하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임이 입증됐다.

맞잡은 노인과 중년의 손. <사진=뉴시스>
맞잡은 노인과 중년의 손. <사진=뉴시스>

# 후회는 가장 훌륭한 스승,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 간다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연설문 담당자였던 다니엘 핑크는 ‘후회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써서 인생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 ‘후회’라고 강조했다.

후회와 반성이야말로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능력이라는 전제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했다.

2020년 다니엘 핑크와 그의 연구팀은 ‘미국 후회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인 4824명을 조사했다. 이를 확대한 ‘세계 후회 설문조사’를 통해 105개국 약 1만6000명의 의견도 모아 후회의 유형을 분석했다.

인간은 ▲기반성 후회 ▲대담성 후회 ▲도덕성 후회 ▲관계성 후회 등 많은 종류의 후회를 느낀다. 기반성 후회는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지난 여름 일을 했더라면 지금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느끼는 유형이다.

대담성 후회는 용기를 내서 마음에 드는 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유형이다. 도덕성 후회는 약자를 괴롭히거나 부정한 행위를 했던 순간을 반성하는 부끄러움이라고 설명한다. 관계성 후회는 틀어진 인간관계를 바로잡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반성이다.

이 조사와 분석에 따르면 따라서 이런 후회들은 그 자체로 인간다움을 방증한다.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 후회는 사람다운 가치가 ▲안정 ▲성장 ▲선함 ▲사랑이라는 점을 뜻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노력을 가장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연말연시 반성과 새해 소망 아닐까?

하루하루 버티기만으로도 팍팍한데 반성과 새 목표는 사치라는 소리도 나온다. 달력 한 장 차이일 뿐인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내년 사이에서 후회와 반성, 새 목표를 이야기하는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더 나은 모습의 나, 우리를 이야기하려는 노력을 매번 발전 없는 상황을 반복하기 위한 길들이기 수단쯤으로 매도하는 건 온당치 않다.

중요한 건 노력과 희망의 유무다. 후회와 반성을 담은 노력하고자 하는 새해 의지는 희망을 담는다. 그런 과정에서 그저 나이만 먹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은 성숙한 내년을 맞이하는 이웃들, 그리고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다시 희망과 각오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익어가는 과정에 작은 한 마디 응원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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