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역사적·예술적 등 인류 문화활동의 소산→후대 공유 위해 가치 보존해야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대학생 A씨는 대학 3년 동안 활동한 사진 동아리를 마무리했다. A씨는 시원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험기간이지만 마지막으로 동아리 친구들과 주말에 경주에 다녀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오후가 되자 가족단위가 많이 몰려들었고 특히 유명한 첨성대 앞에는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첨성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뒤쪽으로 돌아가는 도중 A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4~5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첨성대 보호 울타리 안에 들어가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 주변 사람들 또한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는 있었으나 정작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A씨는 보호자에게 다가가 이러면 안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울타리 때문에 사진이 예쁘게 찍히지 않는다. 잠깐만 찍고 나오는 건 데 뭐 어떠냐. 그저 내 게시물(SNS)에 올리는 게 남들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첨성대를 만지고 오는 것도 아닌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록 직접적으로 문화재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 나쁜 마음을 품으면 훼손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역사가 품은 시간에 젖었던 A씨는 이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한다는 현실이 불편할 뿐이다.

독일 베를린시가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에 그래피티로 인해 훼손됐다. <사진=뉴시스>

SNS는 자신을 들어내거나 과시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이는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특별하다고 알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 하지만 이런 특별함은 선을 넘어 그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의 가치를 저평가하기에 이르렀다.

# 이념이 빚은 참극, 예술 가치를 잃은 ‘손’

최근 국내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이 한 그래피티(벽·화면 등에 낙서처럼 그리는 예술) 아티스트의 낙서로 훼손당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경찰이 지난 12일 A씨를 소환해 조사한 결과, A씨는 “유럽 여행에서 베를린 장벽에 여러 아티스트가 예술적 표현을 해놓은 것을 봤는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장벽에) 관심이 없었고 흉물처럼 보여서 건곤감리 태극마크를 인용해 평화와 자유를 표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A씨는 서울 중구 청계2가 베를린 광장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8일 SNS에 게시했다.

A씨는 ‘히드아이즈’라는 문화예술브랜드를 론칭한 아티스트로, 사진과 함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재와 앞으로 미래를 위해 메시지”라며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히드아이즈 패턴이 조화롭게 이뤄져 한민족의 이상인 뜻을 내포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베를린 장벽의 서독 벽면에는 분홍, 노랑, 파란색 페인트로 덮였으며 동독 벽면 또한 스프레이로 문구들이 적혀있는 상황.

A씨가 그래피티로 훼손한 베를린 장벽은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철거된 뒤 베를린시 마르찬 휴양 공원에 전시됐던 것이다. 베를린시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2005년 9월 서울시에 기증했다.

독일 분단의 역사이자 평화 통일의 증거이기도 한 베를린 장벽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던 서독 시민들의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그림 등이 서독 벽면에 새겨졌다. 반면 시민들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던 동독 벽면은 깨끗한 면으로 남아있었다.

수십 년 동안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역사적 가치가 높았던 베를린 장벽이 A씨의 그래피티에 의해 서독 벽면은 기존의 형체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됐고, 깨끗했던 동독 벽면 역시 당시 사회분위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복구하기 힘든 상태다.

이에 누리꾼들의 분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 네티즌들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념물을 훼손한 무분별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한 네티즌은 “지난 수십 년 역사의 흔적이 남겨진 세계적 가치자산에 극히 개인적 의향을 덧입힌 결과 국제적 망신만이 남았다”며 “예술과 범죄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문화재에 대한 보존 및 관리가 부실하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 앞에는 ‘베를린 광장 시설안내’라는 안내 표전이 세워져 있으나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장치나 시설이 없어 상시 노출에 드러났던 상황.

비록 베를린 장벽이 문화재에 등록돼 있지는 않지만 그 가치는 문화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현재 훼손된 베를린 장벽의 소유권은 서울시가, 관리는 중구청이 맡고 있다.

시민들은 장벽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고려했다면 관리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개탄했다.

