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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방:경제 불황에 청년층 절약 열풍→정부 지원책 마련 필요

[공공story] 청춘의 웃픈 자화상

2023. 05. 08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요즘 퇴근 후에 ‘거지방’에 들어가 오늘 하루 지출을 보고하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됐어요. 거지방은 메신저 오픈채팅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지출을 공유하고 조언을 해 주는 방이랍니다. 요즘 전세대출 이자가 올라서 절약해야 겠다고 마음먹은 차에 이런 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들어갔어요. 일주일에 세 번은 배달 음식을 먹는 제 습관도 거지방 덕분에 고쳐졌답니다. 제 소비내역을 살펴본 거지방 사용자들이 “배달 음식은 부자들만 먹는 것” “배달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거다”라고 따끔하게 일침해 준 덕이에요. 그래서 아침·저녁 식사는 되도록 집에서 하고, 반찬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식재료로 해결해서 생활비가 많이 줄었답니다. 거지방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하다 보면 ‘나만 절약하며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도 들고요. (여·32·서울시 마포구)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소위 ‘거지방’이 유행하고 있다. ‘거지방’은 낯선 상대와 자신의 지출 내역을 공유하고 서로 절약을 독려하는 익명 SNS 채팅방을 의미한다. 

이처럼 청년층이 소비를 줄이는 트렌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최근 청년층의 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되기 때문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고물가 시대에 스스로를 ‘거지’라고 부르는 청년층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30 오픈채팅 ‘거지방’ 유행, 왜? 

8일 모바일 메신저에서 ‘거지방’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오픈채팅방이 나온다. 이 중 한 곳에 입장해 보면 수백 명이 수시로 자신의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조언을 주고받는 광경이 펼쳐진다.

한 참여자가 “재테크 책 사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돈 아끼게 도서관에서 빌려 보세요” “대형서점에서 서서 보세요”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어버이날 선물 구입을 위해 돈을 써도 되냐는 물음에는 “그냥 카네이션 그려서 선물하라” “편지와 안마, 발 각질 케어를 해드리라” “어버이날에는 어느 정도 돈 써도 된다”는 답변이 나오며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또 다른 참여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진을 채팅방에 올리자 “다 마신 뒤 얼음은 잘 보관했다가 물 없을 때 녹여서 드시라”는 극단적인 절약법이 답글로 달리기도 했다.

누군가가 “학자금 대출로 빚이 600만원 있다”고 고백하자, “600만원 밖에 없으면 상류층에 속한다. 전 전세 대출 6000만원 있다” “난 마이너스 통장 빚만 3600만원이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거지방과 관련해 “매서운 질책에 정신이 번쩍든다” “절약이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거지방 덕분에 재미있게 돈 아끼고 있다”는 호평을 내놓고 있다. 

이같은 거지방 유행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절약해야 하는 슬픈 현실을 유머로 승화시킨 일종의 ‘놀이 문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미를 동반해 무겁지 않게 절약하기 위한 젊은 세대들 만의 방법이라는 것.

한때 ‘욜로(YOLO, 미래보다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소비 행태)’, ‘플렉스(Flex, 성공·부를 뽐내는 과시적 소비)’를 외치며 외제차·명품백 등의 사치재를 구입하던 청년층은 치솟는 물가로 인해 지난해부터 ‘절약 기조’로 돌아섰다.

2022년 청년층 사이에서는 ‘무지출 챌린지’가 화제였다. 무지출 챌린지란 반드시 필요한 물건 이외에는 최대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을 일종의 ‘챌린지(도전)’처럼 즐기는 움직임이다. 

SNS 혹은 유튜브 상에서 ‘무지출’이란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이 검색된다. 무지출 챌린지를 하는 이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니거나, 프랜차이즈 커피 대신 회사 탕비실을 이용하는 식으로 소비를 최대한 자제하고 그 결과를 SNS에 공유한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지난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2020=100)으로 1년 전보다 3.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지난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2020=100)으로 1년 전보다 3.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경제적 불안에 ‘과시적 비소비’ 증가

이처럼 청년층이 과시적 소비에서 ‘과시적 비소비’로 돌아선 배경에는 경제적 불안이 가중되는 현실이 존재한다. 실제로 20~30대 청년층의 대출 잔액은 3년 전에 비해 30%가까이 급증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국내 은행권의 가계대출 대출자 수는 총 1490만명, 이들의 총 대출잔액은 902조2000억원에 달했다.

가계대출자를 연령대별로 분류해볼 경우 ‘30대 이하’의 대출 급증세가 눈에 띄었다. 30대 이하 대출자의 대출 잔액은 작년 4분기 기준 총 514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은행권 대출 354조8000억원 및 제2금융권 대출 159조7000억원을 합한 수치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4분기에 비해 27.4% 증가한 수치이기도 하다.

3년 동안 대출 증가율 역시 30대 이하 연령대가 1위였으며, 대출자 1인당 평균 대출액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계층도 2030세대였다. 

이와 관련해 양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층의 대출이 너무 많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금리·고물가 속에서 이들의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연체가 늘어나면, 소비까지 줄어 금융은 물론 경제 전반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만큼 미리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금리 기조가 청년층의 소비 위축을 불러온다는 지적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발표한 ‘금리인상에 따른 청년층의 부담 증가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해당 보고서는 금리인상에 따른 소비 변동을 분석하기 위해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 사이 차주 단위 월별 정보(소득, 신용점수, 연령, 체크⋅신용카드, 주택보유 여부 등)를 이용했다. 

분석 결과, 금리 인상에 따라 중장년층에 비해 청년층(20~39세)의 소비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또 청년층 중에서도 부채가 많을수록, 그리고 소득이나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소비 감소폭이 크게 나타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청년층 내에서 부채 상위 50%의 소비 감소폭(26만4000원, 1.1%)은 부채가 없는 경우의 소비 감소폭(2만4000원, 0.1%)과 비교했을 때 약 11배에 달했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유행 중인 일명 ‘거지방’ 대화방 <사진=거지방 오픈채팅 캡쳐>
모바일 메신저에서 유행 중인 일명 ‘거지방’ 대화방 <사진=거지방 오픈채팅 캡쳐>

#거지방, 고물가 시대 청년의 자화상

이와 관련해 KDI는 청년층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거 관련 부채인 만큼 주거 관련 비용의 안정이 청년층 부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시기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과 전세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청년층의 과도한 부채 증가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히 청년층은 중장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순자산이 적어 대출 여력이 부족한 까닭에 일시적인 충격에도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거지방’, ‘무지출 챌린지’ 사례처럼 청년층이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현상은 최근 청년층의 대출이 급증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국가의 미래를 견인할 청년층의 소비 부진이 이어질 경우 향후 우리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거지방’ 유행에 마냥 웃을수 만은 없는 이유다.

청년층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기 때문. 최근 정부·여당은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 및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이달 중 ㎾h(킬로와트시)당 한 자릿수 이내로 소폭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거 관련 대출, 학자금 대출 이자 등의 고정비용이 높은 청년층의 신음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청년층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거지’라 칭하는 현상에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청춘의 ‘웃픈’ 자화상은 곧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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