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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애환 담긴 소울푸드→편의점·간편식 명맥 유지

[공공story] 겨울의 추억

2023. 11. 27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고등학생 시절, 겨울철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김을 내뿜는 꼬치 어묵통 옆에서 부지런히 붕어빵을 구워내던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보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잔돈을 찾게 됐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학창시절의 붕어빵은 고달픔을 잊게 해주는 음식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도중 우연히 만난 선배가 뜨거운 붕어빵 봉투를 쥐어주던 기억도 납니다. 값싸고 맛있는,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기 좋았던 붕어빵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합니다. 길거리에서 붕어빵 노점을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냉동 제품을 사서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어도 되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맛’이 안 나는 거 같아요. 눈 내리던 겨울, 우연히 붕어빵 노점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따끈한 봉투를 받아 드는 감촉까지 함께 해야 진짜 붕어빵을 먹은 기분이 들텐데 말이에요. (여·35·서울시 마포구)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겨울 추위가 성큼 다가온 가운데 동절기 대표 간식인 붕어빵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오랜 세월 서민들의 허한 속을 달래준 붕어빵은 겨울 풍경 속 늘 자리한 정겨운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고물가 기조로 인해 팥, 식용유 등 붕어빵 원재료 값이 치솟으며 마진률이 낮아지자 길거리 붕어빵 가게들이 자취를 감추는 상황. 소비자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편의점 제품, 냉동 간편식 등의 대안을 찾고 있다. 

붕어빵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간식이 아닌 주린 배를 채워주는 ‘구원의 먹거리’였다. 또, 초기 투자 자본이 적은 붕어빵 장사는 실업자들에게 삶의 고비를 견디게 해준 ‘동아줄’이기도 했다.

늘 새로운 디저트 트렌드를 좇는 한국인들이 꾸준히 붕어빵을 찾는 이유는 고된 삶을 달래주던 ‘겨울의 추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고물가에 사라지는 붕어빵 노점

2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등에 따르면 붉은 팥, 밀가루, 식용유 등 붕어빵 원재료 가격은 몇 년 새 급격히 상승했다.

aT 농산물유통정보의 붉은 팥(수입) 도매가격은 이달 24일 기준 40kg당 27만4600원으로 평년 평균 가격인 21만5247원보다 27.6% 가량 올랐다. 

밀가루 가격은 전년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그래도 2년 전보다 36.5%나 높다. 식용유 가격 역시 2년 전 대비 47.9%나 상승했다. 붕어빵을 굽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오른 것은 물론이다.  

상인들은 이 같은 물가 상승의 여파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서 15년 째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상인은 “팥 같은 재룟값이 거의 50~60% 올랐다”며 “그래서 붕어빵 장사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매번 계산할 때마다 재룟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놀란다. 작년에는 붕어빵 2개를 1000원에 팔았는데 올해는 3개 2000원으로 가격을 올렸다”며 “그래도 여긴 동네 장사라서 싸게 파는 편이다. 명동에 가면 한 마리를 1000원에 판다”고 덧붙였다.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마진률이 하락하며 붕어빵을 판매하는 노점상은 몇 년 새 찾기 힘들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 역시 붕어빵 노점상이 사라지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붕어빵 등을 판매하는 거리가게(노점)는 2018년 6669개에서 2021년 5762개, 지난해 상반기 5684개로 지속 감소했다. 

이 처럼 붕어빵을 판매하는 노점 수가 줄자, ‘붕세권(붕어빵+세력권, 붕어빵 가게가 인근에 있는 지역)’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붕어빵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늘면서 인근의 붕어빵 노점 위치를 알려주는 전용 애플리케이션도 나왔다. ‘가슴속3천원’ 앱과 ‘붕세권’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각각 10만회 이상이다. 

