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전 끝 윤석열 대통령 당선..집무실 이전·靑 개방 파격 연속
이재명, 제1야당 대표 선출..與이준석 중징계 후 가처분 신청

[공공뉴스=강현우·정혜경 기자] 2022년 임인년 대한민국은 20대 대선의 열기로 가득했다. 거대양당 대선 후보들이 오차범위 내 접전을 이어가며 판세는 반전을 거듭했다. 결국 국민은 헌정 사상 최초의 검찰 출신 대통령을 선출하며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택했다. 새 시대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또, 40대 현직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하는 등 기존의 정치 문법을 깨는 움직임을 보였다. 여의도의 역학 관계도 요동쳤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제1야당의 대표가 됐으며, 헌정 사상 첫 30대 당대표였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2022년 국내 정치권 주요 이슈들을 <공공뉴스>가 선정했다. <편집자 註>

(왼쪽부터)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왼쪽부터)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피튀기는 20대 대선 전쟁

제20대 대선은 후보부터 파격적이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중앙정치 경험이 없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3개월 뒤 대권 도전을 선언한 윤석열 전 총장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변방의 장수’와 ‘정치 신인’의 싸움이었다. 

대선은 예측불가였다. 선거일이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어떤 후보도 대세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이어갔다. 안갯속 판세였다. 

후보간 흠집내기가 난무해 ‘초유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국민의힘이 ‘대장동 의혹’으로 공세에 나서자 민주당은 ‘주술 프레임’으로 받아쳤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 대선이 추문,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모적 비방전이 난무하는 가운데 두 후보의 공약은 비슷해졌고 국가적 아젠다를 논하는 거대 담론은 사라졌다.

각 후보들의 ‘배우자 리스크’까지 이어지며 잡음은 극에 달했다. 이 후보의 배우자인 김혜경씨는 ‘과잉 의전’ 및 ‘법인카드 유용’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윤 후보의 배우자인 김건희씨 역시 ‘주가조작 의혹’과 ‘7시간 녹취록’ 사건으로 인해 입방아에 올랐다.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뛰어야 할 배우자들이 ‘리스크’가 됐다. 

네거티브에 지친 유권자들은 거대양당 후보 대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몰렸다. 그의 지지율이 10~15%를 기록하자 안 후보와의 단일화가 대선 막판의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지지율이 벽에 부딪힌 이 후보와 윤 후보는 민심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 후보는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맨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며 쇄신을 약속했고 윤 후보는 여의도역에서 출근하는 시민에게 1시간 가량 허리 굽혀 인사하기도 했다. 올해 1월과 2월은 어떤 후보에게나 뜨겁고 치열한 시간이었다. 

지난 3월10일 새벽,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지난 3월10일 새벽,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무서운 신인’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옴에 따라 대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소위 ‘깜깜이 기간’이 도래했다. 그 직전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지지율은 박빙이었다. 깜깜이 기간 직전 진행된 3월1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두 후보간 격차는 오차범위 내인 1%p였다. 그 누구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시작된 날인 3월3일, 대선에 ‘메가톤급 변수’가 생겼다.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야권후보 단일화에 극적으로 합의한 것. 단일화 직전까지 폭로전과 기싸움을 이어가던 두 후보는 국회 소통관에서 손을 맞잡고 “저희 두 사람은 원팀(One Team)”이라고 선언했다. 대선일을 엿새 남긴 시점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양상은 선거 당일까지 이어졌다. 출구조사에서부터 득표율까지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접전이 계속된 것. 9일 오후 11시경 공개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집계에서 이 후보는 50.11%를, 윤 후보는 46.67%를 기록했다. 다음날인 10일 오전 2시40분경 이 후보의 득표율은 47.78%, 윤 후보는 48.62%를 기록하며 선두가 바뀌었다.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민심은 결국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별의 순간’을 잡은 이는 윤 후보가 된 것. 20대 대선 최종 투표율은 77.1%였으며 이중 윤 후보는 48.56%를, 이 후보는 47.83%를 득표했다. 두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0.73%p로 역대 대선 중 가장 작았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초의 검찰 출신 대통령이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인물 중에선 처음으로 대통령이 됐다.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일각에서는 여의도 경험이 없는 윤 당선인이 대권을 잡은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누적됐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윤 당선인은 10일 당선 인사를 통해 “공직 사퇴 이후 지금까지 국민이 보내준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에 정치 초심자인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를 시작한 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왜 국민이 저를 불러냈는지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오직 국민만 믿고, 오직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용산 시대와 청와대 개방 설왕설래

집권 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은 윤 당선인의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국민과 소통’ 및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호·교통·비용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당초 지목됐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가 집무실 후보에서 배제되고 당선인은 용산 국방부 청사를 최종 이전지로 낙점했다. 일각에선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할 경우 안보에 문제가 생길 거란 지적도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용산 집무실 이전 반대 청원이 게재된지 4일 만에 3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선인은 취임식을 마친 후 용산 집무실 첫 출근길부터 약식 기자회견, 이른바 ‘도어스테핑’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로 출근하면 취재진과  즉석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생경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를 두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호평이 들려왔다.

