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전문직 등 대상 확대 및 93명 세무조사 착수..올해 5408억원 추징

[공공뉴스=김승남 기자] 국세청이 조세회피처와 해외 현지 법인 등을 통해 소득이나 재산을 교묘하게 해외로 빼돌려 세금을 탈루하는 역외탈세에 대해 칼을 빼 들었다.

대기업과 대재산가를 표적해 진행해왔던 역외탈세 세무조사 범위를 중견기업 사주일가와 고소득 전문직까지로 확대하는 등 조사의 강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의사나 교수, 펀드매니저와 연예인 등 사회 지도층도 다수 포함됐다.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조세회피처 실체를 이용하거나 해외 현지법인과 정상거래 위장 등 구체적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93명(법인 65, 개인 28)에 대해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세청, 지난해 233건·1조3192억원 역외탈세 적발

국세청은 구체적인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법인 65개와 개인 28명 등 총 93명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조사 대상은 탈세 제보, 외환·무역·자본거래, 국가 간 금융정보 교환 자료(FATCA, MCAA), 해외 현지정보 등을 종합 분석해 선정됐다.

특히 이번에는 조세회피처인 케이만군도와 BVI(영국령 버진아일랜드)로부터 받은 금융정보를 활용했다.

올해에는 금융정보를 제공받는 국가가 스위스를 포함, 78개국에서 98개국으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조사 효율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국세청은 기대하고 있다.

그간 국세청은 역외탈세 혐의가 큰 대기업·대재산가 위주로 조사 대상자를 선정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역외탈세 진화 양상을 반영하고 성실신고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해외투자·소비 자금의 원천이 불분명한 중견기업 사주일가, 고소득 전문직까지 검증대상이 확대됐다.

이와 함께 역외탈세 자금의 원천이 국내 범죄 혐의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조사건에 대해서는 ‘해외불법재산환수합동조사단’과 공조체계를 구축해 조사에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해외불법재산환수합동조사단은 검찰과 국세청, 관세청 등이 여러 관계기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해외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세청이 역외탈세와 관련해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은 여러 차례다. 그러나 매년 국세청에 적발되는 역외탈세 규모는 줄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국세청이 적발한 역외탈세는 총 233건으로 추징액은 1조3192억원에 달했다. 이는 2012년과 비교하면 조사 건수는 31건, 추징세액은 4900여억원 늘어난 것.

지난해 12월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총 76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 중 58건은 조사를 종결해 총 5408억원을 추징하는 성과를 냈다.

실제로 한 국내 유명 연예기획사는 해외에서 공연한 수입금 70억원을 홍콩 페이퍼컴퍼니에 은닉해 법인세 등을 탈루해 90억원의 세금폭탄과 더불어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 20억원을 받았다.

또 다른 사례로 한 재벌법인 사주는 상속개시일 전에 선친이 해외금융기관에 조성한 비자금을 인출해 은닉한 뒤 상속세 1000억원을 탈루했다 적발됐다.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조세회피처 실체를 이용하거나 해외 현지법인과 정상거래 위장 등 구체적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93명(법인 65, 개인 28)에 대해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탈세 방식, 소득·재산 은닉→미신고 해외신탁 활용·자금세탁 등 정교하게 진화

이처럼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탈세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단순 소득·재산 은닉에서 지주회사 제도 등을 악용해 탈세한 자금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복잡해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미신고 해외신탁·펀드를 활용하거나 자금세탁 과정을 거쳐 국내로 재반입, 국외에서 재투자 또는 자녀에게 상속·증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은밀해지고 있는 실정.

이는 국가 간 금융정보 교환 확대 등으로 국제 거래의 투명성 개선 조치가 강화되면서 역외탈세 행위도 감시망을 피해 정교해지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탈세 유형이 이전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한 배경에는 전문가 집단의 적극적인 조력이 있는 것으로 국세청은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국내 거주자가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법인이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면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과태료를 적극적으로 부과하고 외국 과세당국과의 정보 교환·해외 현지 확인 등을 통해 역외탈세 혐의가 확인되면 끝까지 추적할 계획이다.

또한 해외신탁·펀드를 활용하거나 미신고 해외법인의 투자지분으로 전환해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해외 현지 정보수집을 강화하고 국가 간 금융정보자동교환 네트워크 등을 적극 활용해 해외재산 도피자를 색출할 방침이다. 

아울러 역외탈세 행위가 중견기업·자산가, 고소득 전문직 그룹에서도 확인됨에 따라 정보수집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해외에 은닉된 자금 원천에 대한 탈루 여부뿐만 아니라 해외 호화생활비, 자녀 유학비용 등 사용처와 관련된 정보수집도 강화한다.

역외실체의 설립, 역외탈세 구조의 설계 등 역외탈세에 적극 가담한 전문조력자에 대한 현장 정보수집과 조사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제보, 유관기관 정보수집, 국가 간 정보공조 등 정보수집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역외탈세 분석·조사 지원팀을 확대하는 등 조사 대응역량을 제고하는 한편 고의적·악의적 역외탈세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고발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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