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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도입:美 문화 ‘설왕설래’→서비스와 보상은 인지상정

[공공story] 권리가 돼버린 호의

2023. 08. 21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20대 중반 처음으로 미국여행을 갔을 때 팁 문화 때문에 당황스러웠어요. 한국인에게 팁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잖아요.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미국에서는 팁이 그냥 일상이더라고요. 팁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니 손님의 의무 아닌 의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이런 팁 문화가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솔직히 저는 이해가 가지는 않아요. 미국의 경우 낮은 임금 대신 팁을 받은 것이 자리 잡았지만, 거의 1만원에 가까운 최저임금이 보장된 나라인데 굳이 팁 문화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미국에서도 치솟는 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어요. 우리나라에 원래 없던 문화를 들여와서 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불편함만 가중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여·39·인천 연수구)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 많은 국가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팁(tip·봉사료) 문화’다. 

미국에서 발달한 팁은 도움을 준 사람에게 순수하게 주는 ‘고마움의 표시’다. 그러나 서비스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그 의미가 퇴색돼 해외여행 시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여행객들도 적지 않다. 

이런 팁 문화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자신에게 대가성 없는 친절한 도움을 준 타인에게 감사의 인사 차원에서 일정 비용을 줄 수 있지만, ‘한국의 정(情)’이라는 말로 포장한 대가의 강요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 카카오T가 당긴 ‘팁’ 논쟁 불씨

한국의 팁 문화 도입에 불씨를 당긴 것은 국내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다. 

21일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카카오T에 ‘감사 팁’ 시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택시 운행에 만족한 고객이 자발적으로 요금에 팁을 더해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고객이 기사 평가에서 별점 5점을 줄 경우 1000원· 1500원·2000원 금액 중 선택해 팁을 추가 결제할 수 있다.

해당 서비스 도입은 카카오모빌리티와 가맹택시협의체 간 상생 논의를 통해 이뤄졌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서비스 개선을 위해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게 선택적으로 팁을 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택시기사들의 요청이 있었다”고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고객들에게 팁을 받은 택시기사들이 더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카카오모빌리티 측의 기대다.

시범 도입 일주일 간 하루 평균 약 2000명의 승객이 이 기능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팁을 하루에 2~3번 받는 사례도 있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팁 지불 여부는 승객의 자율적인 선택 사항이며, 해당 팁은 모두 택시기사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카카오모빌리티는 팁을 강요한 기사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택시에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없도록 조치하고, 승객에게는 환불하는 정책을 운영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 도입을 두고 10명 중 7명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최근 20~50대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 설문 조사는 20~50대 패널 1000명을 통계청 인구비례에 맞게 할당·추출해 진행했으며, 표본오차는 신뢰수준 80%에서 ±2.03%포인트다.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 도입에 대해 응답자의 71.7%가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찬성에 더 가깝다’는 의견은 17.2%, ‘잘 모르겠다’는 11.1%에 각각 그쳤다. 

택시 호출 플랫폼의 팁 기능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36.7%)이거나 ‘부정적’(21.6%)이라는 답변이 ‘매우 긍정적’(3.6%), ‘긍정적’(10.5%)이라는 응답과 비교해 훨씬 많았다.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답변은 8.5%에 불과했다. 

또한 국내 택시 이용요금에 대한 설문 결과 ‘높은 편’이라는 응답은 53.0%로, ‘적정한 수준’(24.5%)이라는 응답의 두 배 수준이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미국식 팁 문화에 국민 저항감 확산

올해 택시 요금이 인상돼 이미 부담이 커진 상태에서 택시 팁까지 더해지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 목소리를 상당하다. 배달비처럼 팁 문화도 당연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일부 카페와 식당에서 손님에게 팁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누리꾼 A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남동에 팁 요구하는 카페가 생겼다”라며 글을 올렸다. 

이 카페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이 A씨에게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팁 어떠신가요?’라고 말한 뒤 태플릿 PC를 보여줬고, 화면에는 결제 금액의5%, 7%, 10%에 해당하는 팁을 줄 수 있는 선택 버튼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A씨는 “이런 건 대체 왜 들여오는 거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팁 논란이 제기된 곳은 연남동 카페뿐만이 아니다. 유명 베이글 가게에서 팁 박스를 뒀다는 주장 등 손님을 상대로 팁을 요구하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는 사연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팁 요구 사실을 접한 누리꾼들은 “서비스에 만족해서 내가 주고 싶으면 주는 거지” “팁 문화 정착된 외국만 봐도 좋을 게 하나 없는데 왜 따라하는 건지” “열심히 일하면 사장이 월급을 올려줘야지” “팁이라는게 언제부터 권유가 됐지?” 등 불편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당초 팁 문화는 17세기 영국과 유럽 상류층의 문화였다. 남북전쟁 이후 과거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돼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확산됐다. 낮은 임금을 손님들이 주는 팁으로 대신 채우며 생계를 유지했다. 

현재 미국은 통상 음식값이 20%가량을 팁으로 낸다. 미국의 식당 웨이터 등 서비스 업종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2.13달러(약 2700원)로 낮다. 팁을 받는 노동자와 받지 않는 노동자 간 임금 차이가 커, 팁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손님의 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최저임금이 보장된 나라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팁 문화가 발달한 나라와 상황이 다른 한국에서 팁 문화가 왜 필요하냐고 지적한다.

더욱이 직원 급여 체계를 흔드는 것은 물론, 고용주가 급여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팁 문화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을 들며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2013년 개정된 식품위생법에 따라 우리나라 손님에게 음식값 외 별도의 봉사료를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팁을 요구하는 카페가 생겼다는 글이 게재된 가운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사진=해당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팁을 요구하는 카페가 생겼다는 글이 게재된 가운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사진=해당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미국식 팁 문화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자 국민적 저항감은 상당하다. 해외여행이 활발해지며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접할 기회는 많아졌지만, 전통적으로 팁 문화가 없었던 한국에서 서양의 팁 문화는 아직까지도 낯설기만 하다. 

경쟁력을 제고하고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세계 각국의 선진 문화를 벤치마킹하거다 들여오는 것을 두고 비난할 소비자들은 없다.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굳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문화를 도입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부에서는 팁 문화에 대해 ‘돈’이라는 물질로 전하는 ‘한국의 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물질로라도 대신해 챙겨주고 싶은 것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국은 팁 문화는 없지만 카드보다 현금을 많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잔돈을 받지 않기도 했고, 음식점 등에서 고생하는 직원에게 수고비를 주는 사람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게 종종 봐왔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챙김을 받는 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손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또 당연한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팁을 ‘소비자의 의무’로 치부하는 사회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만족감을 느끼는 서로 ‘윈-윈’하는 구조가 아닌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고착화된다면 오히려 팁을 주고도 욕을 먹는 부작용도 나타날 것이 뻔하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생각나는 지금이다. 팁은 주는 사람의 의무가 아니며, 받는 사람의 당연한 권리도 아니다.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았을 때 더 챙겨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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