경북 경주 지역에 발생한 진도 5.1과 5.8 지진과 관련, 지난 2016년 9월 국보 제20호 불국사의 다보탑 옥개석 난간석이 파손된 모습. <사진=뉴시스>

# ‘구멍’ 뚫린 문화재 관리..인적·물적 보강해야

역사적인 문화재의 구멍 관리는 비단 베를린 장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올해 3월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은 화마에 휩쓸릴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3월9일 새벽 한 남성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흥인지문의 담벼락을 넘어 무단으로 들어갔다. 이를 본 시민은 경찰에 신고했고, 흥인지문 관리사무소에도 즉각 연락을 취해 불이 붙은 지 5분여 만에 신속하게 대처했다. 다만 흥인지문 담벼락 일부가 그을리는 피해는 막지 못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여론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지난 2008년 2월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된 지 10년 만에 흥인지문에서도 방화 사건이 일어나자 부실한 문화재 관리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서울 시내 중요 문화재 가운데 숭례문은 참사 이후 중앙정부(문화재청)가 직접 상주 인력을 두고 24시간 관리하지만, 흥인지문을 비롯한 나머지 26개 문화재는 서울시나 각 자치구가 관리하고 있다.

이에 관리주체가 달라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동시에 관리가 유지되기 위한 인적·물적인 지원이 충분한지 점검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9월에 사적 제153호인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성 성벽과 주변 학교 등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한 남성은 특별한 이유 없이 국가지정문화재를 훼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성벽 복원비용 2700만원, 차량과 학교 공용물 수리비 1000만원 등 총 3700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아울러 8월에도 관광차 경주를 찾은 대학생 3명이 술에 취해 첨성대 옆면을 타고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주시가 첨성대를 살펴본 결과 다행히 훼손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현재 첨성대는 북쪽으로 205mm, 서쪽으로 5mm 정도 기울어진 상태다. 특히 2016년 9월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등으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옛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자산들을 훼손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미 허술한 관리로 ‘국보 1호’ 숭례문 소실이라는 아픔을 맛봤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 관심 있게 보고 지키는 것, 문화재 보호의 첫걸음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는 사전에 문화재 훼손을 예방·방지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울산시는 울산문화재연구원과 ‘2018년 문화재 돌봄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문화재의 체계적인 관리에 나섰다.

시는 문화재 돌봄사업을 통해 문화재 상태와 주요 수치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체계적으로 문화재를 보존·관리하게 된다. 또한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실시계획을 수립해 경미수리와 일상 관리를 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차후 모니터링이나 사업계획에 피드백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출 예정이다.

충북 영동군과 영동군노인복지관에서는 지난 4월 ‘문화재시설봉사’를 추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문화재시설봉사는 보존가치가 높고 상시 관리가 필요한 문화재를 지역사정을 잘 아는 현지 주민이 환경정화 등 세심히 관리하는 사업이다.

평소 닫혀만 있던 유적지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관리에 참여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매개로 일자리까지 창출해 문화재 주변 규제에 대한 거부감도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울러 올 2월 문화재 재난안전관리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안동시는 ▲목조문화재 안전경비를 활용한 현장 중심의 재난대응체계 구축 ▲방범설비의 초기대응 능력 강화를 위한 문화재 방재시스템과 안동시 통합관제센터 연계 추진 ▲문화재 방재CCTV 화소수 개선 등 방재업무에 선제적인 대응으로 문화재를 지켜나가고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이 같은 지자체의 노력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의미 깊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할 줄 알아야 후대에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문화재에는 우리가 겪지 못했던 고통·고난·애환·비극 등 그 순간들의 감정과 역사들이 스며들어 있기에 ‘값어치’라는 말로 판단할 수 없다.

선조의 혼을 지키는 일에 ‘너’ 책임과 ‘내’ 책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 또한 조상에게 물려받은 원형 그대로 후대에 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세심한 행정력의 뒷받침과 국민의 관심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문화재의 훼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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