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신당 창당 안 한다”
주호영 “당 혁신 적극 추구..빠른 시간 안에 정상 지도체제”
고민정 “반명(反이재명) 아니지만 비명(非) 부인하지 않아”

[공공뉴스=장원윤 기자] 정치인들의 언어는 솔직하지 못하다. 부드러운 단어 속에 매우 강한 의지를 심는가 하면 격렬한 반대의 언어 이면에 타협의 여지를 남겨 놓기도 한다. 그래서 ‘행간’을 읽는 게 중요하다. ‘장원윤의 행간읽기’를 통해 모순되고 중첩된 정치 언어 속에 스며들어 있는 진짜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한다.<편집자 註>

11일 여당 비대위 정국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당은 당권레이스 중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각자의 셈법에 따라 모호한 어법을 구사합니다. 첫 번째 행간읽기에서는 여당 이준석 전 대표와 주호영 비대위원장, 야당 고민정 의원의 속내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이준석 전 대표 “가처분 신청한다.. 신당 창당 안 한다”

전날(10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전자 접수했다는 것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알렸습니다.

이 전 대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의힘이 비대위 구성을 통해 자신을 해임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 왔습니다. 

지난 9일 국민의힘 전국위에서 주호영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자마자 이 전 대표는 “가처분 신청한다.. 신당 창당 안 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처분 신청을 전자 접수했다는 것과 “신당 창당 안 한다”는 워딩입니다. 보통 정치인들이 소송을 할 때는 소장을 대봉투로 포장해서 기자들과 함께 법원으로 가죠. 그래야 메시지 파급력이 커지거든요.

그런데도 전자 접수했다는 것은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소송 행위가 가진 메시지 파급력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당 창당 안 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를 국민의힘이란 틀 내에서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피력.

따라서 이 전 대표는 마지막까지 타협의 여지를 남겨둔 겁니다. 비대위원장 활동에 들어간 주 의원은 이 전 대표를 곧 만나겠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예상입니다만 지금 정치인들의 시간표는 내후년 22대 총선에 맞춰져 있습니다. 0선의 당대표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한껏 끌어올린 이 전 대표, 그러나 최근의 일로 자칫하면 22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전 대표의 정치도 막을 내립니다.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겠죠. 그래서 기자회견도 오는 13일로 멀찌감치 미뤄둔 겁니다. 2~3일 남았습니다. 그동안 이 전 대표와 국민의힘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까요. 이게 관전 포인트입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주호영 與 비대위원장 “당 혁신 적극 추구..빠른 시간 안에 정상 지도체제 구축”

국민의힘 비대위 성격과 관련해 관리형이냐 혁신형이냐를 놓고 당내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관리형 비대위는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임시기구로서 단기간 운영됩니다. 반면 혁신형 비대위는 당헌당규를 비롯한 각종 제도 개선 작업을 진행하기때문에 비교적 장기간 운영됩니다.

이번 비대위 정국을 주도한 친윤계는 관리형 비대위를 원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주 위원장의 취임 기자회견에는 이와 상반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달 9일 전국위에서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당의 혁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곧 혁신형 비대위가 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곧이어 “빠른 시간 안에 정상 지도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합니다. 이러면 관리형 비대위입니다. 

게다가 주 위원장은 비대위를 실무적으로 운영하고 조기 전당대회로 당을 빠르게 안정시키자는 당내 일각의 의견에 대해 “그러면 비대위 할 거 뭐 있나.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면 되지”라 하며 조기 전대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일부 관계자는 주 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자기 정치’할 것 같았으면 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계가 애초부터 주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친윤계와 주 위원장 사이에는 향후 정치일정에 대합 합의가 이미 이뤄졌을 것이고 최근 주 위원장의 발언은 이에 기초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 주 위원장의 진의는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조사·발표한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순위를 보면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1위는 유승민 전 의원(23%), 2위는 이준석 전 대표(16.5%), 3위는 안철수 의원(13.4%)입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기현(4.4%), 권성동(2.5%), 장제원(2.2%) 의원 등은 모두 하위권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이는 친윤계의 딜레마를 드러낸 여론조사인데요, 한마디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당권 레이스에 들어가면 비윤계 당대표가 또 다시 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승민, 안철수 의원은 대권 주자군에 속한 정치인이죠. 만에 하나 둘 중 하나가 당대표가 되면 조기 레임덕이 진짜로 현실화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주 위원장이 ‘당의 혁신’을 표방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정상 지도체제 구축”을 약속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 전대 가능성을 일축한 것은 ‘자기 정치’가 아닌 ‘친윤계의 사정’에 충실했던 탓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혁신’을 버팀목 삼아 시간을 벌면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친윤계 당권주자를 찾아보고 키워보겠다는 의도인 겁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고민정 “반명(反이재명) 아니고 비명(非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흥행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후보의 당대표 선출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1년 이상 갈 수 있을까란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법카 유용 및 대장동 사건 등 사법리스크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인지 당헌 80조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해 안정적 당선권에 접어든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이날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저 스스로 친문이라 생각”한다면서 “반명이라고 하면 아니라고 하려 했는데 비명이냐 물으면 부인하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비명’인 이유에 대해서 “문 대통령과는 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같이 겪어낸 동지이지만 이재명 후보는 이제 막 알았다”며 “그분이 대세가 됐다고 해서 저도 친명이라고 하는 것은 친문이라는 것에 대한 무게감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고 의원은 이 후보에 대해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며 ‘당헌 80조’ 개정 논란에 대해선 “답을 해선 안 된다”고 했고 그 이유는 이 후보의 기소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고 의원이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라디오 방송에서 길게 펼쳐냈을까요. 우연의 일치겠지만 자칭타칭 친문계 좌장으로 불리는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당헌 제80조는 2015년 문재인 당 대표 시절 의결된 당 혁신안”이라며 반대입장을 공식화했습니다.

전 의원의 입장발표가 돌출적인 개인 행동일 수도 있지만 친문계 중진 내부의 의견 조율을 거쳐 총대 맨 행보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고 의원의 발언은 친문계 내부 ‘반명’ 세력화 움직임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치 TV 드라마나 멜로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연인 간 대화에사 느닷없이 ‘고마운 사람’, ‘좋은 사람’ 운운하며 말이 길어지면 이별 통보입니다. 그 순간조차 상대방에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들이죠. 이건 정치말고 그냥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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