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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미신고 아동:제도 허점의 비극→부모·국가 역할 되새기기

[공공story] 잊혀진 천사들

2023. 07. 03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저는 2018년에 첫 아이를 출산한 30대 여성입니다. 당시 저희 부부는 아이를 출산한 뒤에도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출산 30일을 넘기고 나서야 출생신고를 했는데요. 출생신고를 늦게 하면 과태료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은 뒤 주민센터에 직접 가서 수기로 출생신고서를 작성했어요. 번거롭긴 했지만, 우리 아이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TV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아이들이 2000명 넘게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물론 각 가정마다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아이는 학교에 입학할수도 없는 거잖아요. 유괴를 당한다면 되찾기도 어려울 거고요. 뉴스를 보고 나서 그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여·39·경기도 김포시)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최근 한 여성이 자신이 낳은 영아 2명을 살해해 시신을 자택 냉장고에 보관해 온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사건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미신고’ 아동에 대한 정부 조사를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 인해 기존 출생신고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자,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전수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입법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부모와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번 사건이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충격 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

3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으로 구속돼 수사를 받아온 30대 여성 A씨를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이날 오전 9시11분쯤 수원남부경찰서 정문을 나서며 처음으로 언론에 노출됐다. 머리에 검은색 외투를 뒤집어 쓴 A씨는 “아이들을 왜 살해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한 채 호송차에 올랐다. 

A씨는 2018년 11월 및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한 뒤 바로 살해해 그 시신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내 냉장고 냉동실에 수년간 보관해 온 혐의를 받는다.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또 다시 임신하게 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은 감사원의 보건당국 감사 결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미신고’ 사례와 관련해 현장 조사가 이뤄지면서 드러났다.

앞서 감사원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감사를 실시해 위기아동에 대한 정부의 관리실태를 점검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임시신생아번호’로만 존재하는 아동 2236명 중 위험도를 고려해 23명의 아동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신생아의 경우 출생신고 이전에 예방접종을 위한 7자리 임시신생아번호가 부여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

감사원이 관할 지자체와 함께 출생미신고 아동들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조사 대상 아동 대부분이 필수 예방접종이나 보육지원 등 복지로부터 소외된 채 제도권 밖에서 양육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수원시와 함께 조사 중이던 2명의 아동이 출생과 동시에 A씨에게 살해돼 자택 냉장고 안에 보관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영아 2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로 구속된 친모 A씨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영아 2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로 구속된 친모 A씨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뒤늦게 대책마련 나선 정부·국회

해당 사건이 보도되자 국민적 공분이 들끓었고, 정부와 국회는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같은 달 28일 보건복지부는 질병청 예방접종통합관리시스템에 입력된 아동 중 임시신생아번호로 남아있는 2015~2022년 출생 아동 2123명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정부는 이달 7일까지 지방자치단체 조사를 완료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경찰 수사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향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임시신생아번호로 남아있는 아동도 정기적인 위기아동 확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도 관련 입법에 속도를 냈다. 국회는 6월30일 열린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출생통보제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아이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부모의 출생신고 누락으로 인한 출생미신고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기존 체계의 허점을 보완한 것. 법안은 공포일로부터 1년 후 시행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신생아의 출생신고는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부모가 직접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어기더라도 ‘5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면 돼 강제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늑장 대응이라는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이미 2017년에 출생통보제 도입을 권고했지만, 6년이 지나서야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 까닭.

2017년 11월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과 대법원장에게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등이 국가기관에 아동의 출생사실을 통보할 의무를 부여하도록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아동인권 모니터링을 통해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이 학대 위기에 처한 사례들을 발견하자, 출생사실에 관한 정보를 국가가 관리하게 되면 효과적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 같이 권고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아이들을 위한 부모·국가의 역할은

올해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보도된 직후 출생미신고 아동 문제에 시선이 쏠리자 인권위는 재차 출생통보제 법제화를 촉구했다. 

인권위는 부모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동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호자 등에 의한 학대 상황에 처해도 발견이 어려우며,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거나 취학연령이 되어도 학교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우려했다.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은 우리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역할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일부 부모가 신생아에 대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학대·방임·살해하는 것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의 생명을 마음대로 박탈할 권리가 없으며, 영유아들은 누구나 독립된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아울러 아이들은 국가로부터 의무 교육을 받고 또래들과 소통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아이가 이와 같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게 가로막는 행위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기존 출생신고 제도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천사와 같은 우리 아이들이 국가로부터 잊혀지는 비극이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란 목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출생통보제 법제화의 의미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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