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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혈액 보릿고개 반복→작은 용기로 전하는 큰 사랑

[공공story] 값진 3초의 찡그림

2024. 01. 22 by 김수연 기자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하고 있어요. 첫 헌혈은 고등학생 때였는데, 학교에 헌혈버스가 와서 호기심에 갔다가 헌혈을 하게 됐죠. 그때 같이 간 친구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헌혈을 못하고 밖에서 저를 기다렸어요. 그때 약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에 선택 받았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헌혈을 하게 됐죠.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런 익숙한 행동들이 이제는 습관이 됐어요. 예전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6개월 쯤 헌혈을 쉰 적이 있는데 지인들에게 ‘헌혈 금단현상’이 온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죠. 헌혈을 수백회 하신 분들과 비교하면 제 헌혈 횟수는 적지만, 그래도 그 작은 실천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고 계속해서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여·41·서울 구로구)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의사나 간호사, 소방관, 경찰관 등 우리 사회에는 사람을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기 위해 어려운 의학 공부를 하거나,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힘든 훈련을 꾸준히 받으며 몸을 단련시킨다. 

이처럼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고 타인을 돕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혀 관련 없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헌혈’이다. 

# 헌혈 영웅들의 특별한 정년식

22일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에 따르면, 지난 10일 헌혈의집 한라센터에서는 제주도민 김광선씨(69)가 올해 ‘헌혈 정년’을 맞아 생애 마지막 헌혈을 했다. 

헌혈은 만 64세까지 가능하다. 단, 만 60~64세에 헌혈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만 69세까지 헌혈을 할 수 있다.

김씨의 첫 헌혈은 25년 전이다. 당시 회사 동료의 가족에게 급히 혈액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측이 초청한 헌혈 버스에서 처음 헌혈을 한 것을 계기로, 헌혈 정년까지 그의 헌혈 횟수는 총 437번에 달한다. 

김 씨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나의 헌혈이 환자들에게 사랑으로 전달되길 바란다”면서 “도민들이 헌혈 동참을 통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건강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남혈액원에서도 17일 특별한 정년식이 열렸다. 2003년 8월 처음으로 헌혈에 동참한 도태준씨(69)는 이날까지 약 20년 동안 총 248번의 헌혈을 했다. 

도씨는 “생애 마지막 헌혈을 하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참여할 수 없어 아쉬움도 크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헌혈을 통해 정기적인 건강 체크도 하고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람된 일에 뿌듯함을 느낀다. 더 많은 사람이 헌혈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헌혈 정년식은 매년 전국 곳곳에서 치러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4년 처음으로 헌혈 정년식이 열렸으며, 영광의 첫 주인공은 부산에서 탄생했다. 

2004년 12월2일 당시 65세였던 ‘헌혈왕’ 이영건씨는 부산지하철 서면역 만남의 광장에서 시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헌혈 정년식을 가졌다. 그는 1962년 3월 첫 헌혈을 시작으로 143회 헌혈을 했다. 비공식 헌혈까지 더하면 모두 180여회에 이른다.

부산의 또 다른 헌혈왕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1977년부터 45년간 513회 헌혈을 한 신문종씨는 지난해 국무총리표창을 받기도 했다. 신씨는 70세 생일을 앞두고 2021년 10월 마지막 헌혈을 마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2월16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신씨 등 5명과 1개 단체에 ‘제12기 국민추천포상’을 수여했다. 국민추천포상은 우리사회에 묵묵히 헌신한 숨은 공로자들을 국민이 추천하면 정부가 심사를 거쳐 포상하는 제도다. 

고등학생때부터 40년 넘게 생명 살리는 실천을 이어가고 있는 최문희씨는 현재까지 760회 이상 헌혈을 하며 전국 최다 기록을 달성 중이다. 최씨의 나이는 올해 63세다. 

1979년부터 2주에 한 번씩 헌혈을 했다는 최씨는 헌혈증서 대부분은 한국백혈병 소아암협회 등에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6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에서 관계자가 혈액 보유 현황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16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에서 관계자가 혈액 보유 현황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5일이면 동난다..또 혈액 보릿고개

동절기는 흔히 ‘혈액 보릿고개’라고 한다.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는 까닭에 혈액 수급 부족 현상이 매년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22일 0시 기준 혈액보유량은 5.2일분이다.

혈액보유량은 의료기관 공급 가능한 재고분과 검사 대기 혈액 재고분을 1일 소요량으로 계산한 것으로, ▲관심(5일분 미만) ▲주의(3일분 미만) ▲경계(2일분 미만) ▲심각(1일분 미만) 단계로 관리된다. 

혈액형별로는 A형 4.1일, B형 7.8일, O형 4.0일, AB형 5.2일분을 보유 중이다. 

올해 들어 21일까지 전국에서는 총 13만7913명이 헌혈에 동참했다. 성별로는 남성 10만4427, 여성 3만3486명이다. 

연령별로 ▲60세 이상 2866 ▲50~59세 1만4399▲16~19세 1만7826 ▲30~39세 2만2932 ▲40~49세 2만3672 ▲20~29세 5만6218 등 순으로 많았다. 

보통 헌혈은 10~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10대 헌혈자는 줄어들고 있는 실정. 

이는 2024학년도부터 적용된 대학 입시 제도 개편 영향이라는 게 중론이다. 교육부가 2019년 말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서 올해 대입부터 봉사활동 등 모든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헌혈을 하면 대입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봉사활동 점수가 주어져 헌혈 참여 빈도가 많았지만, 실적 인정이 되지 않으면서 10대들 사이에서 헌혈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국가통계포털 혈액정보통계에 따르면, 16~19세의 헌혈 건수는 2022년 46만2186건으로 전년(54만4176건) 대비 15% 이상 감소했다. 이 기간 헌혈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구성비도 20.9%에서 17.4%로 줄어들었다. 

또한 2022년에는 40대 헌혈자는 46만3883명(17.5%)으로 10대를 추월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생명을 살리는 3초의 미학

헌혈은 생명을 나누는 행위이며, 혈액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사람들이 헌혈을 통해 제공하는 혈액은 사고나 질병 등으로 혈액이 필요한 이들에게 삶을 돌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헌혈을 하는 사람은 혈액 채취 전 건강 검사를 통해 현재의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또 헌혈 이후에는 새로운 혈액을 생성하는 과정을 통해 몸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혈액 내 존재하는 노폐물이나 독성 물질도 제거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만 아니면 돼’ 식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헌혈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나눔 실천이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굳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물론 헌혈은 개인의 자유로운 봉사이며, 강요할 수 없다. 헌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을 대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자신이나 가족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 소중한 행위에 대한 가치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인간 누구에게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도움을 받기 전 먼저 도움을 주는 이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 돕고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3초의 찡그림’으로 누군가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게 할 수 있는 작지만 값진 이 행동은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누군가를 위해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닌 ‘나만 도와주면 돼’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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