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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50인 미만 기업 확대→노동자 안전 절실

[공공story] 집으로 오는 길

2024. 02. 04 by 김수연·정혜경 기자

공공뉴스=김수연·정혜경 기자 # 제 남편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합니다. 판넬로 슬라브를 설치하는 등의 작업이라고 들었습니다. 3년 전 개인 사업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폐업하고 건설업에 도전한 남편은 몸이 고되지만 보람도 크다며 애써 웃어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이 아침에 먼저 출근할 때마다 늘 불안합니다. 항상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오늘도 남편이 부상 없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얼마 전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에 따라 사업주들이 예전보다 더 안전에 신경을 쓸 거고, 제 남편이 사고를 당할 가능성도 줄어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무사히 퇴근하세요”라는 배웅 인사를 하게 됩니다. (여·49·대구 동구)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된 지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이 짧은 기간 동안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가 3건이나 발생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확대를 놓고 여아 간, 경영계와 노동계 간 충돌이 불거졌다. 중소기업인들은 “현장에서 차라리 폐업하고 말겠단 절규가 터져 나온다”며 확대 적용 유예를 거듭 촉구했지만, 노동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터의 죽음을 국회가 방치해선 안 된다며 강하게 맞섰다. 

국회에서는 현재도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놓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 중처법 확대 후 발생한 사망 재해 총 3건

4일 고용노동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부터 확대 적용된 이후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 재해가 3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부산 소재 폐알루미늄 처리업체에서 3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했으며, 같은 날 강원에서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던 40대 노동자가 추락사로 숨졌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경기 포천의 한 기업에서 50대 남성이 철제 코일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천장 주행 크레인으로 2톤이 넘는 코일을 이동시키는 작업 도중 중 코일이 낙하하면서 발생했다. 사고 발생기업은 상시근로자 수가 약 25명인 금속제조업체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사고 다음날인 2일 현장을 찾아 사고 즉시 천장 주행 크레인 사용작업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했는지 확인하고 현장 수습 상황을 면밀히 점검했다.

이 차관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이후 연이어 50인 미만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이번 사고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신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또한 고용부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도록 법 내용을 적극 안내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를 통해 누구나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 확보 의무 등을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이다.

중대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재해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 법은 지난 2022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 데 이어 지난달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촉구’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촉구’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여야 합의 불발..1월27일부터 전격 확대 

그간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을 추가로 2년 더 미루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결국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확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23일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에 대한 여당과의 논의 시작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3가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부의 공식 사과 및 고의적 해태에 대한 조사 후 관련자 문책 ▲법안 2년 유예 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등을 포함해 향후 2년 간 산업현장 안전을 위한 구체적 계획 및 재정지원 방안 제시 ▲2년 유예 적용 시, 2년 후 중대재해처벌법을 모든 기업에 적용하겠다는 경제단체의 확실한 약속을 가져올 것 등이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여야는 수차례 협의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열린 1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도 여야 합의는 불발됐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유예할 수 있는 마지막 본회의였다.

이에 따라 같은 달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상시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을 받게 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수가 5명이 넘는 음식점, 제과점, 카페, 숙박업 등 개인 사업주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다. 

또한 상시근로자 수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상시근로자 수 산정방식을 준용한다. 기간제, 단시간 등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모든 근로자가 해당되는 것. 

배달라이더의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일하는 경우엔 포함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인 경우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생도 상시근로자 수에 포함된다. 

상시 근로자수가 5∼49인 기업이라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전담조직 설치 의무는 없고, 안전보건관리자를 둘 필요도 없다. 일부 규모와 업종(20∼49인 제조업, 임업, 하수·환경·폐기업)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두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되자 중소기업 기업인들로부터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중소기업 대표, 영세 건설업자 3500여명은 같은 달 31일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모여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유예를 촉구했다.

이 같이 대규모의 중소기업인들이 국회에 모인 것은 중소기업중앙회 62년 역사 상 처음이라는 게 중기중앙회의 설명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코로나19에 이은 복합경제위기로 중소 제조·건설업체의 80% 이상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준비하지 못했고, 소상공인들은 자신들이 법 적용 대상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감옥에 갈 위험을 안고 사업하느니 차라리 폐업하고 말겠다는 절규가 터져 나온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법안 유예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법안 유예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

# 가슴 아픈 출근길 인사, 반드시 바뀌어야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달 1일 논평을 통해 “이미 긴 시간 50인(억) 미만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이제야 사업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법 개악 시도가 무산됐지만 정부와 국민의힘, 자본 권력은 법을 후퇴시키기 위한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며 “민주노총은 이후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악 시도를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역시 같은 날 기자회견을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우여곡절 끝에 시행됐지만, 그러나 시행 일주일 채 안 된 법을 사용자 단체의 떼쓰기에 놀아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재유예를 추진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은 수십년 간 일터에서 죽고 다치고 병들어간 노동자의 피 값으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특히 작은 사업장에서 떨어져 죽고 치여 죽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해가 반복되고 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을 국회가 방치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는 있지만 마음 한 켠에 자리한 불안감을 억누른 채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달라”며 무거운 마음을 애써 누른 채 내 남편을, 내 아빠를 불안한 일터로 보냈고 또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이상 내 가족의 가슴 아픈 출근길 인사가 이어지지 않기 위해선 법·제도의 보다 강력한 강제성과 함께 무엇보다 기업·노동자들의 자성이 너무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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