지난 25일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붕어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는 시민들. <사진=공공뉴스DB> 
지난 25일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붕어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는 시민들. <사진=공공뉴스DB> 

# 붕어빵 노점 대신하는 편의점·간편식

점차 사라지고 있는 붕어빵 노점의 자리는 편의점이 대신하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는 9월 즉석붕어빵을 선보인데 이어 이달 초 즉석슈크림붕어빵을 출시했다. 

GS25는 이달 한 달간 즉석붕어빵은 1200원에서 1000원, 즉석슈크림붕어빵은 900원에서 800원으로 판매했다. 올해 7월 소비자 6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들이 동절기에 선호하는 간식 1위가 붕어빵(44%)이었다는 설명이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 역시 이달 단팥·슈크림 즉석 붕어빵을 출시했다. 미니사이즈 붕어빵으로 개당 900원이며, 출시 기념으로 내달 11일까지 2+1 행사를 진행한다. 

세븐일레븐도 2021년 초부터 일부 점포에서 ‘세븐일레븐 붕어빵’이란 뜻의 ‘세붕빵’을 출시해 판매를 이어오고 있다. 

붕어빵을 집에서 직접 조리할 수 있는 간편식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컬리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 간 마켓컬리에서 판매된 붕어빵은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2019년 말부터 판매되고 있는 ‘컬리 온리’ 밀클레버 미니 붕어빵은 후기만 12만건에 달하는 ‘마켓컬리 대표 디저트’ 제품이 됐다. 냉동 배송된 제품을 에어프라이어에서 5분 간만 조리하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붕어빵을 즐길 수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도 붕어빵 판매에 나섰다. 메가MGC커피는 팥·슈크림 붕어빵과 앙버터 호두과자, 미니호떡으로 꾸려진 ‘따끈따끈 간식꾸러미’를 판매한다. 

투썸플레이스는 이달 15일부터 내달 7일까지 투썸하트 앱에서 스페셜 스탬프 4개를 포함해 총 15개의 스탬프를 완성하면 집에서도 쉽게 붕어빵을 만들 수 있는 ‘마이 윈터 붕어빵 메이커’를 선착순으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사진=공공뉴스DB> 
<사진=공공뉴스DB> 

# 겨울철 기억 속 붕어빵의 자리

한국의 식문화 트렌드는 빠른 속도로 바뀐다. 슈니발렌부터 마카롱, 약과, 최근엔 탕후루까지 매년 유행하는 디저트가 달라진다. 관련 매장도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겨울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의 관심은 어김없이 붕어빵, 호떡과 같은 전통적인 동절기 간식으로 쏠린다. 

전 세계의 다양한 간식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붕어빵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일 터.

밤 늦게 퇴근하신 아버지가 품속에서 꺼낸 붕어빵, 하굣길에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사먹었던 붕어빵, 눈 내리던 날 연인과 함께 나눠먹었던 붕어빵 등 겨울철 기억 곳곳에는 늘 붕어빵이 존재한다.

산업개발 시대의 붕어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주린 배를 채워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윤덕노 작가는 책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에서 1960~70년대 공장 노동자들이 밥 대신 붕어빵으로 끼니를 때웠던 일화를 소개했다. 

저자에게 붕어빵은 ‘동전 한닢으로 따듯하게 허기진 속을 달랠 수 있었던 구원의 먹거리’였다.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수 많은 실업자들이 초기 투자 자본이 적은 붕어빵 장사에 많이 뛰어들기도 했다. 그들에게 붕어빵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밥줄’이자 삶의 고비를 견디게 해준 ‘동앗줄’이었다.

이처럼 서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담긴 ‘소울 푸드’ 붕어빵은 편의점 간식으로, 간편식으로 그 모습을 바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마주친 노점에서 상인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붕어빵 봉지를 건네 받던 기억까진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힘겨운 고물가 시대를 버텨내는 서민들에게 온기를 안겨줄 붕어빵 노점이 이번 겨울에는 더 자주 눈에 띄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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