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기간 확대 놓고 정부 여당vs노동계 ‘엇박’→사회적 대화로 합의점 찾기

[공공뉴스=김소영 기자] # 광고 업체에서 근무하는 A씨는 퇴근 후에도 자유는 없었다.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야근이 금지됐지만 이전과 같은 업무량과 마감기한을 맞추기 위해 집에서도 일해야만 하기 때문. A씨는 그간 업무량이 몰릴 때면 야근을 하고 수당을 받아왔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던 야근을 집에서 하는 탓에 정작 쉬지도 못하고 야근수당도 끊긴 상태. 차라리 돈을 받고 야근할 때가 좋았다고 A씨는 느꼈다. 이 같은 불만은 비단 A씨만 토로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탄력근로제룰 놓고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 A씨는 정부의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추진을 두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에 의문이 들 뿐이었다. 기업들은 탄력근로제가 노동시간 단축 정책으로 인한 회사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라며 환영하고 있지만, 정작 A씨와 같은 근로자들은 법정 52시간 초과 근무에 대한 가산수당이 사라지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저녁 있는 삶’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A씨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추가한 다양한 제도들은 오히려 단축 의도에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노총이 2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민주노총 지도부 시국농성 마무리 및 11.21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정기국회 최대 이슈 중 하나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두고 정부와 노동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까지 확대 반대에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력근로제 확대가 임금삭감이나 장시간 근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나섰지만 노동계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민주노총 ‘탄력근로제’ 저지 총파업 앞두고 긴장감 ↑

탄력근로제는 일정 기간 내에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총 근로시간을 맞추는 제도다. 근로시간을 하루·일주일 단위로 엄격하게 지키는 게 아닌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것.

일이 몰릴 때 연장근무를 하면 다른 날 일찍 퇴근하거나 늦게 출근하는 식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짧게는 2주, 길게는 3개월까지 주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추진 중인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가 노·정관계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2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21일 예정대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법 전면 개정의 시대에 노동법 개악이 줄을 잇고 있다”며 “최저임금법 개악과 탄력근로제 확대는 재벌 개혁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당초 총파업 구호는 ‘적폐 청산’, ‘노조 할 권리’, ‘사회 대개혁’이었으나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노동법 개악 중단’이 추가됐다.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를 놓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결집하는 양상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또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 한국노총은 지난 17일 전국 노동자대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밀어붙일 경우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야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 혹은 1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지 않으면 올 7월 시행에 들어간 주 52시간제를 준수하기 어렵다는 경영계 요구에 따른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일부 업종에 대해서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로는 길어야 한 달 반 동안 연속 집중노동을 할 수 있는데 에어컨 제조업체와 같이 계절적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일부 기업은 4개월 이상의 연속적이고 집중된 노동이 필요하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반면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면 연장근로 가산수당이 줄어들고 노동자 건강이 악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실정.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이에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오는 22일 공식 출범과 함께 개최하는 첫 본위원회 회의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를 논의할 의제별 위원회를 산하에 설치하는 방안을 심의한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임시 대의원대회 정족수 미달로 경사노위 본위원회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경사노위 참가 주체들은 민주노총이 산하 의제별 위원회에는 참여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노동시간 단축 대상인 300인 이상 사업장은 약 3600곳으로, 대기업이 많아 주 52시간제 시행에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고용부는 보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시행에 들어간 지난 7월 이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약 60건의 진정, 고소, 고발 등이 접수됐으나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다수 포함된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부담이 클 수 있으나 50∼300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50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할 경우 노동자 임금 감소와 건강 악화 외에도 기업이 집중노동 기간 이후 생길 수 있는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단시간·저임금 일자리를 늘릴 가능성을 포함해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노동계는 우려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한국노총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민주당 “임금삭감·장시간 연속근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할 것”

이처럼 노동계와 정부여당이 대립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19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적용이 임금삭감이나 장시간 연속근로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노동계에 약속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과 한국노총의 고위급 정책협의회가 끝난 뒤 “(민주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통상임금으로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임금삭감의 수단이나 장시간 연속근로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당면한 노동현안은 사회적 대타협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해나갈 것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임오프 현실화를 위해 고용노동부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을 요청하고 노동이사제 도입은 공약과 국정과제대로 일관되게 추진해나갈 것임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날 협의회는 탄력근로제 확대 등 현안을 둘러싸고 여권과 노동계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양대 노총 중 하나인 한국노총과 직접 마주한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협의회 모두발언에서 “한국노총이 지난 8일 노동자대회에서 탄력근로제 문제, 최저임금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책협의를 하면서 당 입장을 이야기하고 충분히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할 때 민주노총이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무산돼 내년 1월로 미뤄진 것 같다”며 “민주노총도 대의원대회를 통해 꼭 참여해 충분한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사회통합형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막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협상이 잘 진행돼야 내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데 이번 주에는 매듭을 꼭 지었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노사민정이 모처럼 합의해 사회통합형 일자리의 선례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당에서도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며 “맞춤형 일자리가 광주뿐 아니라 울산과 창원 등 산업·고용 위기 지역에 적용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은 이날 협의회에서 ▲노조법 전면 개정 및 타임오프 현실화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통상임금으로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반대 ▲국민연금 개혁 ▲임금피크제 적용 장년노동자의 임금삭감 예방 ▲노동자 이해 대변 및 보호제도 도입 ▲노동역사박물관 건립 및 중앙교육원 시설 개선 등 7개 과제를 민주당에 제안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카풀 앱 규제 완화 시도 등을 언급하며 “일련의 정책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국정과제 실현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조합원과 노동계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 및 고용상황을 이유로 기득권 집단의 과장과 왜곡, 정치공세로 정부여당도 곤혹스러운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노동정책은 먹고 사는 문제라 이런 부분이 후퇴, 실패하면 사회에 주어진 개혁 기회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된다. 민주당이 중심을 잡아줄 것을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는 제가 하자고 주장했고 (한국노총이) 참여할 것”이라며 “(탄력근로제 확대는) 논의를 하게 된다면 고려해볼 포인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각종 현안을 국회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극한 대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민변 노동위원회, 전국여성노동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 확대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정의당, 노동존중사회 아닌 ‘노동억압사회’ 주장

한편, 정의당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과 함께 탄력근로제 확대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두고 “연장근로를 포함하면 6주 연속으로 64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경제계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확대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개악안의 결과는 ‘노동존중사회’가 아니라 ‘노동억압사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탄력근로제로 인해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약자”라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밀어붙이기 위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기득권을 운운하며 본질을 호도하는 정부여당에 대해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탄력근로제의 악용을 막겠다는 여당의 계획에 대해서도 정의당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노동계의 저항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면서 노동 정책을 둘러싸고 진보 진영과 정부 간 대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요구하는 경영계와 이에 반대하는 노동계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적 대화로 합의점을 찾으며 갈등을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단위 기간 확대가 필요한 업종을 선정하고 오·남용을 방지할 장치를 마련하는 등 내실 있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공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