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박주연 기자] ‘유전무죄 무전유죄.’ 88서울올림픽을 마친 후 한 달여 정도가 지난 1988년 10월.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탈주범 이강헌 사건’이 발생했다.

훗날 영화 ‘홀리데이’로 제작된 이 사건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불변의 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안타깝게도 2017년 오늘, 여전히 공감대를 자아내고 있다.

22일 세간의 이목을 모았던 롯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이 있었다. 이날 재판에서 95세의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에겐 징역 4년,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징역 2년 등 실형이 선고됐고, 신동빈 회장과 서미경씨는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인 점을 감안해 실질적으로 법정구속은 면하게 된다. 결국 이번 재판에서는 신영자 이사장만이 롯데가 유일한 구속자가 됐다.

같은날 대법원은 넥슨으로부터 공짜주식과 여행경비, 승용차 인수 자금 등을 받은 혐의로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진 전 검사장이 받은 금품 등이 ‘직무관련 대가성 등이 단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받은 주식 등이 ‘뇌물이 아니다’라는 것.

대법원은 “진 전 검사장은 이익을 받을 당시 어떤 형사사건이 발생할 지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알선을 해줄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주식과 돈을 건넨 김 대표가 진 전 검사장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손해를 입을 염려가 없다는 정도의 ‘막연한 기대감’에서 이익을 줬고 진 전 검사장도 이를 짐작하면서 받은 것으로 뇌물 수수는 아니라는 것.

요란법석 했던 롯데수사에서 실형은 딱 한명으로 끝이 난 셈이다. 특히 ‘고령이기에’ 법정구속을 면한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35억원의 벌금과 함께 1000일간의 노역이 선고된 것은 어이없는 웃음만 나온다. 그냥 무죄면 무죄지 96세 고령의 인물에게 징역 4년에 노역이라니..

결국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대한민국에서 ‘죄의 유무’는 곧 ‘돈과 빽의 유무’라는 정확한 공식을 다시한번 일깨워 준 이번 판결을 보면서, 적어도 의식이 있는 국민들이라면 많은 것들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30년전 탈주범 지강헌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절규하듯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그 말이 마치 오래된 고사성어처럼 만고불변의 진리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 역시 돈 많으면 장땡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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