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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국민목숨 담보 정치쇼?→소통·조정 시급

[공공story] 슬픈 히포크라테스 선서

2024. 02. 26 by 정혜경·김소영 기자

공공뉴스=정혜경·김소영 기자 # 최근 난소에 혹이 발견돼서 소위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한 달 전 수술을 예약하고 입원을 준비하던 와중에 병원으로부터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라는군요. 수술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수술 연기 통보를 받으니 너무 당황스럽네요. 간병 문제로 회사에 다니는 아들도 이미 스케쥴을 맞춰놓은 상태이구요. 뉴스나 개인 유튜브(YouTube)를  날마다 보는데 수술이 시급한 젊은 암환자들이 저처럼 수술을 앞두고  무기한 연기되거나, 긴급하고 절박한 환자를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등 끔찍한 소식들이 보이니 남일 같지 않고 너무 두렵습니다. 그래도 아픈 환자들인데.. 도대체  왜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요. 나는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나요? (여·64·경기도 화성시)

지난 20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존슨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존슨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의료현장의 혼란이 점차 가중되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의료계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놓고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 이들 갈등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미 수술날짜를 받아놓은 환자들의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는가 하면, 다급한 응급환자들까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길거리에서 홀로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이는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사태가 길어지면 남은 의료진의 피로가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국민의 불편과 불안은 커져가고 있다.

# 전공의 집단행동에 커지는 현장 혼란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80.5%에 달하는 1만34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사직서 제출자 중 실제로 사직이 수리된 사람은 없으며, 소속 전공의의 72.3%인 9006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전국 221개 병원에서 수련하는 의사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여러 진료과목을 순환하는 인턴(1년), 특정 진료과목을 정해 수련하는 레지던트(3~4년) 과정을 거친다. 

전공의들은 응급실 당직, 수술 보조 등 병원의 ‘손과 발’ 역할을 한다. 전공의 파업 본격화에 따라 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국의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이달 19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세브란스병원 전공의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도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SNS를 통해 “현장 따윈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의 꿈,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며 “저는 돌아갈 생각 없다”고 각을 세웠다.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이 며칠 째 계속되며 의료 현장의 혼란도 이어졌다. 대형 수련병원에서의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자 주말 새 경증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2차 병원으로 몰렸다.

복지부가 19일부터 운영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수술 지연 등 피해 상담 사례는 닷새 간 누적 227건을 기록했다.

정부는 의료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진료대책 시행에 나섰다. 보건의료 위기단계를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의사 집단행동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 것.

또한 정부는 서울의료원 등 전국 공공병원 97곳의 평일 진료시간을 연장하고, 주말 및 휴일 진료도 실시하기로 했다. 필수의료가 지연되는 대형병원에는 군의관과 공보의를 투입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12개 군병원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24시간 개방하고 진료근무자를 편성해 응급환자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사가운을 입은 전공의들이 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사가운을 입은 전공의들이 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정부-의료계, 의대 증원 놓고 정면대치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는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급격한 고령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의대 증원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의료 이용량이 높은 고령층이 증가하고, 의사도 고령화되기 때문에 현재의 인력으로는 증가하는 의료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비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연) 2000명 증원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를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한국의 출산률 감소로 인해 의사 인력 공급이 과잉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같은 날 밤 MBC 100분 토론에서 “지난 10년 간 대한민국 의사 숫자의 변화를 보면,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의사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다”며 “(의대 정원을) 그냥 둬도 출생아 수가 급격히 감소해서 의사 수 증가폭이 40~50%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주말에도 한 치의 양보 없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주요 국립대학 교수들의 연합체인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책임 있는 의료단체와 공식적인 대화를 즉시 시작하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원칙을 완화해 현실을 고려한 증원 정책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또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같은 날 오후 2시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 회의’를 진행한 뒤 의대 증원 백지화 등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한 가두 행진을 이어갔다. 

이처럼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결국 칼을 빼들었다. 복지부는 전공의들이 오는 29일까지 복귀할 경우 최대한 정상을 참작하기로 했지만, 그러나 3월부터는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3월부터는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수사, 기소 등 사법절차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이어 “면허정지 처분은 그 사유가 기록에 남아 해외취업 등 이후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25일 ‘의대 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를 마치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행진해 온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 의사 대표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5일 ‘의대 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를 마치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행진해 온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 의사 대표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강 대 강 치킨게임 멈춰야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극단적 게임이론)’ 양상도 심화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광진경찰서는 최근 전공의 A씨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대상으로 낸 협박 및 업무방해 혐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서울 모 대학병원 4년차 전공의 A씨는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 추진이 협상하는 태도가 아니라 의사들을 협박하는 행위”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선동과 가짜뉴스도 확산하며 현 사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의사·의대생이 이용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병원 나오는 전공의들 필독’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인계장 바탕화면, 의국 공용 폴더에서 (자료를) 지우고 세트오더(필수처방약을 처방하기 쉽게 묶어놓은 세트)도 다 이상하게 바꿔 버리고 나오라”라며 “삭제 시 복구 가능한 병원도 있다고 하니 제멋대로 바꾸는 게 가장 좋다”고 적었다. 이에 강남경찰서는 커뮤니티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글 작성자 IP 추적에 착수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상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으며 총선을 앞둔 정치권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말로 해도 될 일에 주먹 쓰지 말자”며 “의사와 정부는 파업과 강경대응을 중단하고 즉각 대화에 나서도록 촉구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일부러 2000명 증원을 들이밀며 파업 등 과격반응을 유도한 후 이를 진압하며 애초 목표인 500명 전후로 타협하는 정치쇼로 총선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시중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길어지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속 보건의료 시스템의 붕괴 위기는 이미 현실화가 되고 있고,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실정. 환자나 보호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양측의 날선 공방이 끝나기를 기약없이 기다리는 것 뿐이다. 

촌각을 다투는 의료 최전선에서 의사들의 고생과 헌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실제 극한 상황에서 진정한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사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감사함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의대생들은 졸업식에서 의사의 윤리강령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을 낭독한다.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 생명이 담보가 되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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