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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콘텐츠:도파민 중독 야기→거리두기 연습 필요

[공공story] 즐거운 족쇄

2023. 12. 11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요즘 저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습니다. 자기 전에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를 몇 시간 동안 보는 습관이에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 화려한 여행지, ‘빵 터지는’ 유머 영상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죠. 스크롤을 넘기며 1분 미만의 짧은 영상들을 끊임없이 시청하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긴 시각이 돼 있더군요. 새벽 1시가 넘어서 잠든 뒤 다음 날 아침 후회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괴감도 커지는 거 같아요. 문제는 또 있어요. 이런 숏폼 콘텐츠를 자주 보니 운동이나 명상, 책읽기 등의 활동에는 전보다 흥미가 떨어지게 됐다는 거에요. 친구들은 이런 저를 “도파민 중독자”라고 놀리곤 하는데요. 제 행동은 정말 ‘중독’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거 같아요. 새해에는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싶어요. 인생에는 스마트폰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으니까요. (여·27·서울시 서대문구)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최근 유행하는 단어로 ‘도파민’을 꼽을 수 있다. 도파민은 우리가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경험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비할 때 “도파민이 폭발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며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콘텐츠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인 숏폼(short form)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을 시청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숏폼 콘텐츠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 같은 콘텐츠의 소비가 늘며 우리가 즉각적인 보상에 익숙해지고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데 있다. 이는 현실세계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숏폼 영상을 ‘디지털 마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 ‘도파민 뿜뿜’ 숏폼의 유행

11일 빅데이터 분석 업체인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에 따르면, SNS에서 ‘도파민’에 대한 관심은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엑스(X·구 트위터),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서 2020년 11월 기준 2200건 언급되던 ‘도파민’이 올해 10월에는 6만6122건 언급된 것. 3년 만에 30배 상승한 수치다. 

대뇌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은 쾌감과 즐거움 등에 관련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될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도파민은 ‘행복 호르몬’으로도 불리는데, 최근 기술의 발달로 도파민 욕구를 더 쉽게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이 됨으로써 이를 활용한 표현이 유행하게 됐다. 

재밌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한 뒤 “도파민 터진다”라고 말하거나,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인 숏폼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아보는 이들에게 ‘도파민 중독자’라고 칭하는 식이다. 

연예 기사 제목에도 “도파민에 절여진 ‘나는 솔로’…파국의 16기→17기는 어쩌려고” “‘마이 데몬’ 송강X김유정, 로맨스 도파민 충전”과 같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됐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코리아 2024’는 내년 소비트렌드 키워드로 ‘도파밍’을 꼽았다.

도파밍은 도파민과 파밍(farming·게임에서 아이템을 모으는 행위)을 결합한 단어다.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도파민이 분출되는 행동이라면 뭐든 시도하는 노력을 뜻한다. 

저자는 요즘 사람들이 단지 도파민을 좇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재미없는 순간을 단 1초도 견디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 처럼 재미와 한시도 떨어지길 원하지 않는 소비 행태를 ‘도파밍 트렌드’라고 지칭한다.

도파민과 떼어놓을 수 없는 현상이 있으니, 바로 숏폼 영상 콘텐츠의 유행이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 즉각적인 재미를 주는 짧은 콘텐츠를 몇 시간씩 소비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이를 ‘도파민 중독’이라고 부르게 된 것.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숏폼, ‘디지털 마약’으로 불리는 이유

숏폼은 짧은 시간 내에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영상을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구조다. 또, 알고리즘에 의해 내가 선호하는 콘텐츠가 연이어 등장해 지속적인 시청을 유도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숏폼 콘텐츠를 몇 시간씩 소비하느라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는다고 호소하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숏폼 영상 이용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광고 전문 기업 ‘인크로스’는 올해 9월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의 만15세~6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광고 이용 행태를 조사한 ‘2023 아이엠 리포트’를 지난달 발표했다.

해당 리포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89.5%가 숏폼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대비 8.4%p 증가한 수치다.

타 연령대에 비해 20대가 유튜브 쇼츠를 선호하는 편이었으며, 인스타그램 릴스는 어릴수록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인크로스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효율)’가 새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짧은 시간을 활용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숏폼 콘텐츠 이용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이 숏폼 시청에 할애하는 시간은 이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청 시간을 뛰어넘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이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 5120만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 올해 8월 기준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의 1인당 월평균 사용시간은 46시간29분이었다.

같은 기간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OTT 플랫폼의 1인당 월평균 사용시간은 9시간14분에 머물렀다. OTT 대비 숏폼의 월평균 사용시간이 5배 가량 많은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숏폼 시청 시간이 도를 넘어서는 경우다. 한 번 시청하기 시작하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눈을 떼기 힘들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숏폼을 ‘디지털 마약’으로 부르기도 한다.

책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의 저자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에서 “(틱톡, 릴스 등의 숏폼 영상은) 사람이 더 빠르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합성 마약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연환경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자극을 아주 짧은 시간에 주는 것”이라며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것들에 집중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고, 불필요한 곳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는 지난 9월 숏폼과 OTT 플랫폼의 사용시간을 비교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제공=와이즈앱·리테일·굿즈>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는 지난 9월 숏폼과 OTT 플랫폼의 사용시간을 비교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제공=와이즈앱·리테일·굿즈>

# 새해엔 도파민과의 거리두기를

숏폼 콘텐츠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팝콘 브레인’을 들 수 있다. 팝콘 브레인은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반복적으로 추구하며 전자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극적인 영상을 볼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 같은 자극은 내성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며 결국 ‘팝콘 브레인’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팝콘 브레인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현실 세계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고, 팝콘이 터지듯 빠르고 강한 정보에만 뇌가 반응하게 된다. 이는 집중력 저하와 함께 문해력 부족 현상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숏폼 콘텐츠 시청은 걱정을 즉각적으로 잊게 해주고 들이는 노력에 대비해 큰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그러나 우리를 그 외의 자극에는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은 법이다.

2024년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올해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꿈꾼다.

새해 목표에 ‘도파민 디톡스’를 추가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에 1시간 만이라도 디지털 기기에 손대지 않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 등 영상 콘텐츠 시청 외의 활동에 몰두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같은 활동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 않기에 지루하다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쾌락을 얻기 쉬워진 시대. 즐거움이란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파민과의 ‘거리두기’ 연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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