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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다” 반복되는 간병 살인..중증장애 아들 40년 돌본 父 구속기소 시민단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문제..정부·국회 적극 입법 나서야”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尹정부 국정과제 추진..건보 재정 고갈 우려

[공공돋보기] 가족 돌봄의 무게

2024. 01. 12 by 김소영 기자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부모나 배우자, 자녀를 간병하던 보호자가 기약 없는 돌봄에 지쳐 돌보던 사람을 살해하는 이른바 ‘간병 살인’ 비극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1인 가구 급증과 가족 기능 축소 등 사회인구 구조도 변화하면서 ‘간병의 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간병지옥’이라고 부를 정도록 아픈 가족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환자와 간병인 모두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눈에 띄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중증장애 아들 40년 돌본 父..끝내 ‘간병 살인’ 비극

최근 40년간 보살펴온 중증 장애인 아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아버지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일 검찰 등에 따르면, 대구지검 형사2부(부장 김성원)는 지난 5일 살인 혐의로 60대 남성 A씨를 구속기소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24일 대구 남구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1급 뇌병변장애가 있는 아들 B씨(39)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범행 후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온 가족에게 발견된 부자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A씨는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회복했다. 아들 B씨는 끝내 숨졌다. 

B씨는 태어날 때부터 1급 뇌 병변 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아들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함께 생활하며 식사, 목욕 등 간병을 도맡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최근 B씨를 돌보는 것을 힘들어한 점 등이 범행 동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현재 가족들은 A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유족에게 장례비 지원 등 피해자 지원 조치를 할 예정”이라며 “간병 살인에 이르게 된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 감정에 부합하는 처분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구지역 시민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인구 고령화와 가족 규모 축소, 그리고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가족 돌봄 기능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돌봄 문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 문제지만, 그러나 실효성 있는 개선책은 여전히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이하 복지연합)은 9일 성명을 내고 “반복되고 있는 가족돌봄 살인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비상하게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연합은 “정부는 2015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법제화했지만, 급성기병상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요양병원은 현재 그 대상도 아니다”라며 “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서비스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건강보험 간병급여 도입, 중증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의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등 보편적이면서도 특성에 맞는 맞춤형 공공책임돌봄시스템 로드맵을 하루빨리 설계하고 구축해야 한다”면서 “현행 사회복지전달체계에서는 이러한 돌봄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생명을 해하는 것은 범죄임에 틀림없다”면서도 “그러나 한 개인, 가족이 떠안기에는 너무도 지독한 상황인 것이 현실이며,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방관한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 권세가들의 특권으로 작용한다는 논란도 적지 않았던 형법 제53조 따른 ‘작량감경’을 이처럼 정말 필요한 사건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가족과 사회의 선처 요구에 응답하길 바란다”고 검찰과 재판부에 요구했다. 

복지연합은 “현행 제도에서 중·장기적인 가족돌봄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메디컬푸어로 추락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라며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불안을 언제까지 안고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 사회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이 같은 비극적 사건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 입법화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와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도 성명을 통해 “이들이 죽음을 시도하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인가 의문스럽다”며 현실을 개탄했다.

이들은 “40년간 돌봄을 해오던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만이 중증 장애자녀 돌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어야 하는 현실에 우리는 다시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아울러 “돌봄의 부담으로 자녀를 살해한 후 본인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들은 전국 각지에서 매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대구시에 중증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지원체계 확충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간병비 걱정없는 나라’ 당·정 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재옥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간병비 걱정없는 나라’ 당·정 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인이 짊어진 ‘간병의 짐’..사회가 함께 책임질 문제

간병인이 피간병인을 살해하는 사건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된지 오래다. 아픈 가족을 간병하다 경제적·심리적 압박과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이들이 끝내 극단적이 방법으로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려고 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평균 수명이 늘고,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간병을 받아야 하는 인구는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과 1인 가구 비중이 증가하면서 간병을 맡을 가족 구성원은 줄어들고 있다. 간병인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 지출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간병의 짐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일부 노인들은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간병비 대책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간병 부담은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관계부처에 조속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여당은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요양병원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정부는 2015년부터 사적 간병비 부담을 완화를 위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오는 7월부터는 국비를 재원으로 하는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 재정 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간병비 규모는 2014년 6조8000억원에서 2018년 8조원으로 급증했다.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있고, 현재 고령화로 인한 간병 수요 증가를 고려했을 때 간병비 지출은 연 10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

일부에서는 국민 의료비 부담 경감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건보 재정이 이미 휘청대는 가운데 이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개인이 힘겨운 ‘간병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알맹이가 없는 희망고문이 아닌 우리 사회에 실효성 있는 법과 제도가 하루 빨리 뿌리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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