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이민경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기아차의 차량 엔진 화재와 관련해 주력시장인 미국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어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가뜩이나 실적 부진으로 고전 중인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화재 리콜 파문에 휩싸인 상황에서 미 상원 상무위원회가 현대·기아차 현지 법인 최고경영진의 청문회 출석을 요구하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형국.

그동안 현대·기아차 차량 화재 및 결함 소식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화재 이슈는 국내에서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올해 BMW 차량의 엔진 화재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되면서 이슈가 묻혔고, 현대·기아차는 오히려 ‘득’을 본 셈이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현대·기아차의 결함과 화제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면서 “현대차그룹이 소비자 목숨을 담보로 차를 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국외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으면서 ‘글로벌 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평가도 들린다.

현대·기아차 본사 <사진=뉴시스>

◆‘대규모 화재 리콜’ 현대·기아차, 美 상원 청문회 출석 요구

미국 상원 상무위원회가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법인 최고경영진에게 다음달 14일 의회 출석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현대·기아차는 18일 “일부 NGO(비정부기구)의 문제 제기 등에 따라 의회가 진행하는 통상적 절차로 이해된다”며 “이에 따라 당사도 합당한 소명을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1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상무위가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법인 최고경영진에 대해 내달 14일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현지에서 발생한 현대·기아차의 엔진 화재와 관련해 공화당의 존 튠 상무위원장과 민주당의 빌 넬슨 의원이 출석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넬슨 의원은 “2014년식 기아 쏘울 차량의 비충돌 차량화재 사망사고가 신고됐다”며 “우리는 화재 원인을 파악해야 하고 차량 소유주들은 그들의 차량이 안전한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튠 상무위원장과 넬슨 의원이 서명한 서한에는 “청문회에서는 차량화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점검하고, 화재위험을 노출하는 결함을 파악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적시됐다.

앞서 올해 6월 미국 내 비영리 자동차 소비자단체인 CAS(Center for Auto Safety)는 현대·기아차 차량에서 주행 중 엔진 발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290만대에 달하는 차량에 대한 당국의 조사와 즉각적인 리콜을 촉구한 바 있다. 

상무위의 이번 출석 요구는 이들 단체가 현대·기아차 차량에 대한 안전성 우려를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CAS에 따르면, ‘불차’ 민원이 제기된 차종은 2011년~2014년 식 현대차 쏘나타와 싼타페, 기아차 쏘렌토, 옵티마(K5의 미국 모델명) 등이다. 

CAS는 이들 현대·기아차 차량 약 290만대에 대해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화재결함 관련 리콜을 청원했다. 청원에서 CAS는 현대·기아차 차량에서 발생한 원인미상의 화재 신고 건수는 2010년부터 220여건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현대·기아차는 2015년과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엔진 고장이 차량을 멈추게 하고 이로 인해 충돌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 ‘세타(Theta) 2’ 엔진을 장착한 모델에 대한 리콜을 실시했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쏘나타(2011년~2014년), 싼타페(2013년~2014년), 옵티마(2011년~2014년), 쏘렌토(2012년~2014년), 스포티지(2011년~2012년) 등 119만대에 달하는 차량을 리콜했다.

정의서 현대자동차 부회장 <사진=뉴시스>

◆올 상반기 기준 현대·기아차 화재 1592건..‘연쇄 화재’ BMW의 27배

차량의 결함 및 화재와 관련한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도 들썩이게 했다. 올 여름 발생한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 때문.

BMW 차량에서 불이 난 것도 모자라 회사 측의 결함 은폐 의혹 등이 일었고, 이는 결국 대규모 소송전으로까지 번졌다. 또 국감 쟁점으로도 떠오르는 등 차량 결함과 화재 문제는 올 한해를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방청으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중 발생한 차량 화재 건수는 현대차가 116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아차 429건, 한국GM 207건, 르노삼성 85건, 쌍용차 75건 등 순이었다.

외제차 중에서는 올해 연속적으로 화재가 발생해 논란이 된 BMW가 58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벤츠 31건, 아우디 15건 순이었다.

차량 1만대 당 화재 건수는 BMW가 1.50건으로 높았다. 2위는 한국GM 1.24건, 3위는 현대차로 1.1건이었다.

