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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계급화:韓 고질적 병폐→재능 인정해 학벌주의 청산

[공공story] 보이지 않는 신분전쟁

2023. 09. 11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한 13년 전 쯤 일로 기억해요. 저는 원래 일 할 때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날도 선후배들이 수다를 떠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선배 한 명이 저를 언급하며 지방대를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졸업한 대학이 서울의 한 대학 지방 캠퍼스라서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동기와 저를 비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솔직히 대학시절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고, 과수석도 여러번 했거든요. 지방 캠퍼스라는 점에서 대학생 시절에도 은근한 차별을 받아왔는데 같은 대학 서울 캠퍼스도 아닌 그냥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온 동기와 비교를 당해야 하는지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대학별 과마다 점수도 다르고 소위 ‘인서울’했다고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학생들도 많은데 말이죠. (여·40·서울 양천구)

<사진=뉴시스>

대학교 내 ‘신분 전쟁’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가 양교의 친선 도모를 위해 매년 개최하는 정기 행사 진행 과정에서 학교 내 캠퍼스 차별 논란이 불거진 것. 

세종시 조치원읍에 위치한 고려대 세종캠퍼스와 원주시 소재 연세대 미래캠퍼스를 두고 이른바 ‘조려대’, ‘원세대’ 등으로 비하하는 본교와 분교 간 차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해묵은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 고연전서 촉발..올해도 캠퍼스 차별 논란

대학 내 캠퍼스 혐오 논란은 지난 8~9일 치러진 고려대와 연세대의 대항전인 ‘고연전(연고전)’으로 촉발됐다. 매년 행사 때마다 시끄러운 문제로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일 고려대 세종캠퍼스 총학생회에 따르면, 총학생회장단은 고연전에 앞서 ‘우리는 입장객입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로부터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세종캠퍼스 총학생회장단은 대자보를 통해 “고려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가 ‘기여도’라는 비합리적인 기준으로 5월 입실렌티(고려대 축제) 준비부터 시작해 9월 정기 고연전 준비에 이르기까지 세종캠퍼스를 구조적으로 차별하고 있음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먼저 이들은 5월7일 회의 중 세종캠퍼스 학생을 ‘입장객’이라고 칭한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세종캠퍼스 총학생회는 “서울캠퍼스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은 입실렌티 좌석 배정 및 입장 순서에 관한 논의에서 세종캠퍼스 학우를 ‘입장객 ’이라고 표현했다”며 “세종캠퍼스를 ‘학우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내재된 발언”이라고 규탄했다.

또한 “정당한 근거 없이 ‘입실렌티 준비위원회 및 서울캠퍼스 중앙운영위원회에 기여도가 있으니, 서울캠퍼스가 우선권을 가지는 게 맞다’고 주장하며 세종캠퍼스 입장 순서를 후순위로 하기 위한 ‘차별의 근거를 찾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앙위원회 의장으로서, 고려대 서울캠퍼스를 대표하는 총학생회장으로서 차별을 조장하는 것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캠퍼스 총학생회에 따르면, 지난달 정기 고연전 좌석 배정을 위해 진행한 회의에서는 세종캠퍼스 대표자들의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 회의는 중앙운영위원회와 전혀 무관한 특수 회의로, 서울캠퍼스 측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회의 참석차 올라온 세종캠퍼스 대표자들의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야구 경기장 매수에 대해서도 ‘전례’를 기준으로 세종캠퍼스 재학생 비율보다 턱없이 적은 좌석을 배정했다고 꼬집었다. 세종캠퍼스 재학생들은 9000여명이지만, 야구장 좌석은 500석만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23 정기 고연전 개막식에서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23 정기 고연전 개막식에서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돈 걷을 때만 학우” vs “노력한 만큼 대우 당연”

대학 캠퍼스 차별·혐오 논란을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일부 누리꾼은 “돈 걷을 땐 학우, 혜택 줄 땐 다른 학교” “사회에서 차별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축제에서까지 차별할 이유가 있을까” “총학생회가 저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니. 저런 애들이 나중에 사회 나와서 갑질하며 민폐끼치는 것” “깨어있어야 할 학생이 더 차별적” 등 씁쓸함을 드러냈다.

반면 “입시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게 어불성설” “노력한 만큼 대우 받는 게 맞다” “원주 연세대 미래캠퍼스랑 따로 고연전 해라” 등 차별이 당연하다는 반응도 상당했다. 

대학 캠퍼스 차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됐다. 같은 재단 안에서 같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 

본교가 분교보다 우월한데, 재학생들이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본교 학생들은 ‘역차별’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본교와 분교 간 갈등의 골은 해소될 기미 없이 매년 어김없이 이슈가 되고 있다.   

실제 올해도 연세대 서울 신촌캠퍼스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최근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원주시에 있는 연세대 미래캠퍼스와 고려대 세종캠퍼스 재학생들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누리꾼 A씨는 지난 7일 자유게시판에 ‘원세대 조려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캠퍼스 재학생들에 대한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네가 정품되는 것 같지”라며 “너희는 그냥 짝퉁이야 저능아들”이라고 적었다. 

또한 고려재 재학생 및 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도 최근 ‘세종은 왜 멸시받으면서 꾸역꾸역 기차나 버스타고 서울 와서 고연전 참석하려 하나’라는 내용의 글이 게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올라온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총학생회단 대자보 일부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올라온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총학생회단 대자보 일부분.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상아탑의 역할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주의가 공고해진 모습. 한국교육개발원이 2021년 8~9월 전국 성인(만 19~75세) 남여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해 초 발표한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6.4%가 ‘학벌주의가 심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전년도(20.6%)보다 5.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면, ‘약화될 것’이라고 내다본 응답자는 전년도(16.5%) 대비 5.1%포인트 줄어든 11.4%로 조사됐다.  

또한 같은 기간 대학을 일류, 이류 등으로 분류하는 대학 서열화 변화에 대한 전망 역시 ‘심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23.7%에서 26.7%로 늘었다. ‘약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12.6%에서 11.3%로 줄었다. 

본교의 분교 학생을 향한 조롱과 갈등은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가 된 상황.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나 다름없다. 대학 서열화 캠퍼스 계급화는 지나치게 학벌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가 만든 병폐다.

시험 점수와 대학의 네임벨류가 사람의 노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맞지만,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에 수많은 문제점이 많았음에도 결과물로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옳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의 노력 외에도 여러가지 외부적 요인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까닭. 실제로 대학 입시 과정에서의 부정행위, 소위 힘 있는 사람의 개입 등 대중들은 뉴스를 통해 다양한 사건들을 접해왔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보다 대학이 좋고 더 나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뛰어난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 ‘나보다는 일을 잘 하겠지’ 등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높은 학벌에서 더 큰 능력을 기대하게 되고,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사람들 역시 그에 부응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능력이 타인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인성보다 오로지 경쟁에만 집착한 우리나라 교육은 결국 청소년들을 학습 기계로 전락시켰다. 결국 이런 청소년들에게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은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대학 서열화 문제도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학생들이 자신이 기울여 온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촉발된 것이나 다름없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이라는 관문은 당연하게 여기게 된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적당한 경쟁과 건전한 스트레스는 미래를 만들고 개개인을, 그리고 더 나아가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경쟁에 내몰린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가장 중요한 ‘올바른 인성’은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많다. 

지성인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이 ‘공부’만을 쫓으며 학벌주의에 찌든 젊은이들에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고, 차별과 계급화가 당연시 된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학벌이 좀 부족해도,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과 소질을 인정해주는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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