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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열풍:인재 배분 불균형→돈·명예보다 첫 마음 되새기기

[공공story] 하얀 가운의 무게

2023. 02. 20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40대가 되어보니 친구들을 만나면 모든 이야기의 주제가 아이들에 맞춰져 있더라고요.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어떤 교육을 받는지, 성적은 어떤지 등 엄마들이 모이면 하는 그런 흔한 이야기들 있잖아요. 30대 후반에 결혼한 저는 아이가 아직 3살 밖에 안됐지만,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초등학생 아이들이 있죠. 그래서 그런지 벌써부터 입시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해요. 특히 아이를 의대에 보내겠다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위치로나 대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아이를 의대에 보내야한다며 학구열에 불타는 친구들은 지금부터 준비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희 학창시절에도 극성맞은 부모님들은 있었죠. 친구 중 한 명도 부모님 등에 떠밀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의사가 됐어요. 그 친구도 환자 상담과 치료, 그밖에 스트레스 등 나름의 고통을 호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의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 보이긴 해요. 한편으로 부러운 건 사실이죠. (여·42·서울 영등포구)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 소위 ‘날고 기는’ 성적을 인정받은 우수 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최근 의대 진한을 위한 자퇴하는 대학생들이 급증했다는 교육업계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사실 의대의 인기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확실한 미래 보장’이라는 메리트 덕에 자녀가 이른바 ‘사자 돌림’ 직업 중 하나인 의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들이 늘면서 의대에 대한 관심도도 커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의사의 꿈을 꿈꾸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 과도한 업무 강도와 왜곡된 보상 체계로 인해 돈벌이가 좋은 전공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한편, 필수의료 진료과목 전문의 인력난은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국가 차원에서는 미래를 위한 인적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 무조건 의대..SKY 정시 28.8% 등록 포기 

2023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일명 ‘SKY’에 합격하고도 최종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정원 대비 28.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합격자는 의대로 이탈했으며, 연세대·고려대 합격자는 서울대나 의대로 이동 영향 때문이라는 풀이다. 

20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정시모집 마감 결과 총 4660명 모집에 1343명(28.8%)이 등록을 포기했다.

대학별로 서울대는 총 155명(11.5%)이 등록을 포기했다. 지난해 202명(19.5%)보다는 포기율이 절반가량 줄었다. 

연세대는 세 학교 중 등록 포기율이 가장 높았다. 등록 포기자는 총 643명(38.5%)으로 전년보다 5명 늘었다. 

고려대는 전년 대비 84명 증가한 총 545명(33.2%)명이 미등록했다. 

이에 대해 종로학원 측은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정시 원서 접수 단계부터 서울대가 아닌 의학계열로 지원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서울대는 올해 정시에 처음으로 내신 평가를 반영했다. 

계열별로 살펴보면 자연계열의 등록 포기율이 인문계열보다 높았다. 세 학교 자연계열에서는 총 737명(33.0%)이, 인문계열은 총 564명(28.1%)이 등록하지 않았다. 예체능의 경우 총 42명(10.0%)이 등록을 포기했다.

이 가운데 인문계열은 서울대 65명(14.4%), 고려대 199명(27.7%), 연세대 300명(35.8%) 등이다. 자연계열은 서울대 88명(12.2%), 고려대 334명(39.3%), 연세대 315명(47.5%) 등으로 집계됐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인문계(32.1%)보다 자연계(42.9%)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가 특히 두드러졌다. 

인문계열 교차지원에 합격한 일부 이과생들이 서울대 이공계나 의학계열로 대거 빠져나간 영향이라는 게 종로학원 측의 분석이다.  

실제 세 학교의 의과계열 등록 포기자는 63명으로 지난해 94명보다 크게 감소했다. 서울대 의대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등록 포기자가 없었다. 연세대 의대는 8명(지난해 10명), 고래대 의대는 4명(지난해 6명)이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초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한 학과도 있었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130%), 컴퓨터과학과 34명 모집에 41명(120.6%), 약학과 12명 모집에 14명(116.7%)이 모두 등록하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돈+명예’ 완벽한 미래 보장..필수의료는 기피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미 회사에 다니는 30~40대 직장인들도 최근 의학계열 진학에 재도전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과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해오다 2022년 조선대 의대에 입학한 40대 남성도 그 중 한명이다. 17년 간 다닌 회사를 그만 두고 수능에 세 번 도전한 끝에 의대 ‘22학번’으로 진학한 곽영호(45)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KBS joy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는 곽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방송에서 곽씨는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내가 환갑이다. 이대로 월급 받아서는 안 될 것 같은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때까지 아이를 키우려면 임원을 달아 큰 돈을 벌든, 사업을 준비하든 대책이 필요했다. 정년 없는 전문직을 해야겠다고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의대 쏠림 현상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심화됐다. 해고 등으로 부모 세대들의 직업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전문직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것. 

의사는 평생 직업인데다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자녀를 의사로 만들겠다는 부모들이 속출했고, 취업문도 갈수록 좁아지는 가운데 ‘의대 열풍’은 지금까지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의사 평균 연봉은 2억3070만원으로, 이는 대기업 평균 연봉인 7000만원의 3배가량에 해당한다.

문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이 돈벌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소위 일은 편하고 돈은 잘 버는 과목에 젊은 의사들이 몰리는 반면 내과나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전공은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의사가 없어서 진료를 할 수 없는 병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필수의료가 기피 대상이 된 이유로는 무엇보다 과도한 업무 강도와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이 꼽힌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의사의 길을 택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결국 무릎을 꿇는 의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필수의료 인력난이 심각해지자 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놓고 인력 양성, 적정 보상, 근무여건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현안을 논의하는 의정협의체는 가동에 차질을 빚는 등 필수의료 체계 강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인적자원 배분 불균형, 국가 경쟁력 흔든다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대기업보다 전문직을 선호하는 양상은 점차 짙어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 확보하자는 취지로 대학 특정 과들과 연계를 맺고 지원하고 있지만, 졸업 후 대기업행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일찌감치 의사의 길을 택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국정과제로 반도체 인재 양성을 내세우고 관련 학과 증원에도 나섰음에도 이탈은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 같은 우수 인재들의 쏠림 현장은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똑똑한 인재들이 의료계에 집중되면서 반도체를 비롯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등 다른 분야 발전이 더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등 미래가 보장된 의사는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려는 사람들의 경쟁력은 계속해서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만, 블랙홀처럼 인재를 계속적으로 흡수해버리는 현상에는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또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 돼 의사 외에 이공계 직군도 직업의 안정성과 적절한 보상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은 점차 줄어들면서 사회적인 존경심은 점점 식어가고 있다. 본업과 멀어진 의사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의사들의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무게감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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