지난해 역시 1만대 당 화재차량 건수는 BMW가 2.66건으로 가장 높았고, 현대차(2.38건), 한국GM(2.31건) 등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소방청이 제출한 통계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화재만을 취합한 것은 아니다. 실화와 방화로 인한 화재, 사고로 인한 화재, 노후 및 관리 미비에 따른 화재를 망라했다.

소방청은 올 상반기 발생한 차량 화재의 약 31%는 기계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기에는 제품 결함뿐 아니라 사용자가 조작을 잘못해 불이 난 경우도 포함했다. 이밖에 전기적 요인 24%, 부주의 17%, 교통사고 10%의 순이며, 원인 미상도 12%에 이른다.

문제는 현대·기아차에서 화재가 발생한 차량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화재 건수가 58건이던 BMW와 비교해 이 기간 현대·기아차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27배 가량 많다.

물론 국내 시장 점유율이 75%에 달한다는 점에서 타 제조사들보다 문제가 월등히 많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하지만 1만대 당 화재 건수로 봐도 BMW와 현대차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차량 결함에 대한 제조사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국토위 소속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부 국감에서 현행 자동차관리법에서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경우’ 차량리콜을 하도록 규정하지만 이 ‘안전운행에 지장’이라는 대목을 제조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단적인 예로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제동장치 결함을 들었다.

2012년 제네시스 브레이크에서 스펀지 현상과 함께 제동 시 차량쏠림 현상이 발생, 현대차는 이 문제가 안전과 관련된 문제였음에도 결함 발생 직후 리콜이 아닌 비공개 무상수리를 진행했다.

현대차 당시 이와 관련해 “제동장치 작동불량 현상은 경고등 점등 등으로 운전자가 사전에 인지가 가능해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 NHTSA 조사 결과 이같은 결함으로 6명의 운전자가 충돌사고를 겪었고, 이 중 2명이 부상을 당했다.

결국 현대차는 결함 은폐를 이유로 2014년 미국에서 17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차량 제조사들이 결함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의원은 “차량 결함은 출고 직후 나타나기도 하지만 운행 거리가 길어지면서 뒤늦게 나타날 수도 있다”며 “안전과 관련이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나”고 말했다.

이어 “올해 발생한 BMW 사태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인 EGR이 안전과 관련이 없다고 안일하게 대응한 결과 연이은 화재사고로 이어졌다”면서 “제조사들이 결함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안전사고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잇단 잡음에 ‘품질경영’은 어디로?..정의선 부회장 사퇴 목소리까지

한편, 현대·기아차의 결함 및 화재 문제, 그리고 회사 측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청와대 국민청원 등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주목을 받아 왔지만, 계속해서 잡음이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들리는 실정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올해 5월 현대·기아차의 세타2 엔진 결함을 호소, 현대차그룹이 이 같은 결함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나와 파장이 일기도 했다.

청원인 A씨는 “2016년 현대·기아차의 세타2 엔진 자체 리콜과 관련해 점검 후 문제 있을시 개선된 새 엔진으로 교체를 해준다고 했지만 올해 초에 협력업체에서 점검 후 정상 판정 받은 차량이 90일이 지나지 않아 주행 중 엔진 꺼짐 현상 및 엔진 화재가 발생해 차량이 전소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대차 측에서 조사를 통해 엔진 결함으로 보상해 주겠다고 연락을 줬다. 엔진 정밀 분석을 위해 엔진을 연구소로 보내는 것에 동의를 구했고, 연구소에서는 ‘엔진 내부에 손상이 가해졌다’라는 답변만 듣고 결과는 보상을 못 해준다며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엔진 결함으로 판단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조사가 끝난 엔진을 돌려줄 것을 현대차 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하고 차량 소유주인 A씨를 무시했다고.

A씨는 “회사 측이 증거인멸 및 은폐를 행하려는 취지로 보여진다”며 “현대·기아차는 해당 차량을 운행하는 국민들을 크게는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중대한 결함을 알고서도 모른 채 방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차량 화재와 결함 문제, 대규모 리콜 등 국내외 소비자들 사이에서 현대·기아차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한편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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