하지만 ‘용산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어스테핑은 올해 11월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의 공개 설전 이후 전격 중단됐다. 멈춰선 도어스테핑의 재개를 바라는 목소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무실 이전과 떼어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청와대 개방이다. 윤 대통령 취임일인 5월10일, ‘금단의 땅’ 청와대가 74년 만에 국민에 개방됐다. 이날 오전 청와대 문이 열리자 매화꽃다발을 손에 든 국민대표 74명과 사전 관람 신청 당첨자들은 “청와대 정문 개방!”이라고 외치며 입장을 재촉했다. 경내에선 각종 공연이 펼쳐지며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는 개방 44일만에 100만명의 관람객을 맞이했다. KBS 열린음악회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이 개최되며 청와대는 국민의 사랑을 한껏 받았다. 인근 상인들은 ‘청와대 특수’를 누렸다. 다만, 청와대 방문객이 늘어난 만큼 경내 기물 파손·쓰레기 무단 투기 등의 문제가 발생해 아쉬움을 남겼다. 

‘청와대 패션 화보 논란’도 구설수에 올랐다. 한 패션 잡지가 청와대를 배경으로 촬영한 화보를 두고 “국가의 품격이 떨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 청와대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한 활용 철학이 부재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 나은 청와대 활용방안’은 윤석열 정부의 숙제로 남았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시찰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시찰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 바이든 방한 깊어진 한미동맹 

윤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취임 후 최단기간 내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내린 후 즉시 평택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으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공장 내부를 시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정상을 직접 수행하며 안내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평택 캠퍼스 방문은 반도체가 갖는 경제·안보적 의미는 물론 반도체를 통한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간 반도체 등 공급망 협력을 강조하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삼성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방한 둘째 날, 바이든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한반도를 넘어서 등 3개 분야의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2박3일 방한 일정 중 마지막 날, 바이든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단독 회동을 가졌다. 10여분으로 예정됐던 환담은 50분가량 이어졌으며, 현대차그룹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중 총 105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통 큰’ 미국 투자를 결정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거듭 사의를 전하며 “투자 결정이 실망하지 않도록 미국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의 첫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의 타이밍은 두 국가의 깊은 인연을 강조하는 동시 한국의 중요성이 급증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17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17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민주당 최대 적수 한동훈 등장

윤 당선인이 올해 4월 새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한동훈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급)을 발탁했을때 정가와 법조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한 검사장은 조국 전 법무부 일가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하다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한직을 전전하던 인물이었다. 

한 검사장과 윤 당선인은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 대선자금 수사팀을 시작으로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검찰총장으로 함께 근무하며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사이였다. 그가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만큼 새 정부에선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에 중용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깨고 한 검사장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파격’이란 평가가 나왔다. 네 차례나 좌천을 당했던 이가 법무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장관 후보자 중 유일한 40대이며, 현직 검사장이 법무부 장관이 된 전례가 없었던 까닭이다. 

당선인이 한 검사장의 장관 내정을 발표했던 시기는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행하던 때였다. 한 후보자는 검수완박 추진을 강하게 비판했다. 직설적 화법으로 “이 법이 통과되면 국민이 크게 고통 받는다”고 맹폭한 것. 이틀 뒤, 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 출근길에서도 검수완박을 ‘야간도주극’에 비유하며 거듭 각을 세웠다.

민주당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권에서는 한 후보자를 겨냥해 “왕(王)장관이 아닌 소통령”이라고 직격하며 혹독한 청문회 검증을 예고했다. 마침내 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당일, 총공세를 예고했던 민주당은 실수를 연발하며 결정적 ‘한방’을 터트리지 못했다. 대중의 뇌리엔 ‘이모’와 ‘한국쓰리엠’만이 남았다.

이후 윤 대통령은 그의 임명을 강행했고, 한 장관은 취임 직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해체했던 ‘증권범죄합수단’을 부활시켰다. 대대적인 검찰 인사도 단행하고, 장관 직속 공직자 인사검증조직을 신설했다. 한 장관이 광폭행보를 보일수록 민주당과의 파열음도 커져만 갔다. 

