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9명 사망·5명 중경상..시너·유독가스 등 인명피해 원인 갑론을박 팽팽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최근 인천 남동공단 세일전자에서 발생한 화재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해당 건물이 화재에 취약한 건축 자재로 지어져 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소방당국과 경찰은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소방당국은 경찰 및 유관기관과 합동 현장감식을,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이 가운데 화재 사망자 유족들이 발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4층에 인화성 물질인 시너가 있어 불길이 급격히 번졌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22일 인천 남동공단 내 전자제품 제조회사 화재 현장에서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합동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화재 발생 당시 스프링클러 미작동..‘인재’ 가능성 불거지나

인천소방본부는 “1차 합동감식 결과 현장 발생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며 “또한 내부에 소화기 등이 비치돼 있었으나 1차 화재 진압 시도도 없었다”고 22일 밝혔다.

스프링클러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미작동 원인과 상관없이 관리 부실에 따른 인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합동감식에는 소방본부를 비롯해 인천지방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유관기관 관계자 30여명이 투입됐다.

합동감식반은 공장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소방당국이 최초 발화점으로 추정한 공장 4층 검사실과 식당 사이 복도 천장 주변을 집중적으로 감식했다.

실제로 전체 사망자 9명 가운데 소방당국이 출동하기 전 추락해 숨진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이 모두 4층 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남동공단 세일전자 화재는 21일 오후 3시43분께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세일전자 공장 4층에서 발생해 9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소방대원 1명이 진화작업을 벌이던 중 연기를 흡입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공장 내부에 휴대전화 부품 등을 세척할 때 사용하는 인화성 물질과 제품 포장용 박스가 쌓여있던 탓에 불이 급속히 확산했고 유독가스도 대거 발생해 인명피해 규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감식반은 4층 식당 천장 등을 비롯해 내부에 설치된 CCTV 분석을 통해 정밀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한 최초 목격자 등의 진술도 참고해 오는 23일까지 합동감식을 진행할 방침이다.

아울러 경찰은 합동감식이 끝나는 대로 사측 관계자를 소환하고 공장 관계자들의 소방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인천지방경찰청은 논현경찰서에 사고 수사본부를 꾸렸다. 경찰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과학수사계·논현서 형사팀 등 47명으로 구성됐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원인은 본격적인 조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듯하다”며 “최대한 빨리 현장감식을 진행한 뒤 공장 관계자들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3시43분께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남동공단의 한 전자제품 공장 4층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인천소방본부>

◆유족 vs 사측, 인화성 물질 ‘시너’ 존재 여부 대립

남동공단 세일전자 화재와 관련, 유족들은 4층에 인화성 물질인 시너가 있어 불길이 급격히 번졌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이날 인천시 남동구 길병원에 마련된 세일전자 측의 화재 개요 브리핑 자리에서 “불이 난 뒤 연기가 퍼지는 데 3분이 채 안 걸렸다”며 “시너에 불이 붙었다는 직원 진술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4층에서 시너를 쓰는 작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말해달라”며 “화재 발생 지점에 무엇이 있었냐”고 사측에 질문했다.

한 유족은 “딸이 ‘시너를 쓰면 물건이 감쪽같이 된다’고 회사일을 말한적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유족 역시 “인쇄회로기판(PCB)을 시너로 닦으면 새것처럼 완벽해진다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안재화 세일전자 대표는 “우리 공장은 시너나 인화성 물질을 쓰지 않고 외주업체는 일부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숨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유족 측은 비상벨 및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유족 측은 “목격자들 말을 들어보면 벨이 안 울려서 본인들이 문을 두들겼다고 한다”며 “시신을 보면 물에 젖은 흔적이 전혀 없는데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했을 리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세일전자 측은 경비실 내 메인 주경종이 작동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4층 사이렌과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는 감식 진행 중이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다만 “올해 6월29일 한 소방 점검 결과 4층과 관련한 지적 사항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시너 존재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대형 참사로 이어진 이번 화재의 핵심은 시너 존재 여부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인화성 물질에 대비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고용부, 세일전자 ‘작업중지’ 명령..“법 위반 시 사업주 엄중 처벌”

한편,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하 중부고용청)은 남동공단 세일전자에 대해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22일 중부고용청에 따르면, 작업중지 범위는 사망이나 부상 등의 재해가 추가로 발생할 위험이 있는 남동공단 내 세일전자 전체 사업장이다.

중부고용청은 현장 정밀감독을 실시하는 동시에 외부 진단기관을 통해 사업장 위험 요소를 점검하는 긴급 안전진단 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중부고용청 관계자는 “비슷한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예방 체제를 유지하며 최대한 빠르게 사고 조사를 하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업주를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