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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뜻깊은 생명나눔→활성화 위해 인식개선 먼저

[공공story] 가장 숭고한 선물

2023. 10. 23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즐겨보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바로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병원 시큐리티 ‘용현’은 아버지의 이혼 이후 30년 만에 만난 어머니가 의학적으로 치료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보호자 신분이었던 그는 망설임 끝에 어머니의 장기기증에 동의하게 됩니다. 용현이 자신의 이야기를 의사인 ‘익준’에게 털어놓는 장면에서 눈물을 쏟았는데요. 그는 장기기증 결정에 대해 “고민의 시간이 길었는데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마지막으로 아들의 역할을 하게 해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거라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죠. 제가 같은 상황에 놓였더라도 드라마 속 인물처럼 정말 깊이 고뇌했을 거 같아요. 가족을 잃은 극한의 슬픔 속에서도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해야 가능한 행동이잖아요. 누구나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장기기증을 결심한 이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우리 사회가 더 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야하지 않을까요. 생명을 살리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대단한 일이니까요. (여·39·경기도 김포시)

2016년 9월9일 서울 종로구 광통교 하부에서 열린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에서 한 시민이 생명의 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6년 9월9일 서울 종로구 광통교 하부에서 열린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에서 한 시민이 생명의 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기준 3시간에 1명이 장기기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 만큼 장기 이식이 ‘기적’이나 다름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5년 간 연도별 신규 장기 등 기증희망등록자는 총 38만6577명에 달했지만 실제 뇌사 기증자로 이어진 경우는 8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희망자 대비 낮은 실행률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도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 Donation after Circulatory Death)’, ‘추정적 동의(opt–out·옵트아웃)’ 등의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또한 장기 기증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예우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 3시간에 1명 장기기증 기다리다 사망

23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20대 김건혜씨는 지난달 7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간장, 양측 신장을 4명에게 기증하고 숨을 거뒀다.

김씨는 올해 8월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던 중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그는 해양경찰에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특히 김씨가 예식장과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던 예비 신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씨의 가족들은 그의 장기가 꼭 필요한, 좋은 사람에게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4일에는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20대 이휘영씨가 을지대학교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간장, 좌우 신장을 기증하고 3명의 생명을 살린 뒤 숨졌다.

그의 가족들은 이씨라면 삶의 끝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명예롭고 보람된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건혜씨와 이휘영씨의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숭고한 결정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들 덕에 총 7명이 새 삶을 얻었지만, 그러나 장기이식 대기자 중 이 같은 기회를 얻게 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중 실제 뇌사 기증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 까닭이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도별 신규 장기 등 기증희망등록자는 총 38만6577명에 달했지만 실제 뇌사 기증자로 이어진 경우는 8명에 불과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뇌사 기증자 수는 연도별 평균 약 445명이었다. 

그러나 이 중 본인이 생전에 기증 희망을 등록한 경우는 약 29명으로 6.6%에 불과했으며, 가족 등 보호자가 동의한 경우가 약 416명으로 93.4%에 달했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장미원에 위치한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 위로 쌓아올린 3층의 유기적 덩어리들은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인, 장기기증을 동의하고 결정한 가족, 그리고 그 나눔을 통해 생명을 이어받은 이식인을 의미한다.  <사진=공공뉴스DB>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장미원에 위치한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 위로 쌓아올린 3층의 유기적 덩어리들은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인, 장기기증을 동의하고 결정한 가족, 그리고 그 나눔을 통해 생명을 이어받은 이식인을 의미한다.  <사진=공공뉴스DB>

# ‘순환정지 후 기증(DCD)’에 쏠리는 관심

이와 관련해 서 의원은 “장기 등 기증희망등록을 해도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현저히 낮고, 실제 기증자 중에서는 기증희망등록을 통한 본인 의지보다 보호자가 기증을 결정한 비율이 월등히 더 높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뇌사 기증자 수와 장기 등 기증희망등록자 수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뇌사 기증자 수는 전년도 대비 7.5% 감소했으며, 지난해에도 8.4%가 감소한 것.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장기구득(求得) 기관 의료진의 의료기관 방문 및 보호자 면담 제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 의원은 “지난해 기준 3시간에 1명이 장기기증만을 기다리다가 사망하고 있을 정도로, 환자들에게 장기이식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 등 기증희망 등록을 하는 국민의 존엄한 결정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뇌사로만 한정하는 기증자의 범위를 혈액순환과 호흡기능이 종국적으로 정지된 순환정지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및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한국은 법적으로 ‘뇌사 장기기증(DBD, Donation after Brain Death)’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이식 대기자 수에 비에 뇌사 기증자 수가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자 국내에도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DCD는 심정지 등으로 혈액순환이 멈춰 사망한 환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는 방식을 의미한다. 

유럽에서 DCD는 2019년 기준 37개국 중 18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네덜란드,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에서는 전체 장기기증의 절반 가량을 DCD가 차지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 위치한 장기 기증자 기념관 전경.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이 마련돼 있다. <사진=United Network for Organ Sharing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 위치한 장기 기증자 기념관 전경.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이 마련돼 있다. <사진=United Network for Organ Sharing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그 무엇보다 무거운 생명의 가치

장기기증의 활성화를 위해 ‘추정적 동의(opt–out·옵트아웃)’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옵트아웃제는 생전에 명시적으로 장기기증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기증자로 보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명확히 밝힌 이들만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명시적 동의(opt-in·옵트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옵트아웃 제도는 본인의 결정권이 무시될 수 있고,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사회적 공론화가 전제돼야 한다. 

아울러 장기 기증자 및 유족에 대한 국가적 예우 역시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 위치해 있는 장기 기증자 기념관(National Donor Memorial)과 같이, 장기 기증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공간을 건립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국내의 경우,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장미원에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이 올해 4월 건립됐다. 

해당 공간은 뇌사 장기기증인의 생명나눔 정신을 기념하고, 유가족의 고귀한 뜻을 기억하고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서울시와 협력해 조성됐다. 다만, 이 공간에는 장기 기증자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는 않다.

장기기증은 한 사람의 결단으로 최대 9명(심장, 간, 신장 2개, 폐장 2개, 췌장, 각막 2개 기증 시)에게 새 생명을 선사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사상으로 인해 장기기증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는 장기 이식 대기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가장 숭고한 선물’을 준 장기 기증자 유족들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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