한 장관과 민주당은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등에서 사사건건 충돌했다. 국감에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하며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한 장관은 자신이 대통령·로펌 변호사들과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 장관직 포함해서 다 걸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의혹을 재차 거론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야당의 비난이 거칠어질수록 한 장관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올해 6월 갤럽의 장래 대통령감 조사에서 한 장관의 선호도는 4%였다. 6개월 뒤 조사에서 한 장관의 선호도는 10%를 기록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다음 순위였다. (모두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조사 개요·결과는 한국갤럽,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 장관이 2023년에도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된 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된 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 이재명의 부활과 검찰의 추격

20대 대선에서 0.73%p차로 석패한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2달 간 잠행을 이어가다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 전 지사에게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직접 출마해 달라고 요청한 것. 민주당은 이 전 지사를 인천 계양을에 전략공천하고, 그를 지방선거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 전 지사의 정가 복귀를 반기는 이들도 많았지만, 국민의힘은 그의 출마를 겨냥해 검찰 수사에 대비하기 위한 ‘방탄용’이라고 파상공세를 펼쳤다. 이에 이 전 지사는 “자꾸 방탄, 방탄하는데 여러분은 물도 안 든 물총이 두려우냐”고 받아쳤다.

마침내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이 전 지사는 인천 계양 을에서 55.24%의 득표율을 올리며 ‘금뱃지’를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17곳 중 12곳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둔 탓에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던 이 전 지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당선 소감을 통해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전했다.

이후 한 달 뒤, 이 의원은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사법 리스크·강성 팬덤 문제를 거론하며 그의 출마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기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77.77%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 대표에 당선됐다. 

선출직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친명(친이재명)계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5명의 최고위원 중 정청래·박찬대·서영교·장경태 의원 등 친명계 의원 4인이 선출된 것. 이로써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거야(巨野) 민주당은 명실상부 ‘친명 지도부’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제1야당 수장이 된 지 불과 나흘만에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다. 9월1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와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가 이 대표에게 대장동·백현동 의혹과 관련해 출석을 요구한 것. 이날 국회사진기자단의 카메라에는 이 대표에게 검찰 소환통보를 전하는 보좌관의 메시지가 포착됐다. 보좌관은 이 대표에게 “전쟁입니다”라고 전했다. 

결국 이 대표는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 발의하고, 서울중앙지검을 항의방문하며 반격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의 ‘전쟁’은 계속됐다. 그의 최측근 2명이 연이어 구속되고 검찰의 칼날이 턱끝을 겨누자 당내에서는 ‘이재명 용퇴론’까지 제기됐다. 최근 이 대표는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다. 이 대표의 전쟁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여당 당대표 중징계와 가처분 대혼란

헌정 사상 첫 30대 당대표인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20대 대선에서 후보들보다 큰 존재감을 과시했다. 거침없는 발언과 적극적인 SNS 소통, 59초 쇼츠 영상과 같은 창의적인 전략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선거대책위원장 직을 내려놓거나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를 자극하며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페미니즘·장애인 이동권 등 정치적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주제를 언급하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 전 대표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향해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맹공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약자 혐오’, ‘갈라치기 정치’를 한다는 질책이 나왔다.

당내에서도 이 전 대표의 행보를 두고 평가가 엇갈렸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동시에 당내 분란을 야기했다는 것. 이 전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혁신위원회 설치에 대해 국민의힘 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은 공개 비판을 가했고, 이 전 대표는 “그래도 기차는 간다”고 응수했다.

집권 여당의 내홍은 7월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이 전 대표의 중징계를 결정하며 일단락되는듯 했다. 윤리위는 이 전 대표가 성 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당원권 6개월 정지’를 결정했다.

이후 여당은 당 지도부 체제 개편에 나서고 이 전 대표는 전국을 돌며 지지 세력 확보에 나섰다. 각자가 분주하던 가운데 ‘내부 총질’ 메시지가 공개되며 정치권이 뒤집어졌다. 윤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당시 당대표 직무대행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장면이 국회사진기자단 카메라에 잡힌 것.

이후 여당은 재차 혼란을 겪다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방향키를 돌렸고, 이 전 대표는 8월 초 사실상 ‘자동 해임’됐다. 이에 이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결정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또, 기자회견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과 윤핵관을 격렬하게 공격했다.

8월26일, 법원이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받아들이며 여당은 다시 혼돈에 빠졌다. ‘주호영 비대위’는 출범 열흘도 되지 않아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이 전 대표는 곧바로 추가 가처분을 신청하며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 하지만 10월6일 법원은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모두 각하·기각하며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여당은 지긋지긋했던 가처분의 터널을 벗어나 당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고, 이 전 대표는 “더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을 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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