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내 난동:성추행·폭력 위협 내몰린 의료진→인식 및 이용문화 개선 필요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 의사 A씨는 최근 환자 보호자로부터 폭행을 당할 뻔한 당혹스런 일을 겪었다. A씨가 근무 중인 병원 응급실을 찾은 보호자 B씨는 자신의 자녀 상태가 좋지 않다며 입원을 원했고, 이에 A씨가 B씨 자녀 상태를 확인했지만 입원까지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B씨는 병원을 왔다갔다하는 차량 이동시간과 비용 등을 이유로 계속 입원을 요구했다. A씨는 병원 규칙상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B씨는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무차별적으로 물건을 훼손했다. 이후 A씨를 향해 폭행하려고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막아 큰 피해로 이어지진 않았다. 자신의 혈육은 가장 우선이면서 타인의 혈육은 뒷전으로 밀리게 하기 위한 시위로서 폭력을 행사 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라며 A씨는 혀를 끌끌 찼다.

최근 인명을 담보하는 의료진에 대한 폭행·협박 행위는 살인행위와 동일하다는 측면에서 여러 차례 ‘의료진 폭행’ 문제가 사회면을 장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 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응급상황에서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한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가해자가 환자라는 점 등을 고려해 고소를 취하하거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인 실정. 이 때문에 응급 상황에서의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전북 익산시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임모씨가 의사 A씨를 폭행한 직후 경비원들에게 제지 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폭행부터 성추행까지 의료방해 ‘빈번’

최근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폭언과 폭행 등 의료 방해 행위는 1년 새 5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의료 방해에 대한 신고·고소 건수는 893건으로 전년 대비 55%나 증가했다.

연도별로는 2016년 578건, 2017년 893건, 2018년 1∼6월 582건 등 2년 6개월간 총 2053건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올해 발생한 응급의료 방해 행위 중 68%에 해당하는 398건은 환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었다.

행위별로는 폭행이 830건으로 가장 많았고 난동·성추행 587건, 폭언 338건, 위계 및 위력 221건, 기물 파손 및 점거 72건 등 순이었다.

실제로 이 같은 응급실 의료 방해 행위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발생한다.

5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A(48)씨를 지난 4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이달 2일 오전 11시20분께 인천시 남구 한 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 B(27)씨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관절 통증을 없애는 주사를 놔 달라는 요청에 간호사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자 약 10분 동안 폭언을 하며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같은 날 낮 12시30분께 인천시 부평구 한 병원 응급실에서는 30대 의사를 폭행한 C(53·여)씨가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도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C씨는 자신을 빨리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의 뺨을 1대 때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폭력과 협박 외에도 의료진을 성추행하는 등 행위로 난동을 부린 경우도 있었다. 

전북 고창경찰서는 이날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D(4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씨는 이날 오전 6시5분께 고창군 한 병원 응급에서 술에 취해 원무과 직원 E(25)씨를 주먹으로 위협한 혐의를 받고 있다.

E씨를 폭행하진 않았지만, D씨는 ‘가슴이 아프다. 진료해달라’며 원내에서 행패를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D씨는 ‘특정 부위도 아프다. 검사해달라’며 간호사 F(25·여)씨를 성희롱한 것으로 조사됐다. D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체포됐다.

지난 7월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 회원들이 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의료기관 내 폭력근절 범의료계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응급실 폭행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

이처럼 의료진에 대한 폭행 및 협박, 그리고 성추행까지 의료 방해 행위가 끊이질 않자 경찰은 지난 4일 복지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등 보건의료단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보건의료단체 대표들은 국민이 응급실에서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응급실 내 폭력 사범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범죄 예방 활동을 강화해 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다.

이에 경찰은 응급실 폭행사범을 공무집행방해 사범에 준하는 수준으로 간주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흉기를 소지하거나 큰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응급실 내 폭력사건 근절을 위해 사건 발생 시 신속하게 출동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응급 의료진과 다른 환자들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겠다”며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한 후에도 불법행위가 계속될 경우 즉시 제압·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필요할 경우 전기충격기 등 경찰 장구도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민 청장은 또 “경찰은 병원과 협의를 거쳐 경찰차량 순찰 경로에 응급실을 추가해 탄력 순찰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단체와 복지부에 폭행 사건이 발생할 경우 수사 협조와 응급실 내 비상벨 등 보안시설 설치, 경비인력 배치 등 자체 보안 강화를 요청하는 한편, 만취자 치료 및 보호를 위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증설 검토 등 의견도 전달했다.

센터는 병원 응급실 내 일정 병상을 확보해 응급의료가 필요한 만취자에 대해 치료·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찰관이 24시간 배치돼 주취자 난동을 제압하고 신원 확인 및 가족 인계 등 역할을 맡는다.

이와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실 폭행 방지 대책 마련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주취자 응급센터 확대 등 인력·예산이 필요한 부분은 경찰·의료계와 함께 검토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전했다.

응급실 의료인 폭력 사태 대응을 위한 비상대책회의 <사진제공=대한의사협회>

# 의료계, 의료인 폭력 근절 한목소리

한편, 그간 잇따른 의료인 폭행 사건과 관련 지난달 16일 의협과 대한응급의학회,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실 의사 폭력을 반대하는 대정부 건의문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같은 달 14일 최대집 의협 회장과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 병원장 및 관계자, 응급의학회 임원들이 용산드래곤시티호텔에서 ‘응급실 의료인 폭력 사태 대응을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해 협의한 내용이다.

이들은 대정부 건의문에서 ▲의료기관 내 폭력사건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의료인 폭행 처벌 강화법의 조속한 통과 및 시행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 의료계와의 협의의 장을 마련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의료기관 내 폭력을 근절해 안전한 진료환경을 확보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수호할 수 있도록 청와대, 국무총리, 복지부, 국회 등 정부가 직접 나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기간 내 폭행에 대해 국민들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의료인과 국민, 경찰, 사법기관의 인식 차이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응급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지켜주는 의료진들이 무너진다면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것과 동일하다. 폭력 없는 안전한 의료현장 구축은 의료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한 진료를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이다.

이에 응급 의료진과 환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며 안전한 진료를 받기 위해 국민들의 인식과 응급실 이용문화 개선으로 의료기관 내 폭력행위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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