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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story]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장애등급제:반인권적 낙인·혜택 제한→욕구 고려한 정책으로 사회참여 기회 제공

[공공뉴스=김수연 기자] # 지체장애 1급인 A씨는 최근 휠체어럭비를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고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도 느끼게 됐다. 이렇게 휠체어럭비는 항상 무기력하기만 했던 A씨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 그러나 함께 스포츠 활동을 하던 이들 중 그간 보여지는 불편함으로 등급을 나눠왔기 때문에 받는 혜택이 달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 많았다. 특히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일지라도 장애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모두들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는 많았지만, 이 같은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적절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A씨는 너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장애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중증장애인이 기존에 받던 혜택이 줄어들지 않는 동시에 경증장애인들도 충분한 혜택이 돌아갔으면 A씨는 바랬다. 또 장애인들이 사회 안으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들도 많아지길 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관계자들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6번째 세계장애인의 날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연금 대상 중증(3급) 확대, 개인·유형별 맞춤형 다양한 서비스 확대 및 예산 보장,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등을 요구했다. <사진=뉴시스>

그동안 장애등급제는 ‘장애를 등급으로 나눠 혜택을 준다’라는 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중증장애인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반쪽자리 정책이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장애등급제는 의료적 기준을 통해 장애인에게 등급을 부여해 낙인을 찍는 것은 물론 개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등급별로 획일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

같은 등급을 가졌더라도 전혀 다른 불편함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그저 ‘공급’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개인 및 유형별 서비스가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장애인단체, ‘장애등급제 폐지’ 및 ‘예산 확보’ 촉구

유엔(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인 지난 3일 장애인단체들이 장애등급제 폐지와 적정 예산 확보 등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를 점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은 이날 국회 앞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여야 간 이견으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자칫 각 상임위에서 어렵게 증액한 예산이 다시 정부 예산안 수준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 각 당에 당론으로 장애인 예산 확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당초 여의도에서 도심까지 행진할 계획이었으나 집회 시작 약 1시간이 지난 오후 4시께 휠체어를 탄 시위대를 중심으로 국회대로를 막아섰다.

경찰은 여러 차례 해산 명령을 내린 끝에 시위대를 인도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시위대 일부는 담을 넘어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현행범 체포돼 건조물침입죄로 입건되기도 했다. 약 1시간 동안 국회대로가 차단되면서 여의도 주변에는 교통 혼잡이 발생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의 생존권에 맞춰진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며 ▲장애인연금 ▲장애인활동지원 사업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등의 예산으로 최소 6000억원을 편성하고 장애인 관련 예산도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1년 전부터 지금까지 장애등급제 폐지와 예산 반영을 위해 투쟁해왔고, 이제 마지막이다”라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장애에 맞는 서비스와 예산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생존권에 맞춰진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복지예산보다 중요한 예산 항목이 어디에 있겠는가”라며 “내년에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다지만 예산이 반영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예산이 반영돼야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오랜 기간 투쟁으로 장애인 관련 예산안이 상임위까지 올라가긴 했으나 여야 간 다툼만 이어지다 결국 소소위로 넘어갔다”며 “소소위에서 이뤄지는 깜깜이 심의에서 관련 예산이 축소된다면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몸에 쇠사슬을 두른채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장애인복지예산은 뒷전?..韓, OECD 국가 중 장애인복지예산 최하위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장애등급제 폐지’가 내년 7월부터 단계적 폐지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국회에서 여야 간 힘겨루기 싸움으로 장애인복지예산이 뒷전인 가운데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심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장애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정책국 예산안은 올해 예산보다 약 5000억원 증액된 2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사실상 자연증가분만 반영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장애계는 강하게 반발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정부 예산안에서 4000억원 증액했다.

그러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470조 정부 예산안 중 보건·복지 분야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예산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때문에 ‘자칫 각 상임위에서 어렵게 증액한 예산이 다시 정부 예산안 수준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

장애계는 “내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것은 31년 만의 장애인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라며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올린 예산은 그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연증가분+10원짜리 예산’으로 장애인을 철저하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장애인 복지예산은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고 있지 않다.

앞서 지난달 14일에도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된 예산을 늘리라고 요구했다.

전국 86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연합체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와 종합지원체계를 발표했지만, 관련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하려면 장애 유형에 맞춘 서비스를 위한 예산과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수요를 뒷받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목에 쇠사슬과 사다리를 걸고 국회 정문을 막아서며 원내교섭단체 3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자 10월26일부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바 있다.

지난 3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 출범식 및 14회 전국장애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420공투단은 이날 집회에서 부자 증세,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대통령 면담을 3대 목표로 삼고 장애인수용시설 폐쇄,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했다. 인간다운 삶을 향한 7가지 요구안으로 중증장애인노동권, 장애인활동보조권리, 장애인이동권, 장애인교육권, 장애인문화예술·체육·관광·정보접근의 권리, 장애인 주거·건강·안전권 등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UN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준수를 요구했다. <사진=뉴시스>

# 민주당 대구광역시당, 장애등급제 폐지 예산 반영 중앙당 건의 약속

한편, 민주당 대구광역시당(위원장 남칠우)은 지난달 27일 장애등급제 폐지,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지원 확대 등 현안과 관련해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면담을 진행했다.

차별철폐연대는 면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장애등급제 폐지에 필요한 예산요구안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대구시당이 지역의 장애인들을 위해 애써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장애등급제 폐지’가 민주당의 당론으로 채택된다면 관련예산이 관철되는 데 더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대구시당이 중앙당에 당론채택을 강력히 건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남칠우 대구시당 위원장은 “장애등급제 폐지 당론 채택을 중앙당에 건의하겠다”며 “예산 부분은 김우철 사무처장과 논의해 지역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대구시당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등급 폐지, 탈 시설 등 기존 재활 패러다임에서 권리에 기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간 장애등급제는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반인권적인 낙인이자 복지제도를 예산에 맞춰 제한하는 수단으로 작동돼 왔다.

때문에 정부는 장애유형별 특성 및 서비스 욕구를 고려한 정책 발굴 및 예산 지원에 중점을 두는 한편 장애인의 사회참여 및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더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장애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수연 기자  114@00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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