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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용어 재점검:변화된 기상현상→수해 대책 개선 필요

[공공story] 500년 만의 이별

2023. 07. 17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요즘 한국 여름 날씨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저 뿐일까요. 좁은 지역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는 게릴라성 호우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동남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지난해에는 장마가 끝나야 할 시기인 8월에도 서울 강남 지역에 큰 비가 쏟아져서 난리도 아니었죠. 어릴 때는 장마 끝나는 날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됐는데, 최근에는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 모든 변화가 지구온난화 때문일 거란 생각도 드는데요. 최근 기상학계에서는 ‘장마’ 대신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제가 만약 아기를 낳으면, 이 아이들은 장마가 무엇인지 모른 채 자랄 수도 있을거 같아요. (여·30·경기도 화성시 병점동)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최근 전국에 집중호우가 이어지며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이상기후로 인해 ‘장마’라는 용어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돼 관심이 모인다. 

기상청은 2008년부터 장마 시작·종료일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장마가 끝난 이후에도 장마철보다 많은 비가 내리거나, 짧은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날씨가 이어지는 까닭이다.  

이에 한반도에서 500여년 넘게 쓰이던 단어 ‘장마’의 퇴출에 발맞춰 정부가 변화된 기상현상을 반영해 수해대책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500년 이상 사용된 표현 ‘장마’

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란 여름철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를 의미한다. 어원을 살펴보면 15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오랜’의 한자어인 ‘장(長)’과 비를 의미하는 ‘마ㅎ’를 합성한 ‘댱마ㅎ’로 표현됐다. 

이후 1700년대 후반부터는 ‘쟝마’로 표기하다가 1900년대 이후에 지금과 같은 ‘장마’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500여년 넘게 사용된 표현인 것. 

여름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남쪽의 온난습윤한 공기와 북쪽의 찬 공기가 만나서 형성되는 정체전선(停滯前線)의 영향을 받게 된다. 전선이 걸쳐 있는 지역에는 강한 남서풍으로부터 습윤한 공기의 유입량이 증가하고 장기간 많은 양의 비가 내리게 된다.

한국에서 장마라고 칭하는 이 현상은 중국에서는 메이유(Meiyu, 梅雨), 일본에서는 바이우(Baiu, 梅雨)로 불린다. 

최근 30년 간 평균적으로 장마는 6월19일 제주도에서 시작돼 남부 지방에서는 6월23일 경, 중부 지방에서는 6월25일에 시작됐다. 이후 7월26일 경 중부지방에서 가장 늦게 장마가 종료됐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의 연 강수량은 1333mm 가량이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인 655mm가 장마를 포함한 여름철에 집중됐다. 서울·경기 지역에는 약 한 달 정도 되는 장마 기간에 연간 총강수량의 30% 가량의 비가 내렸다.

하지만 최근 기상학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여름철 비를 ‘장마’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승 고려대기환경연구소장은 지난해 10월 ‘기후위기 시대, 장마 표현 적절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기상학회 특별분과 행사에서 “장마철 강수 지속 기간이 크게 변했다”며 “단속적인 소나기와 국지적 폭우가 잦아지고 있어 오랫동안 사용해온 용어인 ‘장마’ 표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자리에서 임교순 기상청 사무관은 같은 해 여름 장마철보다 장마철 이후에 더 많은 비가 내렸으며, 지역별 차이가 뚜렷했다고 밝혔다.   

서울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지난해 8월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지난해 8월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 장마 후 국지성 강수 집중 잦아졌다

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인 장은철 공주대학교 교수는 장마가 종료된 이후 소나기·국지성 강수가 집중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만큼, 최근 여름철 강수 발생 과정과 특징들이 전통적인 장마의 특성과 부합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아열대성 기후의 특징인 강수가 집중되는 구간을 뜻하는 ‘우기(雨期)’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강수량 변동 특징은 1993/1994년을 경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상청이 1994년부터 2020년 사이의 장마를 1973년부터 1993년 사이의 장마와 비교해본 결과, 최근 26년 가량은 장마 이후 8월에서 9월 초순까지 더욱 잦은 강수현상이 있었다.

아울러 시간당 30mm 이상의 집중호우 빈도 역시 최근 20년이 1970~1990년대 보다 20% 이상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같은 집중호우 증가로 인한 피해 역시 커지고 있다. 2011년부터 2020년 사이 호우피해의 평균 발생 건수는 12.5건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호우피해 발생 빈도는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2020년에는 8월1일부터 집중호우가 이어져 같은 달 14일까지 총 2만6000여건의 시설피해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36명·실종자는 6명에 달으며 당시 11개 시도에서 4587세대, 8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22년에도 8월8일부터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시작돼 같은 달 14일까지 7일 간 총 14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이 기간 동안 발생한 부상자 역시 26명에 달했다. 

특히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관악구 반지하 침수사건’과 ‘맨홀 실종사건’ 역시 해당 기간 동안 발생했다. 

당시 서울에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지 115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의 비가 내린 ‘최악의 폭우’가 쏟아졌다. 당시 동작구에는 시간당 140mm 가량의 ‘물폭탄’이 떨어졌다. 이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 3명이 밀어닥치는 물을 미처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같은 기간 폭우로 인해 맨홀 뚜껑이 유실되며 성인 남매 2명이 맨홀에 빠져 숨지는 사건도 발생해 큰 충격을 줬다. 이들은 집중호우가 내리던 같은 달 8일 밤 서울 서초구에서 건물을 나서던 도중 뚜껑이 열린 맨홀을 미처 보지 못한 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이 중 남동생은 이틀 뒤 서초동의 한 버스정류장 인근 맨홀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누나 역시 사흘 뒤 서울 동작구 동작역 인근 반포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해 8월10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인근 빌라촌에서 수방사 35특임대대 소속 장병들이 침수피해 지원에 나선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10일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인근 빌라촌에서 수방사 35특임대대 소속 장병들이 침수피해 지원에 나선 모습. <사진=뉴시스>

# 사라질 가능성 커진 ‘장마’ 용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 중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말이 있다. 양력으로 6~7월인 장마 기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며 식물들이 크게 성장하는 모습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와 같이 장마는 수해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등을 공급해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장마 이후에도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현상이 반복되며 이 같은 ‘장마’ 용어가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장마 이후에도 강수현상이 잦은 이상기후 현상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동성의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상청은 ‘장마백서 2022’를 통해 지난 10년간 과거 경험하지 못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단기간 지역적으로 집중호우가 빈번해지는 반면 장기적으로 가뭄(2015~2017)이 발생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큰 재난을 야기하는 이상기후 현상에 근본적으로 대비해 사회적 손실과 인명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특히 과거의 기상 통계를 기준으로 수립된 기존의 수해방지 시설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500여년 넘게 쓰이던 단어 ‘장마’와의 이별에 발맞춰 정부는 변화된 기상현상을 반영한 수해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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